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 명예의전당 스타탐구] 휴스턴 한 팀서만 3000안타 ‘의리의 사나이’

입력 2015-02-26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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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Gettyimages멀티비츠

4. 크레이그 비지오 <끝>

메이저리그 선수는 두 가지 꿈을 지니고 있다. 현역 시절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차지하는 것과 은퇴 후 ‘명예의 전당(Hall of Fame)’에 오르는 것이다. 메이저리그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전설들만이 오를 수 있는 명예의 전당. 올해는 랜디 존슨, 존 스몰츠, 페드로 마르티네스, 크레이그 비지오 등 4명의 스타플레이어들이 동시에 이름을 올렸다. 4명이 동시에 입회한 것은 1995년 이후 처음이다. 스포츠동아는 약물에 의존하지 않고 꾸준한 노력과 뛰어난 실력으로 올해 명예의 전당 입성에 성공한 스타플레이어들의 발자취를 4회에 걸쳐 재조명한다.


1989년 데뷔 후 ‘킬러 B’ 활약…휴스턴 황금기 주역
2005년 와일드카드로 창단 첫 월드시리즈 진출 감동


입회 자격을 얻은 첫 해에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랜디 존슨, 존 스몰츠, 페드로 마르티네스와는 달리 크레이그 비지오는 3번째 도전 만에 꿈을 이뤘다. 특히 지난해 단 2표 차이로 탈락의 아픔을 맛봤던 터라 기쁨은 배가 됐다. 비지오는 7차례 올스타에 뽑힌 것을 비롯해 골드글러브를 4차례, 실버슬러거를 5차례 수상한 전천후 플레이어였다. 그가 기록한 3060안타는 메이저리그 역대 21위에 해당한다. 특히 한 팀에서만 3000안타 이상을 친 9번째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몸에 맞은 볼은 285회로 이 부문 역대 2위. 팀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한 ‘의리의 사나이’ 비지오의 등번호 7번은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영구결번으로 지정됐다.


● 포수에서 2루수로

고등학교 시절 풋볼 선수로 명성을 떨쳤지만 비지오는 야구를 선택했다. 시튼홀 대학에 진학하면서 포수 마스크를 쓰기 시작한 그는 모 본, 존 발렌틴, 마티스 로빈슨 등과 함께 팀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1987년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22번째로 애스트로스에 지명된 비지오는 2년 후 팀의 주전 포수로 루키 시즌을 시작했다.

1989년 실버슬러거 상을 받을 정도로 뛰어난 방망이 실력을 보이면서도 빠른 발을 앞세워 도루에도 능했다. 포수를 계속 보면 빠른 발이 무뎌질 것을 우려한 애스트로스 구단은 1990년부터 외야수로도 기용하기 시작했다. 1991년 포수로서 내셔널리그 올스타에 뽑혔지만 이듬해 스프링트레이닝 캠프부터 비지오는 2루수로 포지션을 변경했다. 일반적으로 포수를 보다 포지션을 바꿀 경우 1루수로 전향하는 경우가 많지만 내야 수비의 핵심을 이루는 2루수가 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 비지오는 1992년에도 올스타로 선정됐는데 당당히 2루수로서 별들의 잔치에 초대됐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로 포수와 2루수로 올스타에 뽑히는 쾌거를 달성한 것이다.


● 희생의 아이콘

비지오는 빅리그 데뷔 후 1800경기를 치를 때까지 단 한 번도 부상자 명단에 오르지 않은 철인이었다. 하지만 2001년 8월 2일 플로리다 말린스와의 경기에서 더블플레이를 시도하다 프레스톤 윌슨의 스파이크에 무릎을 찍혀 일찌감치 시즌을 접었다. 2003년 애스트로스 구단은 비지오에게 또 다시 포지션 변경을 요구했다. FA(자유계약선수)로 올스타 출신 제프 켄트를 영입한 탓에 2루 자리를 넘겨주고 중견수로 변신했다. 이듬해에는 카를로스 벨트란이 트레이드되자 좌익수로 이동했다. 2005년 시즌을 앞두고 켄트가 LA 다저스로 둥지를 옮기면서 비지오는 2년 만에 다시 2루수로 기용됐다. 이처럼 늘 팀이 원하는 대로 아무런 불평 없이 자신을 희생한 비지오에게 팬들은 아낌없는 갈채를 보냈다. 다시 제 자리를 찾자 비지오의 방망이는 폭발했다. 생애 최다인 26개의 홈런포를 쏘아 올렸고, 제프 배그웰에 이어 팀 역사상 두 번째로 통산 1000타점 고지도 정복했다. 2007년 6월 29일 콜로라도 로키스전에서는 애런 쿡을 상대로 통산 3000번째 안타를 때렸다. 팀 역사상 최초로 3000안타 클럽에 가입하던 날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프랭크 토마스는 자신의 500번째 홈런을 쳤다.


● 악바리 투혼

비지오는 상대 투수의 공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가 기록한 사구는 285개로 휴이 제닝스에 이어 이 부문 역대 2위에 랭크됐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가 수없이 많은 사구를 기록했음에도 단 한 번도 마운드로 돌진해 싸움을 벌이지 않았고, 특별한 부상도 입지 않았다는 점이다. 비지오는 중거리 타자로 명성을 떨쳤다. 그가 친 2루타는 668개로 역대 5위에 해당한다. 우타자로는 최다 2루타 기록이다. 안타를 치고 난 후 상대 수비가 조금이라도 빈틈을 보이면 2루로 돌진해 과감한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시도해 장타를 만들어냈다. 메이저리그 최초로 3000안타, 2루타 600개, 400도루, 250홈런을 달성한 비지오는 애스트로스의 황금기를 이끈 주역이었다.


● 킬러 B

애스트로스에는 비지오 외에도 ‘B’로 시작하는 라스트 네임을 가진 선수들이 유독 많았다. 1990년대에는 비지오-배그웰-데릭 벨이 원조 ‘킬러 B’로 명성을 떨쳤다. 이들의 활약을 앞세운 애스트로스는 1994년부터 3년 연속 디비전 2위에 올랐다. 1997년부터는 만년 2위의 설움을 씻고 3년 연속 디비전 우승을 차지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특히 1998년에는 무려 102승을 거둬 구단 역사상 한 시즌 최다승 기록을 수립하기도 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비지오-배그웰 콤비에 랜스 버크먼이 가세해 새로운 ‘킬러 B’를 형성했다. 노장 앤디 페티트와 로저 클레멘스가 선발 로테이션을 이끈 2004년에는 전반기를 5할 승률로 마쳤지만 후반기 분전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다. 특히 캔자스시티 로열스에서 트레이드된 카를로스 벨트란이 ‘킬러 B’에 가세하면서 애스트로스는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까지 진출했지만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게 3승4패로 무릎을 꿇어 아쉬움을 남겼다.

비지오가 월드시리즈에 진출한 것은 2005년이었다. 벨트란이 뉴욕 메츠와 계약을 체결해 팀을 떠난 공백을 극복하지 못하고 시즌 초반을 15승30패로 출발해 포스트시즌 진출은 일찌감치 물 건너 간 것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비지오의 투혼과 로이 오스왈트를 위시한 선발진의 분전으로 힘겹게 와일드카드로 포스트시즌 티켓을 따낸 애스트로스는 숙적 카디널스를 물리치고 팀 역사상 처음으로 월드시리즈에 오르는 쾌거를 달성했다. 그러나 시카고 화이트삭스에게 4전 전패로 물러나 비지오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월드시리즈는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손건영 스포츠동아 미국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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