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타키나발루 여행④] 식민지 시대의 흔적, 제셀턴 포인트

입력 2016-02-18 16: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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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셀턴 포인트 전경. 사진=동아닷컴 송치훈 기자 sch53@donga.com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휴양도시 코타키나발루지만 아픈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는 장소가 있다.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던 시절 코타키나발루에서 수탈한 천연자원을 조달하기 위해 놓인 철도의 흔적이 남은 곳, 바로 제셀턴 포인트(Jesselton Point)다.

코타키나발루가 현재의 명칭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1967년부터다. 코타키나발루의 이전 명칭은 제셀턴(Jesselton) 이었다.

제셀턴이라는 명칭을 갖게 된 이유에 대한 여러가지 학설이 있지만 그 중 제셀턴이라는 인물이 코타키나발루를 점령해 영국 왕실에 바쳤고, 이에 영국 왕실에서 그의 이름을 따 도시 이름을 정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고 한다.

제셀턴 포인트 항구 전경, 이 곳에서 영국은 수탈한 물자를 영국 본토로 옮겼다. 사진=동아닷컴 송치훈 기자 sch53@donga.com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2년, 일본은 라부안을 점령한 뒤 북보르네오의 타 지역들을 침공해 1945년까지 일대의 섬의 대부분을 지배했다.

1945년 9월10일 일본의 항복 이후 북보르네오는 영국 군령이 되었고, 1946년 영국의 직할 식민지가 되었다. 제셀턴이 새 수도가 되었으며, 영국의 지배는 1963년까지 계속되었다.

1963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북보르네오는 ‘사바’ 주로 명칭을 변경하고 말레이시아로 편입됐다. 코타키나발루는 2000년에 시로 승격되었으며, 말레이시아에서 여섯 번째로 큰 도시이자 사바 주 최대도시가 되었다.

비록 식민 지배를 받은 역사가 있지만 현지인들은 영국에 대한 큰 반감이 없다. 오히려 영국을 ‘형님의 나라’ 정도로 인식하고 있고,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축구 팀들의 인기도 엄청나다.

코타키나발루 사람들이 자신들을 식민 지배한 영국에 반감을 갖지 않는 이유는 영국의 노련한 식민지 운영 정책이 한몫했다.

일본과는 달리 영국은 일반 시민들을 직접 수탈하지 않고 지배 계급을 통해 자원을 수탈하는 방식으로 식민지를 운영했다.

때문에 이전부터 동일 민족 지배 계급에게 수탈을 당해왔던 시민들은 그 주체가 바뀌었을 뿐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영국 덕분에 문물이 발전했다고 생각해 고맙게 여기기까지 한다고 한다.

물자를 운반하던 철도의 흔적. 사진=동아닷컴 이현정.


영국이 코타키나발루의 천연자원들을 영국 본토로 옮기기 위해 설치한 곳이 바로 제셀턴 포인트다. 이곳을 설치한 영국의 영향을 받아 제설턴 포인트는 들어서는 순간부터 영국의 한 거리 같은 느낌을 준다.

아름답게 꾸며진 길을 조금 지나 항구에 가까이 가면 지금은 운행되지 않는 식민지 시대 철도의 설치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있다.

하지만 위와 같은 이유들로 인해 현지인들에게 식민 시대의 아픔을 통렬히 느끼고 되새기는 분위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아 어쩐지 슬픈 느낌마저 갖게 한다.

비록 아름다운 관광 도시지만 현재의 아름다운 모습 이전에 있었던 과거의 아픈 세계사를 되돌아볼 수 있는 제셀턴 포인트 역시 코타키나발루에서 방문해봐야 할 장소 중 하나다.

동아닷컴 송치훈 기자 sch5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취재협조=모두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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