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도 많은 팬을 거느린 다니구치 지로가 그래픽 노블로 그린 산책의 정수. 21편의 일화를 통해 다양한 상황에서 산책을 즐기는 인물들을 보여준다. 대화와 지문을 극도로 절제해 오로지 이미지 힘만으로 이런 감성을 전달할 수 있는 작가는 드물 것이다.
지방 소도시에 사는 주인공은 동네를 돌아다니며 새를 보고, 낯선 사람들을 관찰하고, 시골길을 걷고, 나무에 올라가고, 장난감 비행기를 날린다. 산책을 통해 그가 보여주는 것은 진정한 자유와 행복이다. 작가는 후기를 통해 자신 역시 산책 마니아임을 고백한다. 아무 목적 없이 산책에 나서면, 그 순간부터 시간이 천천히 흐르기 시작함을 느끼게 된다. 총 4부로 구성된 이 책의 마지막 4부는 나쓰메 소세키의 장편소설 ‘산시로’에서 줄거리를 빌려왔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자꾸만 어디로든 떠나 느긋하게 걷고 싶어진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