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스’는 보는 내내 마음이 따뜻해지는 뮤지컬이다. 바이올린, 만돌린, 벤조, 기타, 하모니카 등 배우들이 직접 연주하는 ‘언플러그드 음악’의 힘이다. ‘원스’의 남녀 주인공인 이창희(왼쪽)와 전미도. 사진제공|신시컴퍼니
배우가 직접 연주 ‘액터 뮤지션 뮤지컬’
전미도의 독특한 억양 연기 깨알 재미
‘폴링 슬로우리’ 등 익숙한 음악들 가득
공연 시작 20분 전 배우들 라이브 공연
보는 내내 생각했다. “이건, 언플러그드 뮤지컬이로군.”
전기코드를 뺀 듯한 뮤지컬. 찌릿찌릿한 전기가 만들어내는 황홀함, 공기를 찢어발길 듯한 광폭한 음량을 포기한 대신 은은한 나무냄새, 나일론 줄의 달콤함, 배우들의 또렷한 대사와 발구름 소리를 얻었다.
동명의 해외 영화를 뮤지컬로 만든 ‘무비컬’이지만 영화를 그대로 무대 위에 올려놓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뮤지컬 원스는 주인공뿐만 아니라 모든 배우들이 바이올린, 만돌린, 벤조, 기타, 우쿨렐레, 하모니카, 드럼 등을 연주한다. 배우들이 직접 악기를 연주하며 연기하는 ‘액터 뮤지션 뮤지컬’인 것이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보석 같은 배우들을 잔뜩 데려다 놓았는지 제작사 신시컴퍼니측에 기립박수라도 보내고 싶어진다.
원스의 주인공은 두 명이다. 작가가 이름을 짓기 귀찮았는지 남자는 ‘가이(이창희 분)’, 여자는 ‘걸(전미도 분)’.
아일랜드의 더블린을 배경으로 음악에 대한 꿈을 포기하려는 청소기 수리공 ‘가이’와 그가 음악을 계속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체코출신 ‘걸’의 이야기를 다룬다. ‘걸’ 역의 전미도는 그야말로 대단한 연기를 보여준다. 원래 차돌처럼 단단한 연기력을 지닌 배우지만 원스에서는 ‘과연 전미도!’하며 몇 번이나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걸’의 독특한 영어억양을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그 뿐으로,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 버린다. 실은 원스의 강렬한 재미 중 하나는 ‘걸’의 독특한 말투가 자아내는 웃음과 이국적인 분위기다. 전미도는 ‘걸’의 말투를 중국동포 억양과 우리나라 사투리를 버무린 ‘전미도식 체코 억양’으로 재생산했다. 따라하고 싶어질 정도로 귀에 착착 감긴다. 영화에서는 절대 누릴 수 없었던 깨알 같은 재미다.
나무향처럼 순수한 음악들이 넘치는 뮤지컬이다. ‘폴링 슬로우리(Falling slowly)’와 ‘이프 유 원트 미(If you want me)’ 같은 곡들은 원스를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멜로디다. ‘가이’가 쓴 멜로디를 ‘걸’이 혼자 흥얼거리다가 가사를 붙여가며 점차 노래(이프 유 원트 미)로 완성해 가는 장면은 참 근사하다. ‘폴링 슬로우리’는 ‘가이’와 ‘걸’이 각자 다른 장소에서 서로를 떠올리며 노래하는 마지막 장면에 다시 등장한다. 애잔하기 그지없다.
“당신을 위해서라면 지옥도 마다하지 않겠소”와 같은 사랑은 원스에 없다. 대신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고 돌아서는 지극히 평범한 사랑이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다. 실은 그래서 더 와 닿고, 더 아프고, 쓰리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팁 하나. 공연장에는 되도록 일찍 도착할 것을 권한다. 편의점이나 로비에서 시간을 보내지 말고 20분전에는 입장할 것. 정식 공연을 시작하기 전에 배우들의 흥겨운 라이브 공연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ranbi3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