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세 김희진 ‘전설의 시작’

입력 2015-12-16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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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K기업은행 김희진이 13일 흥국생명과의 3라운드 홈경기에서 올 시즌 V리그 여자부 첫 번째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이로써 김희진은 ‘살아있는 전설’ 황연주, 김연경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스포츠동아DB

■ 여자선수 3번째·통산 8번째 ‘트리플 크라운’

황연주·김연경 2명만 보유한 대기록
큰 공격·빠른 공격 가능한 미들블로커
체력훈련으로 파워·타점 매시즌 성장

IBK기업은행 김희진(24)이 마침내 올 시즌 첫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13일 화성에서 벌어진 흥국생명과의 ‘2015∼2016 NH농협 V리그’ 여자부 3라운드 홈경기에서 국내여자선수로는 3번째이자, 통산 8번째 대기록을 세웠다. 외국인선수까지 포함하면 역대 53번째다. 이날 28득점, 36%의 공격점유율, 40%의 공격성공률을 기록한 김희진은 백어택, 블로킹, 서브를 각각 3개씩 성공시켰다. V리그 12시즌 동안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토종여자선수는 황연주(29·현대건설)과 김연경(27·페네르바체)뿐이었다<표 참고>. 황연주가 2011년 10월 23일 흥국생명전에서 달성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만큼 V리그의 전설급 공격수에게만 허락된 ‘좁은 문’이었다. 이제 스물네 살인 김희진은 V리그 5시즌 만에 그 문을 열고 전설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고 한다.


● 언젠가는 할 것으로 믿었지만 기대보다 늦었던 트리플 크라운

김희진은 그동안 몇 차례 트리플 크라운 달성 기회를 얻었다. 외국인선수 데스티니가 부상으로 빠진 지난 시즌 라이트로 전환해 큰 활약을 펼쳤다. 그 때는 서브나 블로킹에서 모자랐고, 올 시즌에는 2라운드 때 백어택 하나가 모자라 아쉽게 기회를 놓쳤다. 이날 경기에선 1·2세트 각각 블로킹 1개씩을 성공시킨 뒤 3세트 연달아 3개의 에이스와 2개의 백어택을 성공시켜 트리플 크라운을 가시권에 넣었다. 4세트를 앞두고 동료들은 “백어택과 블로킹이 한 개씩 남았다”고 귀띔해줬고, 이 때부터 내심 기대는 했다. 김희진은 4세트 2-0에서 먼저 블로킹을 성공시켜 3개를 채운 뒤 20-14에서 백어택으로 마침내 트리플크라운을 완성했다. 경기 진행상 이번 후위 포지션에서 득점하지 못하면 기회를 날릴 뻔했는데, 노련한 세터 김사니가 이를 잊지 않고 적절한 타이밍에 백어택 공격을 연결해줬다.

토종선수 가운데 김희진만큼 백어택, 블로킹, 서브 능력을 두루 갖춘 선수가 드물기에 “언젠가는 할 것”이라고 배구 전문가들은 예상했다. 더욱이 올 시즌 드래프트로 V리그에 데뷔한 외국인선수들의 서브가 눈에 띄게 약해 김희진은 유력한 트리플 크라운 달성 후보였다. 김희진은 “이전에 한두 번 기회가 있었는데 놓쳐서 내게는 기회가 오지 않을 줄 알았다. 사실 흥국생명전에는 큰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서브가 연속 3개 터지면서 됐다”고 기록 달성의 순간을 떠올렸다.

올 시즌 팀이 예상 밖으로 흔들려 고민이 많은 이정철 감독은 흥국생명전 승리로 2개의 성과를 얻었다. 상위권 경쟁자 흥국생명에 3연승을 거뒀다. 승차는 2승으로 좁혔고, 승점차는 2로 더 촘촘해져 언제든지 뒤집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또 그동안 부침이 심했던 김희진이 트리플 크라운을 계기로 반등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많은 기대는 심리적 부담이 되다!

김희진은 현재 한국여자배구를 대표하는 공격수 가운데 한 명이다. 루키였던 2011∼2012시즌 265득점을 기록한 이후 423∼514∼516득점으로 매 시즌 눈에 띄는 발전을 이뤄왔다. 체력훈련을 통해 파워와 타점도 향상시켰지만, 지난 시즌부터 상대의 빈틈을 보는 눈이 확연히 좋아졌다. 이정철 감독이 자주 말하던 ‘성장’이었다.

2014인천아시안게임에서 보여줬던 김희진의 활약은 올해 8∼9월 일본 월드컵에서 더 빛났다. 큰 공격과 빠른 공격이 두루 가능한 새로운 형태의 미들블로커로서의 능력을 전 세계에 보여줬다. 김연경과 함께 대한민국의 대표적 공격 옵션 가운데 하나가 된 김희진은 미들블로커 가운데 득점 순위 정상에 올랐다.

그런 화려한 전적이 있었기에 모두들 올 시즌은 김희진의 해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의외로 부진했다. 성적이 롤러코스터를 탔다. 에이스가 중심을 잡아주지 못하자 IBK기업은행 또한 예상했던 만큼 앞으로 치고나가지 못했다. 김희진은 “심리적으로 부담이 컸다. 지난 두 시즌 동안 좋았고, 지난해에는 외국인선수 없이도 잘 해냈고, 대표팀에서도 잘 해서 기대가 컸는데 이것이 나를 압박했다”고 털어놓았다.

게다가 팀의 필요에 따라 센터와 라이트를 오가는 포지션 변경으로 해야 할 것도 많았다. 윙 공격수에게 필요한 큰 스윙과 센터 공격수에게 필요한 짧고 간결한 스윙을 두루 익히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공격 때 바라보는 상대 수비수의 위치도 달라야 했고, 여러 가지 생소함이 김희진에게 더 많은 고민을 요구했다. “아직 다 이겨내지 못했다. 지금도 많은 조언을 듣고 교정하고 있다”는 김희진은 매일 야간훈련을 통해 스윙을 바꾸고 있다.



● 우리 팀의 부진은 모두 내 책임

중앙 공격수에서 윙 공격수로의 변신. 김희진은 이정철 감독의 지시를 “좋지만 부담스럽고, 그러면서도 감사하다”고 표현했다. 그동안 윙 공격수로 욕심이 있었다고 했다. “센터 공격수보다는 윙 공격수가 코트에 더 오래 있을 수 있다. 항상 해보고 싶었던 자리”라고 밝혔다. 아직은 완전하지 않지만 더 완벽한 배구선수가 되기 위해 많은 것을 하겠다는 의지가 넘친다. 김희진은 “기록에는 큰 욕심이 없다. 기록을 쫓다보면 팀보다는 개인을 앞세우게 된다. 단지 윙 공격수로 황연주, 김연경 선배 다음으로 잘 하는 선수라는 인상을 심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모든 여자배구선수들의 롤모델인 김연경과 대표팀에서 함께 지내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특히 블로킹 수읽기에 감탄했다. 김희진은 “이것만 있으면 잡겠다는 블로킹 단계에서 언니는 한 수를 더 보는 느낌이었다”고 설명했다. 15일 현재 9승4패로 3위를 달리고 있는 IBK기업은행은 트리플 크라운을 통해 모멘텀을 찾은 김희진을 앞세워 대반격을 노린다.

김희진은 “그동안 우리 팀의 조직력이 흔들린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모두 내 잘못이다. 내가 제대로 점수를 내주지 못하면서 우리의 플레이가 소극적이 됐다. 이제 나만 잘하면 된다”고 다짐했다. 첫 트리플 크라운 달성으로 받을 상금 100만원의 용도에 대해선 “우리 팀에서 처음 나온 기록이고 의미가 있어 동료들과 함께 크리스마스 전날 같이 즐겁게 쓰겠다”고 밝혔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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