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토피아] 끌고가는 야구와 공감하는 야구

입력 2015-05-18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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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룡 감독이 이끈 ‘해태 왕조’는 20세기 한국프로야구의 상징과도 같았다. 많은 경쟁팀들이 ‘해태 DNA’의 이식을 시도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외부이식’보다는 ‘내부육성’이 팀의 체질을 더 강화시켜 진정한 발전을 기할 수 있음을 입증한 반면교사다. 이렇듯 21세기 프로야구에선 선수와 지도자의 공감을 토대로 한 내부육성이 더욱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다. 스포츠동아DB

김응룡 감독이 이끈 ‘해태 왕조’는 20세기 한국프로야구의 상징과도 같았다. 많은 경쟁팀들이 ‘해태 DNA’의 이식을 시도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외부이식’보다는 ‘내부육성’이 팀의 체질을 더 강화시켜 진정한 발전을 기할 수 있음을 입증한 반면교사다. 이렇듯 21세기 프로야구에선 선수와 지도자의 공감을 토대로 한 내부육성이 더욱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다. 스포츠동아DB

■ 사라진 ‘해태 프리미엄’과 지도자의 덕목

과거 구단들 ‘해태 DNA’ 롤모델로 꼽아
엄격한 규율·강압적인 지도로 선수 육성
최근엔 지도자와 선수 소통 중요성 주목

한때 ‘해태 프리미엄’이라는 것이 있었다. 지도자를 선택하거나 트레이드를 할 때 해태 출신이면 우대해줬다. 해태 출신 선수들의 투지와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높이 샀다. 20세기 최강팀 해태가 준 후광 효과였다. 해태 출신이라면 뭔가 다른 특별한 DNA를 갖고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특히 팀워크가 모래알이라고 판단했던 팀에선 올바른 해결책이 될 것으로 믿었다. 역사가 입증했지만 해태 프리미엄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짧은 시기에 자취를 감춘 해태 프리미엄은 21세기 우리 야구의 선수관리와 지도자의 덕목에 대한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물가로 끌고 간 말에게 어떻게 물을 먹일 것인지’가 요즘 지도자와 선수 사이에 놓인 소통과 관련된 화두다.


● 구단들이 기대했던 ‘해태 DNA’는 허상?

20세기의 많은 구단들은 우승의 요건으로 선수들의 승부근성과 헝그리 정신을 먼저 꼽았다. 기량 이전에 정신력이 강조되던 때였다. 선수들을 강하게 키워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가끔은 강압적 지도방식과 엄격한 상명하복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대놓고 권장하진 않았지만 선후배 사이에 존재했던 구타와 강한 내부규율, 혹한기 극한체험과 같은 훈련방법 등을 선호했다. 누군가 성공하면 손실을 냉정하게 판단하기보다는 즉시 따라했다.

물론 이 방법이 통할 때도 있었다. 그 시대에 통용되던 야구 패러다임이었다. 선수들은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않았다. 감독 또는 코치에게 찍히면 1군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어려웠고, 최악의 경우 2군에서 유니폼을 벗어야 했다. 선수가 결정할 수 있는 마지막 권리인 은퇴도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했다. 당시 스타들이 변변한 은퇴식도 없이 팬들과 작별한 이유다. 선수는 조직을 위한 부품이고, 리더는 오직 감독이었다. 해태의 우승 DNA는 이런 토대 위에서 나왔을 것이라고 팬들은 믿었다. 더 전문가적인 눈으로 봐야 하는 구단도 그렇게 여겼다.

엄격함과 규율이 강조된 해태야구. 그러나 그라운드에선 선수들의 강한 개성과 기량이 다른 팀보다 더 보장됐다. 김응룡 감독은 훈련도 코치에게 맡겼고, 경기 때는 다른 어떤 팀보다 자유롭게 플레이하도록 내버려뒀다. 그만큼 해태 선수들의 타고난 기량이 뛰어나기도 했다. 삼성처럼 세련되게 잘하지는 못했지만, 해태야구는 투박하면서도 힘이 있었다. 규율과 자율이 비빔밥처럼 잘 어우러진 해태야구는 9번의 우승을 만들었다. 타 구단들은 그 속에서 해태야구의 허상만 봤을 수도 있다.


● 야구는 성장하고 있지만 몇몇 분야에서의 제자리걸음은 아쉽다!

요즘 많은 베테랑 야구인들이 걱정하는 것들 중 하나가 기량의 퇴보다. 어느 야구인은 “SK와 두산이 한국시리즈에서 치열하게 경쟁했던 2007∼2008년이 정점이었다. 그 때의 피나는 경쟁이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의 선전과 2008베이징올림픽 금메달로 이어졌다. 그 이후 우리 야구는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뒤로 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야구역사가들은 당시를 야구의 3요소 공·수·주 가운데 최초로 주(베이스러닝)에 눈을 돌린 시기로 기억할 것이다. 또 예측수비의 중요성도 어느 때보다 강조됐고, 세밀한 야구가 승리의 방편으로 인정됐다.

물론 그 이후에도 우리 야구는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 원년 4할타자 백인천, 1983년 30승투수 장명부가 지금 현역으로 뛴다면 그 같은 성적은 꿈도 꾸지 못할 정도다. 그만큼 선수들 개개인의 기량이 향상됐고 힘도 늘었다. 특히 타자들의 기량이 투수들보다는 더 눈에 띄게 발전했다. NC 김경문 감독은 “트레이너의 도움을 받아 다양한 방법으로 몸을 키운 타자들의 힘이 좋아졌다. 하루에 1000번 이상 스윙하는 타자들이 전보다 좋아진 반발력의 배트까지 사용한다. 요즘 투수들이 견뎌내지 못하는 이유”라고 진단했다.

그렇다면 베테랑들이 지적하는 기량의 퇴보는 무엇일까. 투수들의 정교한 컨트롤과 수비수의 연계플레이, 특정 상황에서 발휘되는 야구센스에선 아직 발전의 여지가 더 있다. 또 갑자기 팀이 늘어나다보니 2군에서 기량을 연마해야 할 선수들이 프로로서는 창피한 기량을 보여주는 경우도 간혹 있다. 포수가 미트를 한 가운데로 고정했지만, 거기에 스트라이크를 던지는 못하는 투수 또는 쉬운 태그조차 못하는 선수도 눈에 띈다. 그만큼 아마추어에서 기초를 완벽하게 닦지 않은 채 프로에 입문하고, 그런 선수들을 육성하는 시스템에서 고려해볼 만한 소지가 있다.


● 육성의 중요성이 커지는 시대, 선수와 지도자의 공감은 필수!

요즘 프로야구에선 한 분야의 전문가를 쉽게 찾기가 어렵다. 어느 구단 프런트는 “좋은 코치를 원했지만 수많은 코치들 가운데 의외로 좋은 코치를 구하기는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확고한 야구이론으로 선수들을 설득해서 프로선수에게 꼭 필요한 기술을 전수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해주는 전문가가 많지 않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몇몇 코치들에게 요즘 선수들을 지도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를 물었다. “소통”, “공감”, “존중” 등의 답이 돌아왔다. 과거에는 쉽게 듣기 힘든 말들이다. 독서광인 LG 차명석 수석코치는 “공감”을 먼저 꼽았다. 그는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의 말을 인용했다. “어떤 조직이든 각자의 개성을 통해 조직을 변화하려는 욕구가 있다. 이런 욕구를 무시하는 조직은 발전하지 못 한다”고 말했다. 한 팀 구성원 모두가 저마다의 개성을 지니고 있는데, 이것을 짜여진 틀에 맞춰 따라오라고만 강요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그런 면에서 선수와 같은 눈높이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소통하면서 목표를 공감하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요즘 선수들은 지도자의 말이라면 무조건 복종하거나 아니면 흉내라도 내는 20세기의 선수들과는 전혀 다르다.

이런 선수들을 움직이려면 이해와 설득의 기술이 필요하다. 만일 어떤 기량을 갖춰야 할 때 또는 자세를 수정해야 할 때 “무조건 이렇게 해”라고 지시하면 받아들이지 않는다. 왜 이런 것이 필요한지 설명하고, 사례나 과학적 근거를 들어 선수가 변화를 납득해야 자발적으로 움직인다.

예전 지도자들은 “말을 물가로 끌고 갈 수는 있어도 억지로 물을 먹일 수는 없다”고 했다. 요즘 지도자는 말에게 ‘왜 지금 물을 먹어야 하며, 물을 먹으면 어떻게 좋아지는지를 충분히 알려서 말 스스로가 물을 먹도록’ 해야 한다. 그 과정은 강압적 방법보다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인내가 필요하다. 간혹 이해를 못하는 말에게 잘 알아듣도록 설명도 해야 한다. 시간은 걸리지만, 그렇게 해야 스스로 납득하고 자신의 행동에 당위성을 가지고 움직인다.

바로 효과가 나오는 ‘주입식 교육’보다는 시간이 걸려도 선수 스스로 움직이게 만드는 ‘주도적 교육’이 결국에는 커다란 결실을 낳는 시대다. 그래서 지도자는 더욱 힘들고, 유능한 지도자를 찾기가 힘든 세상이 된 것이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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