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덕재.
25일 익산서 일본 후지와라와 -55kg 타이틀 4강전
모든 파이터의 꿈은 챔피언이다. ‘링이라는 삶’을 사는 파이터는 과정보다 결과를 더 중시한다. 링에서 모든 것을 퍼부었지만 시합에서 지면 그는 패배자일 뿐이다. 여기 챔피언을 꿈꾸며 챔피언벨트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 파이터가 있다. 윤덕재(23·의왕삼산)다.
윤덕재의 별명은 ‘동안의 암살자’다. ‘동안’이라는 이 시대 최고의 단어와 듣기에도 식겁할 만큼 불길한 단어인 ‘암살자’를 함께 지닌 두 얼굴의 파이터다.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사는 격투기에서 ‘동안’은 팬들을 모으고, ‘암살자’는 기대를 낳는다. 혹자는 자신의 불안감은 해소하기 위해 무시무시한 닉네임을 앞세운다고 하지만 그에겐 적용되지 않을 듯 하다.
그렇다. 그는 ‘동안의 암살자’다. 윤덕재를 보면 사람들은 두 번 놀란다. ‘동안’에 반하고, ‘암살자’에 놀란다. 아이돌처럼 어려 보이는 얼굴과 호리호리한 체구에 놀라고, 악귀처럼 달려드는 공격력에 놀란다.
그런 그가 어떻게 ‘사각의 링’ 속으로 들어왔을까. 그의 원래 꿈은 축구선수였다. 그냥 동네에서 최고로 공을 잘 차는 ‘형’이 아니라,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월드컵에서 뛰는 국가대표가 아니라, 메시처럼, 호날두처럼 공 하나로 세계를 들었다놨다하는 그런 선수가 꿈이었다.
나름 잘 나갔다. 학창시절 축구에 재능이 있다고 입소문도 났다. 축구부에 들어가 선수가 된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그러나 어쩌면 꿈은 깨어지기 위해서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메시’가 ‘호날두’가 되고 싶었던 꿈은 얼마 지나지 않아 퍼진 공처럼 되고 말았다. 훈련 중 입은 심각한 무릎 부상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의 꿈은 동백꽃처럼 목이 잘린 채 땅으로 떨어졌다.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나라’고 했던가. 그는 재활을 하며 다시 일어섰다. 이번엔 파란 축구장이 아닌 사각의 링이었다. 재활 중 재미로 접한 무에타이. 그것이 그를 새로운 삶으로 이끌었다.
“어린 시절부터 발재간이 좋은 편이었어요. 꿈이었던 축구를 제대로 시작도 못해보고 끝내다 보니 그 한을 격투기 체육관에서 운동으로 풀었던 것 같습니다. 근데 이게 너무 재미있는 거에요.”
‘인생은 랜덤이다’라는 말은 그래서 유효하다. 그는 그렇게 격투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고 했다. 무에타이를 하면 그 무엇보다 즐거웠다. 실력이 일취월장하는 것은 당연했다. 재능이 뒷받침되니 ‘일타쌍피’다.
고등학생 신분으로 출전한 무에타이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금메달을 시작으로 세계무에타이챔피온십 금메달, 대한무에타이협회 주니어플라이급 챔피언 등 화려한 수상 이력을 자랑하며 승승장구했다. 국내 최강자 김상재(27, 진해정의) 뒤를 이을 차세대 주자로 윤덕재를 꼽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제가 첫 시합을 뛰었을 당시 이미 김상재 선수는 챔피언이었습니다. 그런데 MAX FC 챔피언 토너먼트 4강에서 경쟁하는 상대가 되었으니 감개무량하죠”
그 윤덕재가 꿈의 무대에 오른다. 멋진 시합이 아니라 상대를 눕히기 위해서다. 무대는 6월25일 전북 익산에서 열리는 ‘MAX FC04 in 익산’이다. 초대 챔피언 타이틀을 놓고 펼쳐지는 -55kg급 4강전이다. 상대를 밟아야 챔피언벨트를 차 볼 기회가 주어진다. 상대는 일본의 후지와라 아라시(36, 일본/반게링베이)다.
강호에 약자는 없다. 만만한 자 또한 없다. 곳곳에 고수들이 넘친다. 후지와라도 그 중 하나다. 70전이 넘는 베테랑에 전일본 킥복싱 밴텀급 챔피언, WPMF 세계 슈퍼밴텀급 챔피언 등 4개 단체 챔피언을 지낸 바 있는 ‘리빙 레전드’ 이다. 무에타이 본토 태국의 룸피니에서 챔피언 도전 경험까지 있을 정도로 경험도 갖췄다.
스물 셋 청년 윤덕재는 이길 자신 있다. 패기도 있다. 상대는 자신보다 경험이 많지만 나이 또한 많다. 그까짓 것 젊음이 못할 게 뭐 있으랴. 게다가 상대는 일본선수. 가만히 주먹만 쥐고 있어도 투지가 살아난다. “한일전인데 우리가 또 일본 선수한테는 질 수 없지 않나요?(웃음) 베테랑이고 살아있는 전설이라고는 하지만 무에타이로는 자신 있습니다. 젊은 패기로 밀어붙여 승리하겠습니다.”
윤덕재에게 익산의 밤은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결전의 초침을 쉬지 않고 돌고 있다.
연제호 기자 so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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