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영은 왜 ‘서브 퀸’이 돼야했나

입력 2015-12-28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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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열린 ‘2015~2016 NH농협 V리그 올스타전’에서 최우수선수(MVP)로 뽑힌 GS칼텍스 배유나(왼쪽 3번째)와 현대캐피탈 문성민(왼쪽 4번째)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스포츠동아DB

■ 웃음꽃 만발한 V리그 올스타전

이선구 감독 “우승 땐 스파이크 서브 허락”
문성민·최민호·서재덕 ‘만삭 세리머니’ 폭소
쌍둥이 자매 이다영·이재영은 댄스 열전

크리스마스에 펼쳐진 ‘배구 파티’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25일 천안 유관순체육관에는 무려 5172명의 관중이 들어찼다. V리그 최초로 수도권을 떠나 지방에서 벌어진 올스타전이었기에 성공 여부를 걱정했던 한국배구연맹(KOVO)은 이날 오전 8시부터 유관순체육관 매표소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올스타 최우수선수(MVP)로 남자부 문성민(현대캐피탈)과 여자부 배유나(GS칼텍스)를 배출한 ‘2015∼2016 NH농협 V리그 올스타전’의 후일담을 모았다.


이소영이 ‘서브 퀸’ 콘테스트에 목을 맨 이유

올스타전의 하이라이트였던 서브 경연을 누구보다 기다린 선수는 여자부 이소영(GS칼텍스)이었다. 2012∼2013시즌 올스타전 서브 퀸 이소영은 지난 시즌 올스타전에선 최고 시속을 기록했지만, 공이 아웃되면서 수상에 실패했다. 더욱이 올 시즌 도중 소속팀 이선구 감독은 이소영에게 스파이크 서브를 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루키 시절 이소영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장려했던 이 감독이 스파이크 서브를 금지시킨 데는 이유가 있었다. 경기 상황에 관계없이 오직 강한 서브만 넣으려고 욕심을 내다 범실이 많았기 때문이다. 승패에마저 영향을 주자 단호하게 결정했다. 이소영은 스파이크 서브를 넣고 싶어 했다. 그러나 감독의 지시를 거부할 수 없어 눈치만 보면서 점프 서브를 넣어왔다.

이소영과 ‘밀당’을 잘 하는 이 감독은 올스타전을 앞두고 한 가지를 제안했다. 이 감독은 “이번에 서브 콘테스트에서 우승하면 다시 스파이크 서브를 하게 해준다”고 약속했다. 이소영이 반드시 우승해야만 했던 이유다. 결국 이소영은 시속 87km의 서브로 이재영(흥국생명·85km)을 제치고 2번째 올스타 서브 퀸 자리에 올랐고, 앞으로 시즌 도중 마음껏 스파이크 서브를 넣을 수 있게 됐다.

한편 한유미(현대건설)는 올스타전을 앞두고 비밀리에 스파이크 서브 훈련을 했다. 올스타전에서 팀의 대표선수로 결정되자 나이 어린 후배들의 틈에 끼어서 망신을 당하면 큰 일이라며 5일 전부터 몰래 공을 잡았다. 33세의 베테랑은 비록 후배들의 힘에 밀려 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시속 80km를 기록한 서브 속에는 열정과 자존심이 들어있었다.


‘예비 아빠’ 3총사가 만든 MVP와 세리머니

남자부에선 문성민이 올스타 MVP과 세리머니상을 독식했다. 문성민은 상을 받고도 쑥스러워했다. 투표인단이 문성민에게 상을 몰아준 것은 3세트 도중 보여준 만삭 아내를 위한 세리머니 덕분이었다. 조만간 아빠가 되는 문성민이 유니폼 속에 배구공을 넣고 기뻐하자, 동료 최민호(현대캐피탈)와 서재덕(한국전력)이 뒤를 따라서 같은 동작을 하면서 판이 커졌다. 세 사람은 올 시즌을 앞두고 결혼했고, 조만간 아빠가 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당초 이 세리머니를 생각해낸 사람은 최민호였다. 그러나 경기 도중 세리머니를 펼칠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 문성민이 먼저 하면서 두 사람이 동참했다. 문성민은 “세리머니상 상금은 곧 태어날 최민호의 아기를 위해 쓰겠다”고 밝혔다.

남자부에서 올스타전의 취지에 걸맞게 가장 열심히 한 사람은 최부식(대한항공)이었다. 여자부 경기에 투입돼 멋진 수비와 공격을 했고, 백어택도 시도하면서 종횡무진으로 활약했다. 두 아들을 데리고 축제에 참가한 최부식은 팬들에게 즐거움을 줬다는 점에선 최고수훈 선수였다. 다만 득점이 1득점으로 너무 적어 5득점의 문성민에게 밀렸다. 37세의 베테랑 동기 여오현(현대캐피탈)도 여자부 경기 도중 ‘브라운’ 인형 속에 들어가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했다.


쌍둥이 자매의 춤으로 기억될 여자부 세리머니

여자부에선 세리머니상을 받은 이다영(현대건설)의 춤이 압권이었다. 지난 시즌 올스타전에서 보여줬던 춤에서 더욱 진화한 동작으로 관중을 흥겹게 했다. 심판과 감독을 상대로도 춤을 췄는데, 구단 관계자는 “다음 시즌에는 또 어떤 춤을 보여줄지 걱정이 앞선다”며 웃었다. 처음에는 쭈뼛거리며 조심스럽게 세리머니를 하던 이다영이 2세트부터 과감하게 춤을 춘 것은 쌍둥이 언니 이재영(흥국생명) 때문이었다. 이재영이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유행했던 1988년 강변가요제 대상곡 ‘담다디’에 맞춰 격한 춤을 추자 큰 자극을 받았다.

그 때문에 이번 올스타전 여자부에선 두 자매의 춤이 가장 빛났는데, 아쉬운 것은 김혜진(흥국생명)이었다. 천안 출신의 김혜진은 다른 선수들보다 춤을 잘 추고 재능도 많지만, 이번 올스타전을 앞두고는 세리머니를 준비할 형편이 아니었다. 김혜진은 최근 힘든 시즌 일정 가운데서도 대학입학 시험을 치렀는데, 이로 인해 다른 곳에 정신을 쏟을 여력이 없었다. 배구선수 이후의 인생을 잘 준비하고 있는 김혜진에게도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 특명, 유관순체육관을 푸른색에서 붉은색으로 바꿔라!

KOVO는 천안에서 열린 올스타전을 앞두고 걱정이 많았다. 흥행도 흥행이지만, 유관순체육관의 장식도 문제였다. 현대캐피탈이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유관순체육관은 팀의 색깔에 맞춰 경기장이 온통 푸른색이었다. 성탄 분위기에 맞추려면 붉은색이 필요했는데, 너무나 많은 곳을 바꿔야 했다. KOVO는 22일과 23일 이틀간 경기장 외부는 엄두도 내지 못한 채 내부의 모든 푸른색 위에 붉은 현수막을 붙여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다행히 천안시에서 이번 올스타전 유치금으로 2000만원을 댔다. 그 돈이 모두 경기장 장식에 투입됐다. KOVO는 경기장 천장에 붙은 초대형 구단 깃발도 교체하고 싶었는데, 철거와 재설치 비용으로만 1800만원이 들어간다는 얘기에 포기했다. 그나마 이런 노력이 있어 경기장에는 성탄 분위기가 물씬했다.

이번 올스타전의 주관방송사였던 KBSN스포츠는 무려 21대의 카메라를 동원해 경기장 안팎의 행사를 중계했다. 기획단계에서부터 KOVO와 협업해 방송전문작가를 투입하는 등 많은 투자를 한 덕분에 시청자들은 더욱 다양한 화면과 올스타전의 흥겨움을 즐길 수 있었다.

천안 |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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