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을 만나다⑦] DM의 유치하지 않은 ‘Hip Hop Is My Life’

입력 2015-04-28 05: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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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가요계에서 힙합은 유례없는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쇼미더머니’, ‘언프리티랩스타’ 등이 방송되는 날이면 포털사이트의 검색어를 힙합 가수들이 싹쓸이하며 각종 음원차트 상위권에도 힙합 가수들의 이름이 빠지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힙합을 지향하는 음악가들이 많아지고 있으며, 단순한 덩치키우기를 넘어 질적으로도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한국 힙합 르네상스'라고 할 수 있는 지금, 이를 이끌어나가고 있는 언더와 오버의 다양한 뮤지션을 ‘힙합을 만나다’ 코너를 통해 만나보자>>

DM, 사진|D-Business


힙합 뮤지션 중에는 이런 저런 이유로 래퍼가 아닌 전문 프로듀서로 활동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이중에는 처음부터 프로듀싱에 뜻을 두고 직접 래퍼로 활동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힙합 프로듀서들은 자신의 이름아래 디스코그라피 한 두 줄 정도는 지니고 있는 편이다.

‘디지탈마스타(이하 DM)’ 역시 마찬가지로, 90년대 래퍼로 활동하던 DM은 조pd 등의 노래에 참여하면서 이름을 알렸고, 이후 솔로앨범 ‘It's Been Longtime’, 래퍼 실력과 결성한 D.N.S의 ‘Take Two’, 마스터우와 결성한 YMGA의 ‘Made In R.O.K’ 등의 앨범을 발표했다.

이처럼 꾸준히 래퍼로서 활동해온 DM은 2010년 갑작스럽게 당시 소속사이던 YG엔터테인먼트를 나오기로 결심하고 프로듀서로서의 길을 선택했다.

물론 스스로 선택한 결정이라고 하지만 지금은 물론 당시에도 국내 최고의 기획사로 손꼽히던 YG엔터테인먼트를 굳이 박차고 나왔다는 것은 보통사람의 생각으로는 선뜻 이해가 가질 않기도 한다.


이에 DM은 “YMGA의 앨범이 나오고 (YG에서) 다음 앨범을 계속 낼 수 있을 거라는 확신도 보장도 없었다”라며 “음악은 계속 해야겠고, 그래서 차라리 내가 진행을 하는 프로듀서를 해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시기의 문제일 뿐이지 음악을 시작할 때부터 언젠가는 제작을 꼭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내 스스로 나가기로 결정했고, YG에서 나온 것에 후회는 없다”라며 “다만 YG소속 가수들의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됐다는 것이 아쉽기는 하다”라고 너스레를 떨어 웃음을 자아냈다.

그렇다고 DM이 막연하게 자신감만 가지고 무작정 프로듀서의 길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이는 그동안 래퍼로서 활동하며 꾸준히 쌓아온 커리어와 실적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실제 DM의 초기작중 ‘망가진 청색호랑이’나 ‘폭풍전야’와 같은 곡은 한국 힙합의 숨은 명작으로 꼽히고 있으며, 자신이 제작에 참여한 ‘유이한 히트곡’이라고 인정한 조pd의 ‘My Style’은 2002년 각종 시상식을 휩쓸어 제작자로서 그의 가능성을 확인시켜준바 있다.

여기에 본격적으로 프로듀서 활동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포미닛의 ‘거울아 거울아’가 (DM이 인정한 유이한 히트곡 중 나머지 하나이다)가 큰 히트를 치면서 그의 주가는 더욱 높아졌다.

하지만 가요 시장은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그동안의 실적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DM은 2012년 그룹 디유닛을 직접 제작했지만 세련된 음악과 화려한 퍼포먼스에도 불구하고 그가 받아든 성적표는 성공이라고 부르기 힘든 것이었다.

물론 여기서 좌절할 DM은 아니었다. 이후 DM은 새롭게 남성듀오 원펀치의 제작에 들어갔고, 오랜 친구이자 프로듀서 및 엔터테인먼트사 대표 용감한 형제와 손을 잡아 자신에게 부족했던 매니지먼트적인 측면을 보완했다.

DM은 “아무래도 용감한 형제가 회사를 가지고 있다보니 매니지먼트적인 부분은 더 잘해서 손을 잡게 됐다”며 “사람들이 금전적인 부분을 지원받는 게 아닌가 오해를 하기도 하는데, 그런 건 없다. 다만 서로 부족한 부분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으로 용감한 형제도 나와 함께해 도움을 받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라고 밝혔다.

DM, 사진|D-Business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DM은 여느 힙합 프로듀서와 다르게 아이돌 시장에 상당히 적극적이라는 것으로, 이에 대해 DM은 “솔직히 난 뼛속까지 힙합이다. 아이돌이라고 해도 (제작한 노래)그 안에는 힙합적인 요소가 있다”라고 입을 열었다.

이어 그는 “다만 당시 힙합시장과 아이돌 시장을 비교했을 때 그 시장규모의 차이가 컸다. 기왕에 활동하는 것 큰물에서 놀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아이돌 음악을 만들고 그룹을 제작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것이 아이돌 음악에만 매달리겠다는 뜻은 당연히 아니다. 실제 DM은 그사이 태완과 개리, 크러쉬가 부른 ‘어디갈래’나 최근 MBC 뮤직의 ‘Catch Music If You Can’을 통해 제작한 ‘S.O.L.O’ 같은 곡은 DM표 힙합의 맛을 제대로 들려주고 있다.


DM은 “최근 힙합 시장이 커졌고, 힙합은 내 전문분야다”라며 “드디어 나의 턴이 왔다. 지금부터는 내 판을 키울 적기이다”라고 자신감을 드러내 앞으로 힙합 프로듀서로서의 능력을 본격적으로 발휘할 것을 알렸다.

그렇다고 DM이 마냥 시장의 확대를 즐거워하고만 있는 것은 또 아니다. 오랜 시간 힙합에 몸담아 온 그답게 현재 힙합씬의 이상 징후에 대한 걱정과 고민도 놓지 않고 있었다.

DM은 “힙합시장이 커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단적으로 과거에 배고프게 힙합을 하던 이들이 지금은 배가 고프지 않다. 문제는 그동안 여러 사람들이 그렇게 키우려고 노력해도 커지지 않던 힙합씬이 ‘쇼미더머니’ 같은 방송프로그램의 힘으로 커졌다는 것이다”라고 현재 한국의 힙합씬은 방송 미디어의 힘이 과도하게 개입된 시장임을 지적했다.

이어 “그러다보니 CJ E&M과 같은 거대 미디어기업이 힙합씬을 좌지우지하는 경향이 있다. 또 방송의 특성상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힙합을 웃음거리로 만든 부분도 없지 않다”라고 강조했다.

DM은 “실례로 마스터우가 ‘쇼미더머니’에 출연하고 ‘이리와봐’를 발표했는데, 마스터우가 유명해진 게 다른 게 아니라 ‘댓츠 노 노’라는 유행어 때문이었다”라며 “‘쇼미더머니’ 방송이 힙합시장을 키운 것은 맞고, 이런 모습이 하나의 과정이라고 하면 또 할 말이 없지만 부작용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라고 솔직한 의견을 덧붙였다.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쇼미더머니’로 흘러가자 DM은 이로 인한 또 하나의 고민거리를 털어놓았다. 바로 소속 아티스트 원펀치의 원이 ‘쇼미더머니4’에 지원하고 싶어 하는 것이 그것이다.

DM, 사진|D-Business



원의 ‘쇼미더머니4’ 지원 여부를 두고 입으로는 고민이라고 했지만 DM의 생각은 확고하고 솔직했다. DM은 “‘쇼미더머니’가 100%리얼리티라면 모를까, 거대 기획사와의 유대관계에 따라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솔직히 나도 사전에 어느 정도 조율이 가능하다면 나가게 하고 싶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나가게 하고 싶지 않다”라고 프로그램의 공정성에 일침을 가했다.

그의 문제의식은 ‘쇼미더머니’나 힙합씬에만 그친 것이 아니었다. 최근 제이지가 시작한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타이달’을 언급한 DM은 “미국에서는 7:3으로 분배되는 아이튠도 불합리하다고 아티스트들이 직접 음원 스트리밍 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판국에 국내에서는 그 아이튠마저도 아직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또 TV 음악프로그램은 PD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수의 옷을 갈아입게 하는 거대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할 수만 있다면 법이라도 만들어 이런 부분을 바꾸고 싶다”라고 국내 가요계의 부조리에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DM의 선택은 음악이고 힙합이다. 본인에게 힙합이란 무엇인지 다소 뻔하고 식상한 질문을 건네자 DM은 “좀 유치하긴 하지만 힙합은 나에게 인생이다”라는 답을 내놓았다.


DM은 “1990년대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그때부터 힙합 안에 살았다. 1991년 중학교 1학년 때 힙합을 접했고, 당시 동양인중에 똥싼 바지를 입고 다닌 사람은 나와 진원이(마스타우)밖에 없었다. 심지어 테디가 나에게 ‘형은 왜 이렇게 바지를 내려 입고 다녀?’, ‘왜 군복을 입고 다녀?’라고 묻기도 했다. 그때 테디는 나팔바지를 입고 다녔다”라고 당시 추억을 떠올렸다.

이어 “그때부터 힙합과 함께 했고, 지금까지 힙합으로 먹고 살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라고 힙합이 곧 삶이고 생활의 일부분이라는 전혀 유치하지 않은 설명을 덧붙였다.

이처럼 힙합안에 살았고 남은 인생도 그 안에서 살아갈 DM인 만큼 현재 씬의 문제점에 더욱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을지 모르겠다.

끝으로 DM은 “어려서부터 골목대장, 동네대장, 그 지역 대장 등 뭘 해도 1등을 못한 적이 없었다. 어릴 때 나중에 유명인사나 거물이 되지 못하면 엠파이어 스테이트빌딩 꼭대기에서 떨어져 죽어서라도 유명인사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라며 “그런데 음악을 시작하고부터는 1등을 못했다. 제작자로는 반드시 1등을 해보고 싶다”라고 심기일전했다.

이어 “내 롤모델이 (양)현석이 형이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게 아니라 (양현석처럼)문화판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거물이 되고 싶다”라고 스스로에게 약속을 걸었다.

DM, 사진|D-Business


동아닷컴 최현정 기자 gagnrad@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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