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호의 외야석] ‘사도스키 리포트’를 기억하시나요?

입력 2016-09-09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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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라이언 사도스키 코치(가운데). 스포츠동아DB

흔히들 성공의 순간은 또렷이 기억하고 실패 혹은 패배는 잊어버리거나 기억을 축소하려 한다.

2013년 대만 타이중 인터컨티넨탈 구장에서 열린 제3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 첫 경기에서 한국은 네덜란드에 0-5로 패했다. 한국은 이어진 호주전과 대만전에서 이겼지만 첫 경기 5점차 패배로 1라운드 탈락이라는 수모를 당했다.

그날 패배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류현진이 없어서? 운이 따르지 않아서? 아니다. 한국은 정보전에서 이미 크게 뒤진 상태에서 경기를 시작했다. 네덜란드대표팀 감독과 코치, 선수들은 한국 선수들의 데이터는 물론 성격과 그라운드에서 성향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한국도 나름대로 전력분석 팀을 가동해 네덜란드 선수들의 자료를 수집했지만 데이터에 치중된 정보였다. 아무리 발달되고 세분화된 세이버메트릭스도 감성과 스토리는 파악할 수 없다. 베리 본즈는 데이터상으로 완벽 그 자체지만 인간미는 고약하기 짝이 없었다. 데릭 지터의 리더십이 팀에 미치는 영향도 데이터로 표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네덜란드는 도저히 통계프로그램으로 얻을 수 없는 한국 선수들에 많은 것을 파악하고 경기를 치렀다. 단순히 이것만으로 한국이 0-5로 큰 패배를 당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준비과정에서 야구 선진국으로 자부하는 우리는 네덜란드에 이미 뒤졌다.

2013년 WBC를 앞두고 네덜란드대표팀 감독에 선임된 헨슬리 뮬렌 샌프란시스코 감독은 같은 팀에서 뛰었던 라이언 사도스키 현 롯데 스카우트 코치를 떠올렸다.

바로 직전시즌까지 롯데에서 3년을 뛴 사도스키는 특별한 언어적인 재능으로 통역 없이 한국어 소통이 가능했다. 선수를 보는 눈썰미도 매우 특출했다. 사도시키는 정성껏 자신이 직접 상대한 KBO리그의 타자들 그리고 롯데에서 함께 뛴 옛 동료들, 그리고 유심히 지켜봤던 KBO리그 에이스 투수들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작성했다.

롯데 라이언 사도스키 코치. 스포츠동아DB


사도스키 리포트는 한국이 네덜란드에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 후 폭스스포츠의 보도대로 세상에 그 존재가 알려졌다.

내용은 상당히 흥미롭다. 타자별 성향, 타구의 방향, 그리고 이에 따른 시프트 추천, 신체적 특성 그리고 파고들어야 할 단점도 있다. 롯데 시절 배터리였던 강민호에 대해서는 ‘경기를 읽는 눈이 부족하다’고 냉정하게 표현했고, 이승엽에게는 ‘한국의 전설적인 타자’, ‘집요한 몸쪽 승부 필요’, ‘슬라이더와 커브는 던지면 안 된다’, ‘테드 윌리엄스 시프트 사용’ 등 자세한 내용을 적었다. 김태균에 대해서는 1루 수비를 할 때 푸시번트를 조언한다. 이용규는 내야수의 자세한 위치 변경까지 강조했다.

기자는 한국과 네덜란드의 그날 경기를 현장에서 직접 취재했다. 충격적인 1라운드 탈락 이후 국내외 보도를 통해 접한 사도스키 리포트를 처음 읽었을 때 서늘함마저 느껴졌다.

직전 대회 준우승팀을 상대하는 네덜란드대표팀의 눈빛에는 분명한 근거가 있는 자신감이 보였기 때문이다.

KBO는 최근 김인식 감독을 2017WBC 감독으로 선임했다. 코칭스태프는 시즌 종료 후에나 구성이 가능한 상황이다. 야구의 종목 특성상 전임 감독이 어렵다면 국제대회 전임 전력분석팀 구성에 대해 고민해 봐야 할 때다. 야구는 이제 매년 A매치 수준의 국제대회가 이어진다. 전임 전력분석팀이 생기면 분명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동안 한국야구, KBO리그가 국제대회에 진 큰 빚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치 있는 투자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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