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국의 야구여행] 멀리보는 NC·KIA, 함께 가는 즐거운 야구

입력 2015-08-28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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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간다. 선수 개인의 스타성보다 팀 전체의 조화와 협심을 강조한 NC(위)와 KIA(아래)의 돌풍은 야구가 ‘함께 하는’ 스포츠라는 진리를 다시 한번 일깨운다.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 NC·KIA 역습의 의미


꼴찌후보 KIA, 과감한 신인 기용으로 5위 반전
NC, 용병특혜 사라지고 원종현 이탈에도 단합

“아, 글쎄, 그, 저, 뭐, 저, 음, 저, 고것이 긍게. 아무튼 우리 선수 모두 잘했고, 그렇슴다.”

늘 그렇다. 그래서 웃음이 난다. TV 인터뷰를 보면 본론에 앞서 어김없이 반복되는 추임새. 어찌 보면 동네 이장 같이 구수하고, 어찌 보면 동네 형 같이 친근하다. 그런데 최근 성적이 좋다 보니 그 눌변조차 투박한 뚝배기처럼 정겹다.

KIA 김기태 감독. 지난해 말 KIA 사령탑으로 부임한 뒤 KIA 팬들에게조차 환영 받지 못했다. 키스톤 콤비 유격수 김선빈과 2루수 안치홍이 동반 군입대한 마당에, 고향에서 꽃을 피우던 ‘슈퍼소닉’ 이대형을 신생팀 kt에 특별지명으로 빼앗기자 KIA 팬들의 성토는 극에 달했다. KIA호는 선장이 바뀐 뒤 출항하기 전부터 거친 파도를 만났다.

시즌에 앞서 “kt를 빼면 꼴찌 후보”라는 혹평도 쏟아졌다. 베테랑 포수 김상훈도 마스크를 벗었으니 팀의 근간인 센터라인이 다 바뀌었다. 오키나와 스프링캠프 연습경기에서 한 번도 이기지 못하고 9전패. 타선은 힘이 없고, 수비는 불안했다. 가뜩이나 얇은 선수층에 만년 약점인 불펜은 더 헐거워 보였다. 지난해에도 9개 팀 중 8위였는데, 과연 올해 몇 위를 할까. 희망은 있는 것일까.

그러나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 속에서 닻을 올린 KIA호는 어린 무명용사들이 힘을 합치면서 멋진 항해를 하고 있다. 몇 차례 고비를 만나기도 했지만, 포스트시즌 마지막 티켓이 주어지는 와일드카드 싸움에서 주도권을 잡고 있다. 이 레이스의 종착역이 어디일지 아직 단언할 수 없어도, 지금까지 모습만으로도 이미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김 감독은 현역 시절엔 카리스마 넘치는 ‘보스’였지만, 감독이 된 뒤에는 오히려 자세를 낮추는 ‘리더’로 거듭나고 있다. 경험 없는 어린 선수들과 함께 노를 저으며 거친 파도를 이겨나가고 있다. 억울해하는 선수를 대신해 그라운드에 몸소 드러누워 심판에게 항의도 해보고, 수훈선수에게는 먼저 허리를 90도로 숙여 인사를 한다. 소외된 선수에겐 다가가 이름을 불러주며 따뜻하게 손을 잡는다. ‘무게’를 벗는 대신 ‘눈높이’를 입었다.

“우리 팀에 공·수·주 3박자를 모두 갖춘 선수는 드물죠. 인정합니다. 공·수가 되지만 주루가 약하고, 수·주가 되지만 방망이가 약한 선수가 많지요. 그렇지만 십시일반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주루가 안 되는 선수가 있으면 주루가 강한 선수를, 수비가 약한 선수가 있으면 수비에 강점이 있는 선수를 돌아가며 기용해 부족한 힘을 메우려고 했습니다. 1군 풀타임 경험이 없는 어린 선수들은 체력적으로 힘들기 때문에 2군에서 준비하고 있는 선수와 바꿔가며 경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약한 힘이라도 하나로 모이면 큰 힘이 됩니다.”

들풀과 함께 핀 못난 꽃들도 꽃잎 하나하나에 향기가 다 있다. 모자란 선수의 단점이 아닌 장점을 보는 시각. 어둡던 KIA 선수들의 얼굴엔 웃음이 번지고 있다. 감독이 선수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한 가지다. “못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안 하는 것이 문제다.”

KIA와 함께 가장 큰 이변을 일으키고 있는 팀을 꼽으라면 단연 NC다. 1위 삼성을 위협할 만큼 최강팀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돌풍을 일으킨 NC지만, 올 시즌 5강으로 꼽은 전문가는 드물었다. 외국인선수 특혜가 사라지고, 무엇보다 불펜의 핵으로 성장한 원종현이 대장암 수술로 이탈한 것이 커 보였다.

그러나 NC 김경문 감독은 “선수가 없다”는 앓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선수들이 모자에 원종현을 상징하는 ‘155’라는 숫자를 새긴 것을 보고는 힘이 났다. 올 시즌 임창민이라는 세이브 1위 투수가 나타나고, 최금강과 임정호 등의 성장으로 불펜의 힘은 더 세졌다.

“위기는 팀을 힘들게도 하지만 팀을 더 강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김진성이나 임창민 등 다른 불펜투수들이 원종현 몫까지 나눠서 해내려는 책임감들이 생기면서 오히려 우리가 더 강해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야구에는 겉으로 드러난 전력 외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힘이 있습니다.”

야구는 개인종목 같지만, 서로 발을 묶은 다음 어깨동무를 하고 달리는 ‘2인3각’ 게임이다. 특출 난 선수가 있어도 혼자 달리면 넘어진다. 서로 보듬고 호흡을 맞춰 달려야 이길 수 있다. 말끝마다 ‘마음’을 강조하는 김경문 감독과 김기태 감독은 그래서 ‘팀 케미스트리’에 해를 미치는 선수에게는 단호하다. 썩은 사과 하나가 상자 안의 모든 사과를 썩게 만든다고 보기 때문이다.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간다’는 인디언 속담은 야구에나 인생에나 함께 적용할 수 있는 경구인 듯하다. 함께 덤벼들면 못 이길 상대는 없다. 그것을 KIA와 NC가 보여주고 있다. 혼자 서는 외나무보다, 함께 서는 푸른 숲이 더 짙은 법이다.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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