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시연&서울시향, “면도하고 나온 듯한 베토벤 2번”

입력 2015-06-27 18:2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묘한 경험이었다. 마치 말러처럼 울리는 베토벤을 듣는다는 것은.

6월 25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서울시향의 콘서트가 열렸다. 그런데 로비에 붙은 플래카드의 타이틀이 눈길을 끌었다.

‘하나금융그룹과 함께 하는 성시연의 베토벤 교향곡 2번’. 콘서트 타이틀에 지휘자의 이름이 내걸렸다.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로 자리를 옮기기 전 성시연은 서울시향의 부지휘자를 맡고 있었다. 서울시향의 소리를 구석구석까지 손바닥 들여다보듯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지휘자 중 한 명이란 얘기다.

첫 곡은 쿠르트 바일이 작곡한 ‘서푼짜리 오페라 모음곡(막스 쇤헤르 편곡)’. 경쾌하고 유쾌한 작품으로 서울시향 단원들의 ‘손풀기’에도 적당한 선곡이다.

세 번째 곡만이 유독 몽롱한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플루트가 아름다운 주제를 연주하면 이어 바이올린이 주제를 받고, 다시 클라리넷에게 건네는 식으로 진행된다. 마지막 네 번째 곡에 가서는 다시금 쿵쾅쿵쾅 2비트 행진으로 마무리.

두 번째 프로그램은 구스타프 말러의 ‘소년의 마술피리’ 중 다섯 곡이 연주됐다. 바리톤 볼프강 홀츠마이어가 무대에 섰다. 상당한 거구의 아저씨로 옆에 선 성시연이 덜 자란 고등학생처럼 보였다.

성시연은 알려져 있듯 말러 스페셜리스트이자 애호가다. 가끔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금관이 바리톤의 소리를 잡아먹기는 했지만, 성시연은 필요할 때마다 공백을 숨처럼 ‘스읍’ 하고 집어넣어 홀츠마이어가 편하게 노래할 수 있도록 도왔다. 쓸쓸하고 비장한 작품이다. 소리가 다소 메마른 감이 있었지만, 홀츠마이어는 능숙한 이야기꾼이었다. 스크린의 자막 도움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등장인물들의 감정이 전해져 왔다.

마지막 곡 ‘아름다운 트럼펫 울리는 곳’에서는 단원 이미성의 황홀한 오보에 선율을 들을 수 있었다.

인터미션 후 드디어 콘서트의 절정인 베토벤 교향곡 2번이 연주됐다.

성시연의 ‘소리’는 두텁지는 않지만 각 악기의 소리를 명징하게 드러낸다. 템포는 설득력이 있다.

다만 전에는 깔끔하고 우아한 소리를 주로 만들어냈는데 요즘은 좀 더 콘트라스트가 강한 소리로 변했다. 성시연만의 악센트 같은 것이 만들어진 느낌이다.

2악장에 들어서자 서울시향이 현의 아름다움을 뽐낸다. 쌀밥처럼 소리에 윤기가 잘잘 흐른다. 베토벤 교향곡 2번이 이렇게 아름다운 작품이었나 싶을 정도다.

3악장에서는 다시금 굴곡이 커졌다. 성시연 특유의 악센트가 재등장. 강과 약, 빛과 어둠, 소리와 소리의 대비가 성큼 드러났다.

관객들은 긴 박수와 함성으로 성시연과 서울시향에게 받은 감동의 크기를 보여 주었다. 빗길을 뚫고 달려가 들은 보람이 있었다.

말러처럼 울리는 베토벤이라니. 베토벤 특유의 텁텁함을 걷어낸, 이처럼 투명하고 명징한 베토벤은 참으로 오랜 만의 경험이었다. 아침에 면도를 하고 나온 베토벤과 함께 브런치를 먹은 기분이었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 ㅣ 경기도문화의전당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