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커피플] 이용재 “우한에서 부족한 나를 발견”

입력 2015-08-12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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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재에게 2015동아시안컵은 시련의 장이었다. 그래도 그는 숨겨진 재능을 발견하려던 바람은 수포로 돌아갔어도 확실한 과제를 얻은 만큼 소득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며 밝게 웃었다.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동아시안컵 김신욱 합류로 측면날개 포지션
유럽축구 보며 공부했지만 경기땐 허둥지둥
크로스 타이밍·위치선정 등 멀티능력 절실


2015동아시안컵(1∼9일·중국 우한)에서 통산 3번째(2003·2008·2015년)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은 축구대표팀 ‘슈틸리케호’는 10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당당히 개선했다. 대회 시상대에 올랐을 때나 공항 입국장을 빠져나올 때 태극전사들 대부분의 표정은 밝았지만, 모두의 마음이 똑같은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는 활짝 웃은 반면, 일부는 쓰린 속을 달래야 했다. 이용재(24·V-바렌 나가사키)는 후자에 가까웠다. 동아시안컵 2경기(중국·일본전)에서 그의 모습은 분명 기대이하였다.

이용재와의 대화는 우연히 이뤄졌다. 공교롭게도 귀국 항공편 바로 옆에 착석하면서 짧게나마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밝은 미소는 그대로였지만, 앞좌석 머리받침대에 손가락 그림을 그려가며 자신의 부족함을 설명한 그의 얼굴에는 절박함이 묻어나왔다.


● 이론과 실제의 괴리

2014인천아시안게임 우승 멤버인 이용재는 동아시안컵 출격에 앞서 이미 2차례 A매치를 소화했다. 6월 원정 2연전에서였다. 데뷔무대에서 그의 등장은 상당히 화려했다. ‘울리 슈틸리케(61·독일) 감독이 찍으면 통한다’는 최근 한국축구의 법칙이 그에게도 적용됐다. 6월 11일 말레이시아 샤 알람에서 열린 아랍에미리트(UAE)와의 평가전(3-0 승)이었다. 선발 원톱으로 나선 그는 1-0으로 앞선 후반 14분 쐐기골을 성공시켰다. 첫 A매치에서 대뜸 데뷔골을 터트린 것이다. 이어 6월 16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미얀마와의 2018러시아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1차전(2-0 승)에도 후반 33분 교체 투입돼 제 몫을 했다.

그러나 동아시안컵은 녹록치 않았다. 슈틸리케 감독은 대회 최종엔트리(23인)를 선정하며 이용재를 미드필더(MF)로 낙점했다. 6월 동남아 원정에서 그는 이정협(24·상주상무)과 공격수(FW)로 분류됐지만 장신(197.5cm) 골잡이 김신욱(27·울산현대)이 가세한 동아시안컵에선 측면을 담당해야 했다.

준비는 잘했다. 출국을 앞두고 지난달 29일 열린 K리그 챌린지(2부리그) 서울 이랜드FC와의 연습경기였다. 슈틸리케 감독은 경기 전날 이용재를 따로 불러 “측면 날개로 뛰라”고 지시했다. 곧장 이미지 트레이닝에 들어갔다. 유럽축구 주요 경기 동영상을 돌려보며 측면 공격수의 역할에 대해 연구했다.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막연한 불안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2일 우한스포츠센터 스타디움에서 열린 중국과의 대회 1차전(2-0 승). 이용재는 후반 34분 이재성(23·전북현대)을 대신해 그라운드를 밟으며 분위기를 익혔다. 그는 “쉽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이어진 5일 한일전(1-1 무)은 최악의 90분이었다. 경기 내내 허둥거렸고, 자신의 역할을 찾지 못했다. 나쁜 의미에서 ‘인생 경기’였다.


● 수비 보강 과제 얻다!

전방과 공격 2선 중앙에 배치됐다면 많은 움직임과 넓은 활동폭이 장기인 이용재가 빛날 수 있지만, 측면은 ‘맞지 않는’ 옷이었다. 공격수답게 볼을 동료와 주고받는 데만 익숙했다. 그러나 측면 날개는 문전 침투와 크로스 타이밍, 측면 풀백과의 위치 조정 등 신경 쓸 것이 많았다. 자칫 볼을 빼앗기면 측면 전체가 무주공산이 된다는 점도 항상 염두에 둬야 했다.

일본전에서 전방에 무게를 실은 대표팀이 공격 일변도로 나섰음에도, 이용재가 볼을 잡으면 왠지 자신감 없는 듯한 장면이 자주 나온 것도 그래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경기 후 따가운 화살이 그에게 쏟아졌다. 비난의 중심에 섰다. 결국 9일 북한과의 대회 최종전(0-0 무)에는 나서지 못했다.

이용재는 ‘쿨’하게 인정했다. “비난받을 만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현대축구는 멀티 포지셔닝을 많이 강조한다. 나도 우한에서 또 다른 재능, 숨겨진 나를 발견하고 싶었다. 너무 아팠지만 내게 어떤 면이 부족한지 발견했으니, 전혀 소득이 없는 건 아니다.”

이용재는 귀국 환영행사를 마치자마자 공항 지하 1층 미용실을 찾았다. 일본 나가사키로 향하는 항공편을 기다리며 머리를 다듬던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남자에게도 헤어스타일을 바꾸며 분위기 전환이 필요할 때가 있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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