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 신영철 감독. 스포츠동아DB
주심·부심 각자 영역 아닌 판정도 불신
역대급 접전이 계속되는 ‘2015∼2016 NH농협 V리그’ 6라운드 첫날 사단이 났다. 13일 수원 경기에서 한국전력 신영철 감독이 퇴장 당했다. V리그 통산 2번째다. 이 결정이 나오기까지 일련의 과정과 후속조치, 최근 심판진과 경기감독관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냉기류를 보면 V리그의 안타까운 민낯이 드러난다.
● 퇴장 사건의 전개과정
1세트 30-30 듀스에서 OK저축은행 송명근의 스파이크가 선상에 걸쳤다. 신영철 감독은 ‘아웃’이라고 확신했다. 주심은 4심합의를 거쳐 ‘터치아웃’을 판정했다. 신 감독은 “인&아웃 여부가 맞다”며 룰 적용 잘못을 들어 재심을 요청했지만 기각 당했다. 2세트 20-22에서 랠리가 끝난 뒤 신 감독은 상대의 포지션 폴트를 지적했다. 한국배구연맹(KOVO)의 규정에 따르면 포지션 폴트는 재심요청 대상이 아니다. 신 감독은 한 경기에서 2번이나 재심요청이 기각됐고, 경기 퇴장을 당했다.
KOVO의 대회운영요강 제39조(경기 중 재심요청)에 따르면 ①주심이 규칙이나 규정을 적절하게 적용하지 못했을 경우(사실 판정 제외) ②로테이션 순서가 잘못됐거나 경기기록원 또는 전광판 조작 실수로 점수관리가 잘못된 경우에만 재심요청이 가능하다. 만일 ③플레잉 동작에 관한 판정이거나 정당하게 적용된 규칙에 관한 재심요청은 부당한 것으로 판단해 심판은 감독에게 구두로 1차 경고를 주며 부당한 재심요청을 반복 제기하면 감독에게 자격상실(완전퇴장)의 제재를 가한다고 했다.
● 신영철 감독 퇴장 때 나온 잘못된 내용과 팩트
신영철 감독은 이번 퇴장 사건에 대해선 ‘확신범’이다. 재심요청이 기각당할 것도 알았고, 2번 기각되면 퇴장된다는 사실도 알았다. 다만 신 감독도 착오를 했다. 해당 세트에서만 퇴장 당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왜 그는 퇴장을 자초했을까. 판정도 판정이지만, 심판의 역할을 감독하고 잘못된 판정을 바꿀 권한을 지닌 경기감독관을 포함한 전문가들이 규정을 너무 모른다는 것을 알리려는 의도가 있었다.
이날 발생한 문제점은 3개다. 첫째, 신 감독이 2번째 재심요청을 했을 때 감독관석에서 요청을 받자마자 “포지션 폴트는 재심요청 사항이 아니어서 기각한다”고 했으면 끝날 일이었다. “OK저축은행의 포메이션이 정상적인 플레이였다”는 방송은 틀렸다. 둘째, 주심과 부심의 경기 중 역할 분담을 몰랐다. 서브를 넣은 팀에서 발생한 포지션 폴트는 주심의 업무다. 리시브하는 팀의 포지션 폴트는 부심의 업무다. 아무리 내가 봤다고 해서 섣불리 상대의 업무영역까지 침범해서 결정할 수는 없다. 셋째, 신 감독이 퇴장 당하자 후속징계에 대해 틀린 보도가 나왔다. KOVO가 그릇된 자료를 돌린 탓이었다. 신 감독은 퇴장이 징계이기 때문에 후속징계는 없다. KOVO의 잘못된 정보제공이 불신을 자초했다.
● 최근 발생한 잘못된 룰 적용 사례
5라운드 여자부 경기 때였다. A팀 후위 포지션의 세터가 상대팀 센터와 네트를 두고 볼 경합을 벌였다. 주심은 세터의 오버네트를 선언했다. A팀 감독이 비디오판독을 요청했다. 감독관은 화면을 토대로 판독을 내렸다. 결과는 ‘오버네트가 아니다’였다. 룰 적용이 잘못된 경우다. 세터의 손에 공이 맞은 사실은 명확했다. 오버네트가 아닌 상황에서 공이 넘어갔다면 후위공격자 반칙이나 후위블로킹 반칙을 지적했어야 옳았다. 한 동작에서 룰 적용이 잘못 됐다면 감독관석에서 바로잡아야 했는데 또 다른 잘못을 해버린 것이다.
또 다른 사례. B팀 선수가 서브를 넣었다. 상대팀의 선수가 오버핸드로 공을 받았는데 주심은 더블콘택트 반칙을 했다고 지적했다. 오심이었다. 상대 서브를 받는 첫 번째 동작에선 더블콘택트가 없다. 유일하게 나올 수 있는 반칙이 캐치볼이다. 재심요청을 해야 옳은데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모두가 룰을 모른 채 어물쩍 넘어갔다.
● 심판진과 경기운영위원의 주도권 다툼
12일 KOVO 경기운영위원과 심판위원이 모였다. 최근 비디오판독 주도권을 놓고 심판위원과 심판, 경기운영위원 사이에 신경전이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규정대로라면 비디오판독의 경우 의견이 다르면 다수결로 결정해야 하는데, 최근 마이크를 잡은 경기운영위원이 2-1의 판정을 뒤집고 마음대로 발표하는 경우가 나왔다. 가장 룰에 해박한 심판과 심판위원은 경기운영위원의 이 같은 행동에 불만이 크다. 그래서 서로 어색한 기류가 흐른다.
게다가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주·부심을 통해 감독관석에 의사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의사소통 부재가 눈에 띈다. “서로가 책임을 회피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어느 감독은 지적했다. 그래서 더 걱정이다. 누가 판단의 주도권을 쥐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정말 중요한 것은 룰에 전문적인 사람이 올바른 판단을 내려서 억울한 피해를 당하는 팀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V리그의 많은 사람들이 룰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는다. 전문가가 없다. 좋은 제도를 가졌지만 제대로 운용하지 못하는 현실이 아쉽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