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G 김진 감독은 10일 전자랜드와의 홈경기에서 프로농구 역대 3번째 개인통산 정규리그 400승을 달성했다. 그는 “나는 운이 좋은 감독이었던 것 같다. 좋은 선수들을 많이 만났다”고 돌아봤다. 사진제공 | KBL
나는 운 좋은 감독…데뷔시즌 김승현·힉스 뽑아 우승
야오밍 있던 중국 꺾고 금메달 딴 부산AG 잊을 수 없어
감독 휴식기때 LA레이커스 등 선진농구·시스템 경험
주희정은 감독에게 감동주는 선수…가장 기억에 남아
농구는 각종 기록이 쏟아지는 ‘기록의 스포츠’다. 주희정(삼성), 김주성(동부), 애런 헤인즈(오리온) 등 오랜 기간 프로에 몸 담아왔던 선수들의 기록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이는 선수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팀을 이끄는 감독도 프로농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LG 김진(56) 감독은 10일 전자랜드와의 홈경기에서 77-71로 이겨 개인통산 정규리그 400승 고지에 올랐다. 유재학 모비스 감독(549승), 전창진 전 KGC 감독(426승)에 이은 역대 3번째 기록이다. 15일 LG의 연고지 창원에서 김 감독을 만나 냉혹한 승부의 세계에서 오랜 기간 지도자 생활을 해온 이야기를 들어봤다.
-늦었지만 400승 달성을 축하한다.
“감사하다. 시즌 개막 이전 400승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정확하게는 알지 못했다. 경기(전자랜드전) 끝나고 장내아나운서가 400승이라고 말해줘서 그제야 실감이 났다. 홈경기에서 기록을 달성해 개인적으로 의미가 더 컸다.”
-축하전화를 많이 받았을 것 같다.
“그렇다. 지인들에게서도 연락을 많이 받았고, 타 구단 감독들도 바쁜 와중에 연락을 해줘서 고마웠다.”
-단순한 1승이 아니라서 감회가 남달랐을 듯하다.
“아무래도 의미가 담긴 승리이다 보니 다른 날과는 달랐다. 예전부터 함께했던 선수들이 생각 났다. 전희철, 김병철, 김승현, 마르커스 힉스, 피트 마이클, 네이트 존슨, 서장훈, 주희정, 김태술 등 과거에 함께했던 선수들과 지금 나와 함께하고 있는 선수들, 구단 관계자들 등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2001년 오리온 감독으로 취임한 뒤 오랜 기간 감독 자리를 지켜왔다. 감독 수명이 점점 짧아지고 있는 현실 속에서도 오래도록 감독 경력을 이어온 비결이 있다면.
“나는 운이 좋은 감독이었던 것 같다. 좋은 선수들을 많이 만났다. 2000∼2001시즌 도중 최명룡 감독님이 물러나면서 감독대행을 했고, 시즌 종료 후 오리온 감독이 됐다. 감독 첫 해부터 김승현, 힉스라는 좋은 선수들을 뽑으면서 통합우승을 했다. 이후 SK와 지금의 LG에서도 좋은 선수들을 만났다. 선수들이 잘해준 덕분이다.”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있었는가.
“1995년 은퇴를 했다. 원래는 1993년 은퇴할 생각이었는데, 당시 (삼성전자) 감독이셨던 김인건 감독님의 권유로 2년을 더 뛰고 은퇴했다. 그 사이 지도자 준비를 해왔다. 당시 삼성전자는 실업팀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으로 전지훈련을 갔다. UCLA에서 훈련을 받았는데, 그 때 UCLA에 스티브 래빈(현 세인트존스대 감독), 로렌조 로마(현 워싱턴대 감독) 감독이 각각 수비, 공격코치로 있었다. 그 코치들이 삼성전자의 훈련을 지도했다. 래빈 코치는 수비 훈련, 오마 코치는 공격훈련을 분업해서 맡았는데, 그들의 분업화와 전문화된 모습이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래서 은퇴 이후 미국으로 연수를 가야겠다는 계획을 하고 있었다.”

김진 감독. 스포츠동아DB
-은퇴한지 얼마 되지 않아 상무(국군체육부대) 감독으로 부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맞다. 고(故) 김현준이랑 같이 은퇴를 했는데, 구단이 두 명을 연수 보낼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김현준은 UCLA로 갔고, 나는 상무 농구단 김홍배 부장으로부터 코치 자리를 제안 받았다. 자비로라도 유학을 갈 생각이어서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런데 일주일 간격으로 계속 전화를 하시더라. 5번이나 찾아오셨다. 4번째까지 정중하게 거절했는데, 5번째에 임명장을 하나 가져오시더라. 6급 공무원 조건이었다. 나는 그때 그런 개념을 몰랐는데, 당시 6급 공무원은 행정고시를 패스해야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하더라. 김홍배 부장이 참모총장 도장이 찍힌 임명장을 가지고 오셨다. 그 때 주변 기자 분들도 ‘유학도 좋지만, 상무에서 매년 새로운 선수들을 지도하는 것도 좋지 않겠느냐’며 조언해주셨다. 고민 끝에 유학의 뜻을 접고 상무를 맡았다. 그 때 김홍배 부장이 주신 임명장을 아직도 갖고 있다(웃음).”
-그 때 상무 멤버가 쟁쟁했는데.
“이상민, 문경은, 김승기, 조동기, 조성원, 김재훈 등이 그 때 논산훈련소에서 훈련을 받고 팀에 합류했다. 그 선수들과 참 재밌게 운동을 했다. 선수들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활용하는 법에 대해서도 많이 배웠다. 1년 뒤 동양(현 오리온)에서 창단 코치를 제안해왔다. 김홍배 부장이나 전영룡 부대장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해 팀에 남으려고 했는데, 오히려 김홍배 부장이 ‘흔치 않은 기회가 왔으니 프로무대에 가서 지도자 생활을 하라’고 배려해주셨다.”
-코치를 거쳐 2001∼2002시즌 감독으로 데뷔하자마자 우승을 경험했는데.
“2000∼2001시즌 도중 최명룡 감독이 물러나시면서 감독대행으로 있을 때 신인 드래프트(당시 프로농구 신인드래프트는 시즌 중인 1∼2월 열렸다)에서 3순위로 김승현을 지명했다. 그 때 1순위는 송영진이었는데, 워낙 대학무대에서 이름을 날렸던 선수여서 우리도 1순위가 나왔으면 송영진을 뽑았을 것이다. 2순위가 나오면 김승현을 뽑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3순위가 나오더라. 김승현을 못 뽑을 줄 알았다. 그런데 2순위 지명권을 가진 코리아텐더 진효준 감독이 전형수를 뽑으면서 계획대로 김승현을 뽑을 수 있었다. 김승현은 남다른 센스를 가진 선수였다. 외국인선수가 뛰는 프로무대에서 더 위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외국인선수 드래프트에선 1순위로 힉스를 뽑았다. 그 때 1순위 후보는 안드레 페리였다. 힉스는 페리에 비해 프로 경력이 미미했다. 친분을 쌓아왔던 듀안 티크노(전 NBA 댈러스 매버릭스 코치) 코치의 추천을 받아 힉스를 뽑았는데, 결과적으로 엄청난 효과를 봤다. 여러 면에서 운이 따른 해였다.”
-통합 우승 후에는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까지 땄다.
“2002년은 그래서 잊을 수 없는 한 해다. 통합우승을 해서 대표팀을 맡게 됐는데, 상대가 야오밍(전 NBA 휴스턴 로케츠)이 있던 중국이 아닌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선수들이 잘해줘서 생각하지도 못했던 금메달을 땄다. 한국농구사에 길이 남을 명승부 속에서 감독으로 있었다는 점에서도 영광스러운 순간이었다.”
-이후에는 정상 문턱에서 물러나기도 하고, 우승이 없었다.
“이듬해(2002∼2003시즌) 챔피언 결정전에서 여러 상황이 맞물리지 않아 우승을 못했다. 15초 사건(동양은 TG삼보와의 2002∼2003시즌 챔피언 결정 5차전 4쿼터 도중 시간이 15초나 흐르지 않아 종료 5초 전 상대에게 3점슛을 허용하고 패했다)도 아쉬웠고…. 첫 해에는 정신없이 우승을 했는데, 그 후 우승이 없었던 점은 아쉽다. 매년 새로운 출발을 하는데, 우승의 결실을 맺고 싶다는 생각은 나뿐 아니라 모든 지도자들의 생각일 것이다. 나 역시 우승이 하고 싶다.”
-2008∼2009시즌 도중 SK에서 사퇴한 뒤 2년 가량의 공백이 있었다.
“2년 반 가량을 쉬었다. 어릴 때 농구를 시작해서 처음 휴식을 취할 때였기 때문에,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미국으로 갔다. 그 때 4∼5개월 동안 미국에 가서 LA 레이커스의 훈련을 보는 등 은퇴 후 하지 못했던 선진농구 경험을 했다. 명문 구단의 시스템도 눈으로 확인하고, 현장을 떠나있었지만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다. 연수를 마치고 왔을 때 마침 LG에서 오퍼가 왔다.”

SK 시절 김진 감독과 함께했던 주희정. 사진제공|KBL
-지도자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가 있다면.
“김승현을 비롯해 많은 선수들과 함께해왔지만, 주희정이 기억에 남는다. SK에서 함께했는데, 감독들에게 감동을 주는 선수다. 아침 일찍 체육관에 출근하면 체육관에서 혼자 누군가 공을 튕기면서 운동을 하고 있다. 주희정이었다. 누구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다. 자기발전을 위해서 그러는 것이다. 얼마 전 데뷔 20년이 됐다고 해서 축하해줬다. 마음 같아서는 몇 년 더 뛰었으면 좋겠다. 지금 젊은 선수들에게는 그렇게 귀감이 될 만한 선수가 필요하지 않는가.”
-오랜 기간 프로 감독을 하면서 업적을 남겼다. 어떤 지도자로 남고 싶은가.
“선수들이 발전하는 데 도움이 되는 지도자로 기억이 되고 싶다. 늘 우리 팀 선수들이 더 발전하길 바란다. 언젠가 감독 생활을 마칠 때가 올 텐데, 그 때는 농구저변이나 중고교선수들의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되고 싶은 마음이다.”
● 김진 LG 감독
▲생년월일=1961년 1월 22일
▲출신교=신일고∼고려대
▲실업선수 경력=삼성전자(1984∼1995년)
▲지도자 경력=상무 감독(1995∼1996년), 동양 코치(1996∼2000년) 및 감독(2000∼2007년), SK 감독(2007∼2009년), LG 감독(2011년∼현재), 부산아시안게임 남자농구대표팀 감독(2002년)
▲수상 경력=KBL 정규리그 감독상(2002·2003년)
▲프로 정규리그 통산 성적=401승367패(승률 0.522·15일 현재)
창원 | 정지욱 기자 stop@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