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민지 “희망으로 4년 후 기약… 언니들 자랑스러워요”

입력 2015-06-23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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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축구대표팀 여민지. 스포츠동아DB

■ 여민지가 띄운 편지

프랑스와 2015캐나다여자월드컵 16강전을 기다리던 새벽녘, 대회 기간 언니·친구·막내와 주고받은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하나하나 들여다봤습니다. 주책 맞게 코끝이 찡해지고 왈칵 눈물이 나더라고요. 우리가 목표한 사상 첫 승, 조별리그 통과를 모두 일군 만큼 ‘이젠 마음 편히 TV를 시청해야지’ 생각했는데, 그게 생각처럼 쉽지 않더라고요.

막상 경기가 시작되고, 어찌나 초조하던지. 가슴이 두근거리는 느낌이 바로 이거구나 싶었네요. 진짜 제가 뛸 때보다 훨씬 떨리는 거 있죠? 그런데 경기 초반 2차례 2대1 패스에 2골을 내주면서 오히려 제 마음도 차분해졌어요. 이 때부터 팬 심(心)을 버리고, 냉정하게 경기를 보게 됐죠. 여지없는 프랑스와의 실력차. 솔직히 그건 바늘에 찔린 것처럼 아팠는데, ‘정말 우리가 안 되는 건가’ 싶으면서도 확실히 상대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어요.

솔직히 프랑스가 잘하는 건 모두가 알고 있었잖아요. 인프라, 환경, 풀뿌리 축구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죠. 그러면서도 ‘공은 둥글다’는 오랜 격언을 떠올리면서 혹시나 기대를 걸었고, 언니들이 “지금 우리 분위기가 너무 좋다”는 말을 해줬을 때 내심 8강도 바라본 건 사실이랍니다. 물론 절반은 걱정이었지만. 종료 휘슬이 울리고 언니들의 표정부터 살폈어요. 아주 어둡진 않은 얼굴. 눈물을 보이기보다는 담담히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 같아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또 한 번 마음이 찡했어요.

그래도 마냥 슬프진 않아요. 2003년 미국대회 이후 12년을 기다린 지난 시간보다는 더욱 큰 희망으로 4년 후를 기약하게 됐잖아요.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큰 성과였고, 우리 여자축구가 한 걸음 더 올라설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생각해요. 더욱이 조 3위에게 주어진 와일드카드가 아닌, 당당히 실력으로 조 2위까지 올랐다는 것도 자랑스러워요. 우리와 함께 월드컵에 나선 호주·중국·일본이 나란히 8강에 안착한 걸 보면 우리의 실력이 마냥 부족한 건 아니라고 봐요. 한시라도 빨리 저도 부상을 훌훌 털고 일어나 모두와 함께 하고 싶어요. 당장 내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을 준비해야겠죠? 그라운드에선 호랑이처럼 무서우면서도 자상한 아빠처럼 부족한 제자들을 다독여주신 윤덕여 감독님께도 정말 사랑한다는, 그리고 너무 감사하다는 말씀도 전하고 싶어요. 우리 모두 파이팅!


● 여민지는?

한국여자축구의 스트라이커 계보를 잇고 있는 여민지(22·대전스포츠토토)는 2015캐나다여자월드컵을 앞두고 여자대표팀 최종 엔트리에 뽑혔다. 그러나 파주 NFC에서 진행된 연습경기 도중 왼쪽 무릎 십자인대를 다쳐(파열) 생애 첫 성인월드컵 출전의 꿈을 접었다. 현재는 수술을 받고 재활에 매진하고 있다.

정리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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