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화재 지태환-OK 저축은행 김천재(오른쪽). 사진|스포츠동아DB·KOVO
한국배구연맹(KOVO)과 남자구단 사무국장들이 모였다. V리그에 FA 제도가 도입된 이후 처음 발생한 사례의 주인공은 삼성화재
지태환과 OK저축은행 김천재다. KOVO는 3월 30일 2015~2016시즌 일정을 마치자마자 FA 명단을 공시했다. 종료된
시즌을 기준으로 FA 자격(리그 전체 경기의 25% 이상 출전할 경우 한 시즌으로 계산해 최초의 FA는 5시즌, 고졸선수는
6시즌을 채워야 한다. 이후 3시즌을 채울 때마다 FA 자격을 다시 획득한다)을 얻은 남자 20명, 여자 14명을 발표했다.
●삼성화재 지태환이 KOVO의 FA 협상 일정과 따로 협상하는 이유
문제는 지태환이 4월 29일 공익근무 요원으로 군에 입대한다는 것이다. 삼성화재는 이 같은 사실을 사전에 알고 KOVO에
유권해석을 의뢰했다. FA는 팀에 오래 공헌한 선수에게 주는 보상이자 선수의 권리인데, 군복무로 이를 당분간 행사하지 못할 경우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한 문의였다. KOVO는 다시 고문변호사에게 유권해석을 의뢰했다. 여기서 나온 결론은 “선수의 권리를
행사하게 해주는 것이 FA 제도의 취지에 맞다”였다. 삼성화재는 이 같은 유권해석이 나오자 각 구단 사무국장들의 모임인
실무회의에서 양해를 요청했다.
현재 KOVO의 규정에 따르면 FA 선수는 공시 이후 5월 10일까지 원소속구단과 우선협상을
해야 한다. 만약 삼성화재가 이때 지태환과 협상을 마치지 못하면 다른 구단과 협상할 기회를 줘야 한다. 군에 입대하는
지태환에게는 그런 기회가 원천적으로 사라진다. 그래서 삼성화재가 양해를 구했다. 실무회의는 지태환에 한해 FA 협상 일정을
앞당기기로 했다.
지태환이 입대하기 전날인 4월 28일을 데드라인으로 해서 일주일 간격으로 협상기간을 줄이는 새 FA 협상
일정을 확정했다. 4월 14일까지 삼성화재와 먼저 협상한 뒤 일주일 간격으로 2차 협상, 3차 협상의 권리를 모두 보장해
지태환과 다른 구단들에 공평한 기회를 주기로 했다. KOVO가 잘 마무리했다고 안심하던 순간, 새로운 문제가 또 터졌다. 바로
OK저축은행이었다. 소속선수 가운데 심경섭, 조국기, 김천재가 국군체육부대에 4월 18일 입대 예정인데, 이 가운데 김천재가
FA선수다. 구단은 이 사실을 확인한 뒤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KOVO에 요청했다. 결국 지태환의 경우처럼 김천재도 FA 협상기간을
앞당기고 타 구단의 양해를 구하는 절차를 거쳐야 할 듯하다.
●규약의 변경은 당사자의 의사와 이해를 가장 고려해야
이번 지태환, 김천재의 사례에서 아쉬운 점은 결정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이다. 겉으로 드러난 것은 선수의 권리보호를 위해 KOVO가
유권해석을 통해 기회를 준 것이지만, 2년간 공백이 있는 선수를 대상으로 과연 어떤 구단이 FA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좋은
조건을 제시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그 선수가 엄청 뛰어난 기량을 지녔고 젊다면 기꺼이 2년의 기다림을 감수하고 투자할
구단이 나오겠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상황이 그렇다면 선수가 군 복무를 마치고 협상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선수에게 정말로 유리한 것인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삼성화재는 “그동안 우리 팀에서 오래 공헌한
선수니까 최대한 섭섭하지는 않게 협상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뉘앙스로 봐서는 삼성화재가 우선협상 기간에 지태환과 FA 계약을 마칠
가능성이 크다. 물론 군입대 변수가 없을 때만큼 과감하게 베팅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서 지태환은 정말 억울한 사례다.
KOVO는 이번 일을 계기로 FA 관련 규정을 수정할 계획이다. 이 때 KOVO와 구단이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선수의
이해와 입장이다. 이번에도 당사자에게 언제 FA 협상을 하는 것이 더 좋은지 물어보고 최대한 그 의견을 반영했더라면 더 좋았을
뻔했다. 권리의 당사자가 선택할 수 있어야 상황변동에 따른 유·불리를 놓고 후회도, 오해도 생기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법을
만들 때 가져야 할 기본생각이다. 한쪽의 입장만 생각하고 밀어붙이는 일방통행은 곤란하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