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윤여정 “이렇게 순수한 영화, 누가 돈 댈까 궁금했죠”

입력 2016-05-19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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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윤여정은 주연 영화 ‘계춘할망’ 촬영 과정은 “고통이었다”며 특유의 거침없는 모습으로 자신의 생각을 털어 놓았다. 사진제공|콘텐츠 난다긴다

■ 영화 ‘계춘할망’ 찍은 윤여정


뱀장어에 물리고 귓바퀴 찢기고
힘들었지만 난 6·25도 겪은 여자
아역배우·연출부 지도까지 내 몫

배우 윤여정(69)과 나눈 대화는 꽤 자극적이다. 흐르는 시간을 붙잡고 싶을 만큼 밀도 있고, 정곡을 찌르는 듯한 냉철함도 있다. ‘풍자’로 보이는 비유법 역시 현란하다. 글로 옮기기에는 역부족이다.

영화 ‘계춘할망’(감독 창·제작 지오엔터테인먼트)의 19일 개봉을 앞두고 윤여정이 오랜만에 취재진과 만났다. “나이 드니 나날이 투쟁”이라는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기자들을 앞에 앉혀두고 “사실 이런 인터뷰 자리도 썩 내키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그와 작업을 함께하는 스태프가 전한 얘기는 전혀 다르다. 영화를 알리는 일정부터 자신이 맡아야 할 책임까지 꼼꼼하게 챙기는 모습은 젊은 영화 스태프를 놀라게 했다. 어떤 이는 “감동을 준다”고까지 말한다. 스스로를 지칭하는 단어, ‘노배우’의 위엄이다.

윤여정은 ‘계춘할망’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부터 돌이켰다.

“누군가 아주 순수한 마음으로 쓴 글 같아서 ‘이건 독립영화인가’ 했다. 나 같은 노배우는독립영화처럼 돈 안주는 영화는 못한다고 하니 이건 상업영화라잖아. 이렇게 순수한 영화에 누가 출연할까, 누가 돈을 댈까 궁금했다.”

영화의 배경은 제주도다. 해녀 계춘(윤여정)은 12년 전 잃어버린 손녀딸 혜지(김고은)와 우여곡절 끝에 재회한다. 손녀를 위해 자신의 모든 걸 내어 주는 무한한 사랑을 전하는 할머니의 모습은, 실제 윤여정과는 다르다.

윤여정에게 제주도 촬영은 ‘힐링’이었느냐고 물었다. 대답이 화살처럼 날아왔다.

“힐링? 고통의 시간이었다. 해녀복을 입고 촬영하다 귓바퀴가 찢어지고 뱀장어를 맨손으로 잡다 허벅지가 물렸다. 촬영 스트레스로 장염에 걸려 이틀 동안 앓다 쓰려져 응급실에도 실려 갔다. 어휴 참….”

배우 윤여정. 사진제공|콘텐츠 난다긴다


윤여정의 말은 짧게 끝나지 않았다.

“뱀장어를 맨손으로 잡아야 하는데 38살에 키가 180센티가 넘는 젊은 남자 스태프는 무서워서 못 잡겠대. 서울에서 너무 곱게 자랐나 봐. 난 6·25도 겪는 여자인데.(웃음) 아역배우부터 연출부 지도까지 내 몫이었다. 그들이 느끼기엔 야단맞는 거였겠지만.”

평생 물질하며 산 해녀의 스산한 삶은 영화 속 윤여정의 모습으로 그대로 전해진다. 분장의 효과 역시 상당하다. 하지만 그 후유증을 얘기할 때 목소리는 높아졌다.

“머리카락은 옥수수 수염처럼 변하고 피부과도 다녔다. 다들 그러잖아, 배우는 성질이 못됐다고. 못될 수밖에 없다. 스트레스를 어디에든 쏟아야 하니. 그래서 성질을 부리는 거다.”

화법이 ‘센’ 사람들은 보통 자신의 일에도 완벽을 추구한다. 그도 그렇다. ‘계춘할망’은 그동안 알고 있던, 익숙한 모습에서 한 발 더 나아간다. 변신은 계속된다. 또 다른 영화 ‘죽여주는 여자’의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여배우들’에 이어 다시 이재용 감독과 손잡은 그는 “우울증까지 올 만큼 힘들었다”고 했다.

“듣지도, 보지도 못하면 좋았을 것 같은 한 여자의 삶을 그렸다. 창녀다. 배우가 자신의 역할에 빠진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웃기는 소리라고 여겼다. 이번에 내가 그랬다. 음식을 삼킬 수가 없었다. 촬영 동안 겨우 와인 한 모금씩 넘기면서 찍었다.”

다행히 이제는 그 여파에서 벗어났다. 요즘 가장 즐거운 일은 고교 선배들과 와인 모임. 주량은 반 병 정도다. 반대로 가장 화나게 하는 일은 뭘까.

“집 밖에 나가면 화나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하하!”

윤여정은 tvN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로 시청자와 새로운 만남을 시작했다. 혹시 예능프로그램 출연도 계획하지 않았을까. 또 다시 화살이 날아왔다.

“연기의 평가는 달게 받겠지만 예능프로그램에서 보여주는 사생활을 통한 평가는 정말 싫다. ‘꽃보다 누나’ 때 난 제작진에게 가장 좋은 ‘호구’였다. 한 번이지, 두 번씩 이용 안 당한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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