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국내 개봉해 당시 청춘들의 가슴을 뜨겁게 달군 영화. 폭력과 배신, 그 속에서 피어나는 의리와 형제애의 이야기는 젊은이들의 시선에 처절한 비장미로 다가왔다. 영화는 흥행했고, 한국의 뭇 청춘들의 시선을 한껏 끌어 모았다. 짙은 선글라스와 트렌치 코트는 당시 젊은이들의 또 다른 패션코드가 됐고, 사내가 입에 문 성냥개비는 냉소의 분위기 속에 남성미의 한 상징으로 각인됐다.
영화 ‘영웅본색’ 그리그 그 주인공 저우룬파(주윤발·사진)다. 17일 영화는 재개봉했고 그 속편도 3월 초 관객을 다시 만난다. 그리고 여전히 그 어색한 중국식 발음의 이름보다 ‘주윤발’로 불러야 그 생생한 추억은 더 오롯이 살아날 것만 같다.
1991년 오늘, ‘영웅본색’으로 단박에 한국 관객을 사로잡았던 주윤발이 한국을 찾았다. 주연영화 ‘종횡사해’를 홍보하기 위한 내한길이었다. ‘영웅본색’ 단 한 편의 영화로 한국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은 그는 입국장인 김포공항에서부터 큰 환영을 받았다. 그리고 KBS 2FM ‘임백천의 뮤직쇼’, KBS 2TV ‘유머1번지’ 등 한국 방송에도 출연했다. 특히 ‘유머1번지’에서 그는 ‘스타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에 특별출연해 어설픈 우리말과 코믹한 설정으로 웃음을 자아냈다. ‘영웅본색’의 인기에 힘입어 1989년 국내 한 청량음료 CF모델로 나서 “쌀랑해요!”라며 제품명을 내뱉으며 친근함을 과시한 뒤였다.
하지만 당시 방한길에서 KBS 2TV ‘가요 톱 10’ 등 일부 방송프로그램 출연을 예정했다 이를 취소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또 그의 이름을 내건 ‘사기극’도 벌어졌다고 당시 언론들은 전하고 있다. 방한 이튿날 서울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한 공연에 그가 출연한다고 예고됐지만 불발됐다. 이에 3000여 관객 중 500여명이 주최 측에 집단 항의하는 사태가 일어났고, 결국 주최 측은 사법당국의 처벌을 감수해야 했다.
모두 그가 당대 최고의 해외스타였음을 방증하는 사례다. 인기는 그의 것만은 아니어서, ‘영웅본색’의 연출자 우위썬(오우삼) 감독을 비롯해서 티렁(적룡), 장궈룽(장국영) 등도 한국 관객의 큰 환호를 받았다. 그들 가운데 장궈룽만은 이제 세상에 없다.
홍콩 언론이 꼽은 20세기 최고 홍콩영화이자 홍콩 느와르의 대표작인 ‘영웅본색’. 1997년 중국 반환을 10여년 앞뒀던 1980년대 말 홍콩과 홍콩인들의 정서적 불안함 못지않게 한창 혼란스러움 속에 당대를 살아가던 한국의 많은 청춘에게도 영화는 커다란 울림으로 남았다. 주윤발은 그 핵심적인 주인공이었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