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희정 “맥 빠지는 노래? 오히려 한희정스러운 것”

입력 2015-10-01 23: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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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무서워서 제 기사 댓글을 잘 못 봐요. 2집이 나왔을 때 음악 페이지에 달린 댓글 중에 ‘GG 맥 빠지네’ 라는 댓글이 있었거든요. 정말 빵 터졌었어요. 노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아예 노래를 한 곡으로 만들지 왜 나누어놨느냐, 다 비슷비슷한데’라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그래도 전 제 음악이 좋아요. 아무래도 한희정에게 한희정스러운 걸 원하는 분들도 있기 때문이죠.”

한희정은 남들과는 다르다. 흔히 말하는 ‘음원깡패’도 ‘음유시인’도 아니다. 빠르게 변하는 음원시장에서 한희정은 오히려 자신만의 긴 호흡을 유지하고 있다. 데뷔 후 15년 간 ‘더더’, ‘푸른새벽’ 그리고 솔로활동에 이르기까지 각각 다른 곳에서 노래했지만 결국은 한희정이었다.

“‘푸른새벽’ 활동 당시에는 경제적으로 독립이 불가능했어요. 이후 솔로 한희정으로 활동하면서 그 시대에 가장 잘 맞는 노래와 이미지를 보여주려고 노력한 것 같아요. 그래서 실제로 어느 정도 독립할 수 있었고요. 처음에는 노래를 만들고 앨범을 제작하는 게 재밌어서 시작했는데 벌써 여기까지 왔네요.”

자신만의 방식으로 작사 작곡을 해온 한희정은 이번 앨범에서도 독특한 감성을 고스란히 담았다. ‘Slow Dance’라는 앨범명처럼 곡의 전반적인 느낌은 ‘느림의 미학’이다. 그의 곡에는 한 편의 시 같은 추상적인 가사가 주를 이룬다. 해가 갈수록 가사양이 현저히 줄어드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곡마다 달라요. (웃음) 그런데 기본적으로 말이 많은 것 보다는 간단하지만 추상적인 게 더 좋아요. 가사라는 게 텍스트로써 눈으로 봤을 때 이미지인데 그걸 읽으면 소리가 되잖아요. 텍스트의 이런 다양한 면이 참 맘에 들어요. 처음에는 ‘이게 무슨 소리야’ 할 수 있겠지만 가사를 듣다보면 자신만의 독특한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게끔 하는 가사가 좋거든요. 뚜렷한 메시지전달보다는 텍스트가 하나의 곡 안에서 소리나 이미지로 어우러지는 작업이 재밌어요.”


그래서인지 한희정의 곡을 들을 때면 영화 한 편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각 곡마다 듣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을 정도로 곡의 깊이가 상당하다. ‘가능한 일’, ‘그녀와 나’, ‘오래 오래’ 등 앨범 수록곡 모두가 중의적인 느낌이 지배적이다.

“가사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사실 모든 곡들이 제 개인적인 경험에 의해 시작됐어요. 사람간의 관계 안에서 뭔가 느껴지는 감정들이 많잖아요. 한 단어, 한 감정으로 판단할 수 없는 복합적인 것들을 담으려고 노력했어요. ‘가능한 일’ 같은 경우는 중의적인 내용이 담겨있는 곡이에요. 제 지인들 사이에서는 패러디가 될 정도로 재밌는 표현이 되기도 했죠.(웃음)”

앨범 수록곡 중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을 묻는 질문에 그는 ‘날마다 다르다’는 표현을 했다. 그러면서도 ‘순전한 사랑 노래’에 가장 많은 공을 들였다고 털어놨다.

“사실 ‘순전한 사랑 노래’는 사랑 노래가 아니에요. 그만큼 이 곡이 가사쓰기가 제일 힘들었죠. 최근에 있었던 여러 가지 일들을 지켜보면서 나열을 하고 여러 번 수정해 완성했어요. 슬프고 화나는 일들을 지켜보면서 느끼는 감정들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고민했어요. 꼭 사랑 노래가 아니더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해석할 몫인 것 같아요.”

이어 한희정은 자신이 음악활동을 계속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자기 자신을 꼽았다. 오롯이 음악 하나에만 몰입하도록 만드는 건 뮤지션으로서 당연히 해아 할 몫이라고 여겼다.

“음악을 하는 데 있어 제 자신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나의 노래를 재밌게 해야 대중들도 그 이상을 들을 수 있거든요. 콜라보 같은 경우에도 마찬가지에요. 상대방이 봤을 때 내가 열심히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공감한 사람들에 협업을 제의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음악을 하면서 참 좋은 일은 내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내가 해온 음악으로 나 자체를 소개할 수 있다는 점이죠.”


최근 EBS ‘공감’ 녹화 현장에서 그는 또 하나의 원동력을 발견했다. 2년 만에 서는 무대에서 긴장감을 떨쳐내려 화장실을 찾은 한희정은 우연히 팬 한명과 마주쳤다.

“화장실에서 손을 씻는데 옆에서 한 여자아이가 양치질을 하면서 힐끔힐끔 쳐다봤어요. 그래서 봤더니 ‘한희정이네요’라고 외치더군요. (웃음) 그 분이 초등학교 때 자신의 언니가 듣던 라디오를 너무 좋아해서 사연도 보내고 제 팬이 됐데요. 근데 벌써 스무 살이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이렇게 시간이 흘렀는데 잊지 않고 기억해 주시는 팬 덕분에 힘이 났어요. 그분들 덕분에 제가 아직까지도 음악작업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지난 2001년 데뷔한 이래 그의 주 무대가 됐던 곳은 인디음악의 산실 ‘홍대’였다. 15년이 지난 지금 홍대의 음악 문화도 많이 그것도 여러 번 바뀌었다.

“데뷔 때만 하더라도 지금보다는 홍대 음악이 덜 소비적이었어요. 어느새 음악이 부가적인 콘텐츠가 된 것 같아서 안타까워요. 음악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요즘은 예능 아니면 아이돌에만 대부분 열광하니까요. 그래도 변방에서 열심히 음악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소신을 잃지 않고 나부터 잘하다보면 해답이 보이지 않을까 싶어요.”

마지막으로 대중에게 어떤 이미지로 비춰지고 싶냐는 물음에 한희정은 선뜻 답을 하지 못했다. 자신이 어떤 말을 한들 그 이미지에 갇혀버리고 싶지 않다는 깊은 속내를 드러냈다. 그의 음악철학도 그랬다. 자신의 결과물에 도취되지 않으려 작업을 마친 곡들을 굳이 듣지 않는다고. 10년이 지나도 계속 이 자리에 머물러 노래하겠다는 가수 한희정의 진심이 묻어나는 대목이었다.

동아닷컴 장경국 기자 lovewit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파스텔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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