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
#12일 사직구장에서 한화 투수 이동걸이 롯데 타자 황재균에게 ‘빈볼’을 던졌습니다. 세상은 이동걸에게 빈볼을 지시한 ‘배후’를 캐내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한화는 “김성근 감독님이 ‘내가 안 했다’고 하지 않느냐”라고 말할 뿐입니다. 이것을 비겁한 은폐로 볼 수도 있겠죠. 김 감독의 묵인 내지 방조 없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시각이죠. 그러나 한화에는 한화의 사정이 있을 것입니다. 상황이 이렇게 커져버렸는데, 누군가를 지목해 ‘총알받이’로 내놓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곧 팀의 와해일 테니까요.
#사실 빈볼의 지시자를 찾으라는 이야기는 난센스입니다. 팀 전체에 그런 공감대가 있었으니까 던질 수 있는 것이죠. “(타자 몸에 안 맞는) 위협구는 전술이고, (타자 몸에 맞는) 빈볼은 범죄”라는 말도 있듯 넓게 보면 빈볼도 야구의 일부입니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메이저리그의 전설적 투수 봅 깁슨은 “홈플레이트에 지나치게 붙어서면 나의 어머니라도 맞히겠다”고 말했을 정도입니다. 빈볼과 그에 따른 보복에서 선악은 없습니다.
#결국 ‘한화가 잘못했냐? 롯데가 잘못했냐?’는 시시비비가 아니라 ‘왜 이렇게 일이 커졌느냐?’가 포인트입니다. 여기에는 감독 김성근에 대한 호불호가 투영되고 있습니다. 삼성을 둘러싼 1대9 구도가 아니라 한화를 둘러싼 1대9 구도입니다. 꼴찌 팀이 공적이 된 것은 야구 역사상 유례없는 일일 터입니다. 좋든, 싫든 김 감독의 존재감이 그만큼 큽니다.
#스포츠동아 2008년 4월 21일자를 보면 당시 두산 사령탑이던 김경문 감독(현 NC 감독)은 “받은 만큼 되돌려주겠다”는 발언을 했습니다. 7년 후 롯데 이종운 감독이 겪었던 것과 흡사한 갈등 속에서 나온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틀 후 김 감독은 삭발을 하고 야구장에 나타났습니다. “모두가 내 탓이고 내 불찰이라 생각하면서 머리를 깎았다. 이제는 야구 감독이 야구 외적인 일에 신경을 쓰고 싶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이 반성의 토대 위에서 김 감독은 4개월 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이라는 업적을 이뤘습니다. ‘편 가르기가 아니라 오직 실적으로 말하겠다’는 결심이 선 2008년 4월의 그 순간, 어쩌면 ‘영광의 베이징이 시작된 것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이제 와서 듭니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