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어나자마자 버려져 ‘살인병기’로 키워진 비극적인 인물을 온 몸으로 이겨낸 김고은은 ‘모범답안’ 같았던 김혜수 선배의 존재로 “버텨냈다”며 웃었다. 사진제공|장인엔터테인먼트
■ 영화 ‘차이나타운’의 두 여자|김혜수·김고은
30년 가까이 연기를 해온 배우. 이제 3년 차인 또 다른 여배우. 경력도, 이미지도, 심지어 ‘세대’도 다른 김혜수(45)와 김고은(24)이 29일 개봉하는 영화 ‘차이나타운’(감독 한준희·제작 폴룩스픽쳐스)으로 호흡을 맞췄다. 국내에선 보기 드문 여성 누아르를 완성한 두 여배우를 만났다. 방식은 달랐지만 두 사람은 도전을 즐기는 듯했다. 이 흔치 않은 ‘조합’의 결실은 벌써 나타나고 있다. 영화는 5월13일 개막하는 제68회 칸 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받았다.
살인병기로 키워진 아이 역 김고은
지금 내 고민, 선배님은 먼저 해봤겠죠
덕분에 촬영하면서 힘들었던 기억 없어
김고은은 벼르던 유럽 여행을 지난해 다녀왔다. 3주 동안 런던과 파리, 피렌체를 찾았다. 작년 봄 영화 ‘몬스터’ 일정을 마무리하고, “혼자 오랫동안 머무를 수 있는 여행”을 바라던 소망이었다. 처음 접하는 유럽이었다. ‘뜻밖’이라고 하자, 그는 귀엽게 눈을 흘기며 “다들 유럽에 많이 가봤나 보다”며 “난 아직 못 해본 게 아주 많다”고 했다.
멜로영화도 그중 하나다. “기승전결이 확실한 멜로, 권태기 연인처럼 휴대폰 문자메시지에 대답하기 귀찮아 ‘이응(ㅇ)’이라고만 답하는, 그런 연인의 모습을 연기하고 싶다”는 말로도 부족했는지 “정말 잘 할 수 있거든요”라며 재차 짚었다.
“사랑은 스펙트럼이 많은 감정이다. 단면적이지 않은, 여러 개의 감정을 담은 멜로영화라면 더 좋다. 그동안 내가 열심히 찾아 나섰는데도 기회가 없더라. 하하!”
말은 이래도 충무로가 가장 많이 찾는 20대 여배우가 바로 김고은이란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차이나타운’ 개봉을 앞둔 지금, 또 다른 영화 ‘계춘할망’을 촬영 중이고, 하반기에는 무협액션 ‘협녀:칼의 기억’과 스릴러 ‘성난 변호사’를 내놓는다.
‘차이나타운’은 순수하게만 보였던 김고은의 냉혹한 면모를 처음 확인할 수 있는 무대다. 지하철 보관함에 버려진 뒤 범죄의 세계에서 자라나고, 마침내 비극적인 운명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김고은을 통해 완성됐다. 상대역은 김혜수. 캐스팅 소식을 접했을 때 김고은은 양 손을 들어 올려 환호했다. 기대는 헛되지 않았다.
“모범답안 같았다. 촬영장에서 김혜수 선배님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건 감사함과 감동이었다. 지금 내 고민을, 선배님은 먼저 해봤을 것 같았다. 힘든 기억이 남아 있지 않은 것도 선배님 덕분이다. 버팀목 같았다.”
그래도 촬영은 절대 쉽지 않았다. 살인병기처럼 키워진 극중 김고은은 끊임없이 세상과 맞서며 부딪힌다. 어느 날 어깨와 목에 이상하리만치 격렬한 고통이 찾아왔다.
“너무 아파 서 있을 수조차 없었다. 남들은 어깨에 담이 온 줄로만 알고 이상하게 봤다.(웃음) 병원에 가보니 목 디스크가 터졌더라. 그때 내 첫 마디, ‘거봐! 나 아픈 거 맞잖아!’”
중학교 때까지 10년을 중국 베이징의 외곽도시에서 지낸 그는 도시의 일상보다 탁 트인 자연과 더불어 지내는 생활에 더 익숙하다. 그래서 고등학생 때는 학교 앞 하천 주변에 앉아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다.
“아주 답답할 땐 경기 분당에서 서울 여의도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나만의 드라이브를 했다. 요즘은 시간이 없으면 부산, 여유 있으면 제주도로 간다.” 김고은은 ‘운전실력’ 만큼은 주저 없이 자랑했다. “아주 작은 공간만 있으면 어디든 다 (차를)넣을 수 있다. 지방 촬영 때 매니저가 밤을 새면 리무진 승합차도 내가 대신 운전한다. 하하! 끼어들지 못하면 속에서 부글부글해 남이 운전하는 차를 타면 창 밖만 본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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