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FC의 부주장 여름은 내년 군 입대를 앞두고 올해 모든 목표를 채우려고 한다. 상위 스플릿 진입, 전 경기 출전, 공격 포인트 10개, 개인상 등이 목표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지난시즌 첫 클래식 1골 2도움 활약
군 입대 앞두고 올 시즌 비장한 목표
6강 PO·공격포인트 10개·개인상…
뜨거운 ‘여름’, 이 정도는 해야죠
“제 이름, 인터넷 포털 사이트 검색어로 넣어보세요. 죄다 계절이라니까요.”
K리그 클래식(1부리그) 광주FC 여름(27)과의 대화는 시종 유쾌했다. 웃고 떠드느라 약속한 시간을 훌쩍 넘겼다. 예상대로였다. 선수단에서 그는 ‘퀵 마우스’로 통한다. 일단 말을 잘할 뿐 아니라, 입이 잠시도 쉬지 않는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예쁜 이름이 화제가 됐을 때는 모두가 배꼽을 잡았다. “검색어에 ‘여름’은 4계절일 뿐이다. 간혹 축구 이야기도 나오는데, 여름이적시장이나 호날두가 여름 비 시즌에 뭘 했다 등이다. 그래서 결심했다. ‘4계절 여름’을 ‘축구선수 여름’으로 한 번 이겨보자고.”
학창시절부터 프로무대까지, 오직 광주에서 나고 자라 지금에 이른 광주FC의 프랜차이즈 ‘부주장’ 여름과의 대화를 풀어본다.
● 굴곡진 축구인생
광주남초∼광주북성중∼숭의고∼광주대∼광주FC. 여름과 인연이 닿았던 팀(학교)들이다. 그는 고향에 프로팀이 창단됐을 때만 해도 자신이 광주 유니폼을 입게 될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대학 3학년 때인 2011시즌 광주의 홈경기들을 관전하면서 막연히 ‘프로가 되면 어떤 기분일까’란 생각은 해봤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이 때 뜻하지 않은 기회가 찾아왔다. 대학 4년을 꽉 채운 여름에게 광주가 손짓을 했다. 대학대회에서 4골을 몰아친 것이 계기가 됐다. 처음 입단했을 때만 해도 철저히 ‘번외 멤버’였다. 데뷔 시즌인 2012년에는 1경기도 나서지 못했다. 1.5군이 나선 FA컵 포항 스틸러스 원정경기에 따라갔다가 엔트리에 포함되지 못한 기억도 있다.
프로선수로 생애 처음 떠난 원정길. “이제 방출이다”란 생각에 그는 휴대폰으로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는 호텔 음식을 양껏 먹었다. 하루 새 몸무게가 2kg이나 불어날 때까지 원 없이 입에 넣고 또 넣었다. “지금도 창피하다. 촌놈 짓을 참 많이도 했다. 철없고 어리석었다.”
그럼에도 여름은 생존했다. 팀이 챌린지(2부리그)로 강등되자 잔류하게 됐다. 물론 표현이 좋아 ‘잔류군’이지, 사실은 ‘갈 곳 없어’ 남은 처지였다. 2013시즌을 앞두고 동계전지훈련에 참여하기는 했지만 ‘투명인간’이었다. 그러나 솟아날 구멍은 있었다. 당시 여범규 전 감독을 보좌한 수석코치 신분의 남기일 현 감독이 여름의 가능성을 봤다.
자신의 방으로 여름을 불러낸 남 감독은 이것저것 다양한 영상을 보여주며 “내가 볼 때, 넌 아주 괜찮은 선수다. 주전으로 뛸 수 있다”고 격려했다. 여름이 처음으로 희망을 느낀 순간이었다. 그해 여름은 하늘 높이 날았다. 챌린지 정규리그 29경기에서 2골·1도움을 올려 자신감을 되찾았다.
“전지훈련에서 정말 할 일이 없어 혼자 볼을 찼다. 계속 개인연습을 했다. 그걸 코칭스태프가 좋게 보셨다. ‘괜찮은 선수’란 표현이 얼마나 크게 와 닿았는지 누구도 모를 것이다.”
● 꿈꾸는 살림꾼
대부분이 그렇듯 아마추어 무대에서 여름은 경험하지 못한 포지션이 없었다. 골키퍼만 빼놓고 전 포지션에서 뛰었다. 대학에서도 정해진 위치가 없었다. 그 때는 상황이 한심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경험을 했는지를 실감한다. 남기일 감독도 여름에게 많은 역할을 부여했다. 그 중 처음 맡겨진 임무가 ‘볼 배급’이었다. 미드필드 중앙에서 전진 패스를 최대한 많이 공급하도록 지시했다.
“처음 프로에서 공격형도, 수비형도 아닌 모호한 중앙 미드필더 역할이 주어졌는데, 남 감독님이 확실한 미션을 주셨다. 뒤를 신경 쓰지 않고 계속 볼을 전개하고, 상대가 달려들어도 볼을 뒤로 흘리지 않도록 했다. 확실한 밑그림이 그려지니 명쾌해졌다.”
2014년과 지난 시즌은 대단했다. 2014년 광주는 챌린지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승격 드라마를 썼고, 지난해에도 실력으로 클래식에 생존했다. 여름도 큰 몫을 했다. 29경기(4도움)를 뛰며 승격에 일조한 데 이어 처음 경험한 클래식에서도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손목골절 속에서도 31경기 1골·2도움을 올렸다.
여름을 향한 남 감독의 신뢰는 두터웠다. 기존 캡틴 임선영(안산 무궁화)이 부상으로 이탈하자 주장 완장을 채웠다. 여름이 “정말 주장은 못한다”고 손사래를 치자, 남 감독은 “그 따위로 하려면, 그런 정신이면 집에나 가라”고 호통을 쳤다. 부주장이 된 계기다.
이제 여름은 새로운 꿈을 꾼다. 내년 군 입대를 앞두고 올해 모든 목표를 채우려고 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6강에 오르겠다. 상위 스플릿, 전 경기 출전, 공격 포인트 10개, 개인상 등 모든 것을 손에 쥐고 싶다.”
‘원클럽 맨’을 향한 의지도 숨기지 않았다. 군 시절 2년을 제외하면 오로지 광주에 뼈를 묻겠다는 여름이다. “이적 생각이 아예 없어 에이전트가 없다. 광주에서 의미 있는 선수로 남는 것도 정말 좋은 길이다. 여기서 은퇴하고 제2의 인생도 준비하면 참 행복할 것 같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