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를 울려’ 한이서 “끈기로 버틴 10년, 이제 문을 열었다”

입력 2015-07-25 08:4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연기자 한이서. 스포츠동아DB

“어렸을 때도 끈기 하나는 끝내줬다. 오래 매달리기, 오래 달리기는 늘 자신 있었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동안, 알아주는 이 없어도 오로지 연기 하나에 매진해온 연기자 한이서(30)가 이제 제대로 된 출발점 앞에 서서 대중의 평가를 기다리고 있다.

한이서는 MBC 주말드라마 ‘여자를 울려’에서 인교진과 불륜에 빠지며 김정은에게 상처를 안긴 부잣집 막내딸 역을 연기했다.

단순한 불륜녀로 그려지기보다는 자신을 이용하려 했던 남자에게 통쾌하게 이별을 선언하고 유학길에 오르며 시청자에게 쾌감을 안긴 캐릭터다.

드라마에서 하차한 후 시청자의 입장으로 돌아간 한이서는 “극에 새로운 전환점을 남기고 하차하게 돼 기분이 남다르다. 촬영현장에서는 멀어졌지만 드라마를 보며 마치 ‘집안 소식을 듣는 기분’을 느낀다”며 아쉬운 미소를 지었다.

극중 당당하고 뻔뻔한 모습과 다르게 단아한 외모에 차분하고 논리적인 말투의 소유자다. 주변의 말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뚝심은 그가 10년간 연기라는 한 우물을 팔 수 있었던 원동력이기도 했다.

한이서 역시 그 시간을 버틴 힘을 “성격 덕”으로 돌리면서도 “하지만 부모님의 격려가 아니었다면 힘들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몇 백 번의 오디션을 보고도 결과가 좋지 못할 때는 의기소침해졌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가 ‘그래도 네가 하고 싶은 일을 계속 하고 있잖니. 그 결과가 아직 미완성인 것일 뿐이니 힘을 내라’고 말씀해주셔서 큰 힘이 됐다.”

한이서가 말한 그 ‘성격’ 덕에 극중 캐릭터 연기는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소리 지르고 분노하며 감정을 소비하는 연기를 하고 나면 “100미터를 전력질주한 것”처럼 지치고 힘들었다.

그는 “다른 배우들은 그런 연기에 큰 쾌감과 희열을 느낀다고 하던데 나는 그런 기분은 느껴보지 못했다. 아마도 경험이 부족하고 현장에서 여유가 없었던 탓이 큰 것 같다”고 말했다.

예술고등학교로 진학한 뒤 대학교에서도 연기 전공을 하며 오로지 배우의 꿈을 꾼 그이지만, 기회는 생각보다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매번 오디션에서 탈락한 후 그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자 그림도 그리고, 바느질을 하는 등 에너지를 분산시키려 했지만 그럴 때마다 연기에 대한 애착이 강해졌다.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괴로웠던 스물아홉의 마지막 날인 2013년 12월31일, 훌쩍 울릉도로 떠났다. 민박집에서 우연히 TV를 보는데 마침 KBS 연기대상이 한창이었다. 그리고 KBS 2TV ‘비밀’로 여자조연상을 수상하는 이다희의 모습을 지켜봤다.

“수상 소감에서 ‘이 시간을 너무 기다려왔다’고 얘기했는데 순간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그렇게 많은 오디션을 봤는데 나에게 단 한 번의 기회도 오지 않은 이유는 과연 뭘까. 오히려 내 자신을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

그 후 오히려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서른을 맞이한 한이서는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여자를 울려’라는 기회가 찾아왔고, 처음으로 제대로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알릴 수 있는 무대를 만났다.

이제 막 출발선상에 섰을 뿐이라는 한이서는 조급함을 경계하며 다시 한 번 자신을 토닥이고 있다.

“어차피 난 이렇게 살아왔잖아. 달팽이처럼. 남들한테는 잘 보이지 않지만 달팽이처럼 이렇게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어. 달팽이가 느리지만 분명한 흔적을 남기듯 나도 천천히 흔적이 남기는 배우가 될 거야.”

스포츠동아 김민정 기자 ricky33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