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편의 이야기를 빚어내온 강우석 감독은 그 20번째에 이르러 처음으로 사극을 택했다. 그의 신작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김정호를 통해 첫 실존인물을 연기한 차승원의 활약으로도 기대를 모은다. 사진제공|시네마서비스
블랙과 화이트, 짜장면과 짬뽕…. 그리고 남(男)과 여(女), 혹은 여와 남. ‘개취’(개인취향)일 뿐인 각기 시선에 성적(젠더·gender) 기준과 잣대를 들이댈 이유는 전혀 없다. 생물학적으로 다른 존재들일지언정, 세상과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은 각자의 취향대로다. 두 남녀 기자가 매주 각자의 눈으로 세상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적어도 눈치보며 ‘빨아주기’식 기사는 없다. 엔터테인먼트 각 분야 담당기자들이 ‘갈 데까지 가보자’고 작심했다. 가장 공정하고 정정당당한 시선을 유지하자며.
주연 차승원 유준상 김인권
감독 강우석
제작 시네마서비스
7일 개봉·전체 관람가·129분
▶줄거리 권력을 위해 나라의 지도를 독점하려는 권세가들의 시대, 백성을 위한 지도를 위해 전국을 누빈 김정호의 투혼과 신념의 삶. 서로 다른 목적으로 지도를 손에 넣으려는 안동 김씨 문중과 흥선대원군의 이야기.
● 우직한 신넘의 길, 아낌없는 박수를
어쩜 이렇게 똑같을 수가. 연일 뉴스를 장식하는 권력의 부정부패는 고산자 김정호가 살았던 200년 전과 너무나 닮았다. 아무리 제작진의 상상이 가미된 허구의 상황이 곁들여졌다 해도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 우리 사는 세상이 한심할 뿐이다.
영화를 단지 영화로 볼 수만 없는 세상이 돼 버렸다. 그저 영화가 택한 자극적인 소재로 치부한 사건들이 현실에서 더 빈번하게 일어나는 요즘이다. ‘영화의 현실화’라고 해야 할까. ‘고산자’가 비추는 세상도 비슷하다. 권력자들은 손에 쥔 힘을 놓지 않으려는 데만 집중할 뿐이다. “나라의 근간은 백성”이라는 권력자들의 말은 허공에 외치는 메아리에 불과하다. 200년 전이나, ‘LTE 시대’를 사는 지금이나 ‘감 없는 리더’ 때문에 힘들긴 매한가지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희망은 사람으로부터 나온다. 그래서 살아볼 맛이 난다.
‘고산자’ 역시 관객에 다가서는 방법으로 사람을 택했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신념의 ‘끝’을 보여주는 ‘지도에 미친 사람’ 김정호의 모습을 통해서다. 영화를 보다보면 우리 사는 세상에도 김정호 같은 사람이 한두 명쯤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생긴다. 신념의 방향이 ‘국민’으로 향하는, 진짜 리더 말이다.
생각할 거리 많은 ‘고산자’는 사실 감독과 배우, 제작진 모두가 처음부터 가시밭길을 각오하고 시작한 작품이다. 여럿이 뜻을 모은 집념도 느껴진다. 대동여지도라는 상징을 빼고 설명할 길 없는 인물 김정호를 주인공으로 택한 사실만 봐도 그렇다. 영화는 김정호의 삶을 우직하고 솔직하게 그린다. 그런 인물을 지켜보는 일은 ‘힐링’ 그 자체다.
‘고산자’는 규모를 키우고 화려한 치장을 더하는 근래 한국영화의 홍수 속에 나타난 ‘진국’과도 같은 영화다. 김정호가 험난한 여정 끝에 만나는 독도가 스크린을 꽉 채울 때, 심장 박동의 수치가 치솟는다.
● 백성을 향한 꿈, 위로가 되는 ‘김정호’
꿈은 현실과 동떨어질 수 없다. 아니 멀어질 수 없는 것이며 그래서도 안 된다. 꿈은 끝내 놓을 수 없는, 절체절명의 가치이다.
150여년 전, 험난한 시대를 살았던 고산자 김정호에게도 그랬을 터이다. 길에서 길로 이어지는 백성의 고달픈 삶까지도 함부로 장악하려 했던 권력에 맞서면서까지 나라의 구석구석을 정밀하게 담아내는 지도를 그려 목판에 새기고 이를 백성과 함께 나누려 했던 그였다. 하지만 꿈은 단지 그것이었을까.
김정호는 말한다. “길 위에는 신분도 귀천도 없다. 다만 길을 가는 자만 있을 뿐”이라고. “길 위에 있을 때 나는 늘 자유로웠다”고. 그래서 그의 꿈은 어쩌면 자유를 향한 자신과 백성이었을 게다.
백성의 꿈은 시대를 불문한다. 당대의 백성이 그 비루하지만 결코 놓아버릴 수 없는 삶을 이어가기 위해 오갈 길과 넘을 산과 건널 강과 바다의 지형을 김정호가 그려내려 했던 것도 결국 자신과 그들의 꿈을 위한 것이었다.
자신의 스무번째 길을 김정호가 꿈꾼 자유와 세상의 이야기로 스크린에 새긴 강우석 감독의 의지도 그렇듯 보인다. 희미하게 남은 위대한 한 인간의 삶의 기록에만 기댈 수 없었던 감독은 오로지 자신의 신념대로 이야기를 채워간다. 이들 들여다보는 관객은 자신의 꿈을 저 까마득히 멀었던 시대를 살다 간 한 사내의 그것에 빗대며 새로운 꿈을 꾼다. 주연 차승원의 환한 웃음과 설움의 눈물이 그런 관객의 먹먹해지는 가슴을 위로하는 힘을 발휘하는 것도 그래서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합천 황매산의 만개한 철쭉이 빚어내는 봄의 찬란한 풍경으로부터 북한강의 꽁꽁 얼어붙은 강물이 몰고 오는 차가운 칼바람, 온통 황금빛으로 천지를 물들이는 여수 여자만의 일몰…. 이처럼 한반도 곳곳을 밟아간 김정호와 강우석과 차승원의 꿈은 한국영화 최초로 온전하고도 장대하게 담아낸 백두산 천지에 이르러 또 한 번 관객의 그것과 합치된다.
● 평점 아이콘, 이렇게 갑니다
● 히트다 히트
말이 필요 할까요 눈과 귀가 즐겁습니다.
● 알쏭달쏭
지금은 모르겠어요.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 이건아니야
시간과 돈이 아까울 수 있습니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