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김용희 감독이 ‘느림보’였던 팀 컬러를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김 감독은 도루를 하지 않더라도 상대 배터리를 흔들 수 있는 기민한 주루플레이를 염두에 두고 있다. 스포츠동아DB
“상대투수 밸런스 무너뜨리기 집중 훈련”
SK 김용희 감독은 스스로 “뛰는 야구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야구”라고 말한다. 그러나 지난해 SK는 ‘느림보’였다. 팀 도루 9위(94개)에 그쳤고, 도루 시도도 8위(153회)에 불과했다. 적극적인 베이스러닝과는 거리가 멀었다.
김 감독은 전력구상에 있어 타격보다 기동력을 우선순위로 둘 정도로 ‘뛰는 야구’를 선호한다. 그러나 지난해 SK에선 구상이 어긋났다. 최정, 김강민 등 달릴 수 있는 선수들이 부상으로 많은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그 사이 구단의 시선은 다른 쪽으로 옮겨갔다. 가장 타자친화적인 구장으로 꼽히는 목동구장을 홈으로 썼던 넥센이 올해 고척스카이돔으로 이전하면서 SK가 그 바통을 넘겨받았다. 인천 SK행복드림구장은 좌·우 펜스까지 95m, 가운데 펜스까지 120m로 10개 구단의 홈구장 중 규모가 가장 작다. 구단도 트레이드로 정의윤을 데려오고, FA(프리에이전트) 정상호(LG)의 보상선수로 최승준을 지명했다. 가장 큰 규모(좌·우 100m, 가운데 125m)로 투수친화적인 잠실구장을 홈으로 쓰는 LG에서 이들을 데려왔다는 것도 재미있는 포인트다. 두 팀 모두 홈구장에 맞는 스타일로 선수단 구성을 바꾸고 있다.
김 감독은 ‘시스템 야구’를 외치는 사령탑이다. 구단이 빠른 선수보다는 중장거리 타자들을 영입했으니, 그에 맞춰 운영하겠다는 생각이다. 김 감독은 “도루 숫자만으로 베이스러닝을 평가할 순 없다. 다른 쪽으로 뛰는 야구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SK에는 최정, 김강민 등 스피드까지 겸비한 타자들이 있지만, 리드오프 이명기 외에는 도루가 전문인 주전 선수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결국 김 감독도 장타력에 초점을 맞추되, 다른 의미의 ‘발야구’를 준비 중이다. 그는 “도루를 하지 않더라도 누상에서 투수의 밸런스를 흐트러뜨리기만 해도 타자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런 부분에 집중해야 한다. 마무리훈련 때부터 김인호 코치에게 많은 주문을 했다”고 설명했다.
‘느림보’지만,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SK가 뛰는 야구로 장타력까지 배가시킬 수 있을까.
이명노 기자 nirvan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