배구인들이 말하는 ‘내 기억속의 장충체육관’

입력 2015-01-20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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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델링으로 재개장한 장충체육관에서 19일 2014∼2015 V리그 여자부 GS칼텍스-도로공사의 경기가 성황리에 열렸다. 장충|김종원 기자 won@donga.com 트위터 @beanjjun

리모델링으로 재개장한 장충체육관에서 19일 2014∼2015 V리그 여자부 GS칼텍스-도로공사의 경기가 성황리에 열렸다. 장충|김종원 기자 won@donga.com 트위터 @beanjjun

“역사 깊은 곳, 절하고 입장”

1963년 2월 1일 개관한 실내스포츠의 메카
박기원 감독 “대표팀 동메달 축하행사 아련”
박미희 감독 “첫 백구 대제전 MVP 받은 곳”
이운임 위원 “미도파-현대전 땐 암표 등장”

17일 새롭게 단장한 서울 장충체육관. 많은 스포츠 스타들과 3000여명의 시민은 이날 약 2년 7개월 만에 체육관의 문을 다시 여는 기념행사를 가졌다. 많은 팬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이곳에서 인생의 절정기를 보냈거나 생애 최고의 경기를 했던 스타들은 깔끔하게 단장된 시설을 보며 감회에 젖었다. 1963년 2월 1일 개관했던 ‘실내스포츠의 메카’에서 많은 땀을 흘렸고 전설을 만들었던 배구인들로부터 ‘내 기억 속의 장충체육관’ 이야기를 들었다.


● GS칼텍스 이선구 감독

1965년 중학교 때 처음 장충체육관 코트를 밟았다. 당시는 시멘트 바닥이었다. 몇 년 뒤에 마루를 깔았다. 체육관 주변의 나이 드신 분들이 주로 경기장을 찾았다. 1969년 장충체육관에서 당시 고등학교 대회로는 가장 권위가 있던 대통령배 대회에서 우리 팀이 준우승을 했다. 우승을 못한 팀에서 내가 최우수선수(MVP) 상을 받아서 기억이 새롭다. 그해 12월에 한국배구가 사상 처음으로 일본을 꺾고 청소년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곳도 이곳이었다. 당시 나도 대표팀의 주전 선수로 활약했다.


● 한국배구연맹(KOVO) 진준택 경기운영위원장

장충체육관하면 백구의 대제전과 슈퍼리그 생각이 난다. 고려증권 감독으로 많은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는 배구의 전성기였다. 수많은 관중이 경기장에 가득 들어차서 참 재미있었다. 정확히 기억은 못하겠지만 고려증권이 전승으로 우승했던 대회가 있었다. 그 대회가 가장 생각난다. (고려증권은 1984년 제1회 대통령배 배구대회 우승을 시작으로 1998년 IMF 위기로 팀이 해산하기 전까지 백구의 대제전과 슈퍼리그에서 6번의 우승과 3번의 준우승을 차지했다. 모기업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역경을 이겨내며 우승을 차지해 많은 이들에게 용기를 줬다. 조직력 배구의 원형이 됐던 전설의 팀이다.)


● 남자배구 국가대표팀 박기원 감독

1973년에 우리 남자배구가 처음으로 옛 소련에서 벌어졌던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참가해 동메달을 땄다. 대회를 마치고 돌아오는데 공항에서 중앙정보부 직원들이 우리를 잡았다. 소련에서 찍었던 필름을 모두 달라고 했다. 사진을 현상해서 준다고 했다. 문제의 소지가 있는 장면을 차단하려고 그런 것 같다. 하여튼 그 대회 이후 대표팀의 인기가 대단했다. 아침 TV방송에도 출연하고 정신이 없었다. 동메달을 환영하는 행사와 기념경기가 장충체육관에서 벌어졌다. (1978년 남자배구는 세계선수권대회 4강에 오르며 전성기를 누렸다.)


● 대한항공 김종민 감독

1980년대였는데 중학교 때 처음으로 장충체육관을 밟았다. 시골(울산)에서 올라와 처음 경기를 했는데 어마어마하게 넓다는 기억이 난다. 그 대회에서 우리가 우승을 했다. V리그 때는 우리캐피탈과의 경기를 장충체육관에서 했다. 승점을 따기 쉬운 팀이었는데 우리는 이기기는 해도 항상 애를 먹었다. 서브가 강점이 많은 우리 팀의 특성 때문이었다. 장충체육관 천장이 어둡고 공이 잘 보이지 않아 서브를 잘 넣는 선수들이 유난히 고전했다.


● KOVO 이운임 경기운영위원

1982∼1983년 여자배구의 인기가 엄청 높았다.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 한국여자배구가 구기종목 사상 최초로 동메달을 땄다. 그 영향으로 여자배구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듯 했다.) 항상 만원 관중이었다. 결승전을 했다하면 미도파와 현대의 경기였는데 관중들이 암표를 사서 들어올 정도였다. 세터로서 보자면 장충체육관은 천장 한가운데가 빛나고 다른 곳은 어두워서 공이 잘 보이지 않아 토스하기 힘든 곳이었다.


● 한국전력 신영철 감독

1976∼1977년에 처음으로 장충체육관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가했다. 당시는 주말에 벌어지는 중고교 대회에도 수많은 여학생들이 관중석을 가득 채웠다. 초등학교 때 처음으로 장충체육관에 갔는데 당시 감독 선생님이 “여기는 역사가 깊은 곳이니까 들어갈 때 코트에 절을 하고 들어가라”고 말씀했다. 농담인지 진담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동료들 가운데 몇몇은 그 말에 따라 경기장에 절을 하고 들어갔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kimjongk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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