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KLPGA 투어를 주름잡았던 서희경이 은퇴 후 2년 만에 해설가로 필드에 복귀했다. 해설가 데뷔전을 잘 치르기 위해 롯데렌터카여자오픈이 펼쳐진 서귀포 롯데스카이힐골프장 미디어룸에서도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서귀포 | 주영로 기자 na1872@donga.com
엄마의 삶도 좋았지만 정체된 모습 어색
내가 가장 잘했던 골프와 연관된 일 도전
2009년 같은 장소서 우승…감회 젖기도
1라운드 취소…준비 많이 했는데 아쉬워
필드를 떠나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서희경(31)이 방송 해설가로 변신했다. 골프채를 내려놓은 지 2년 만에 마이크를 잡고 필드로 돌아왔다.
서희경은 6일 제주 서귀포 롯데스카이힐골프장에서 시작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국내 개막전 롯데렌터카여자오픈(총상금 6억원)의 중계방송 해설을 맡았다. 난생 처음 마이크를 잡은 그는 “긴장되기보다 설렌다”며 새로운 경험에 신이 난 모습을 보였다.
5일부터 서희경은 분주했다. 골프장 미디어룸 한쪽 책상에 앉아 몇 시간을 꿈쩍도 하지 않고 무언가를 찾아 오리고, 노트에 붙이느라 정신이 없었다.
2006년 프로로 데뷔한 서희경은 뛰어난 패션감각뿐 아니라 화끈한 승부사 기질로 많은 골프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KLPGA 투어 통산 11승을 올렸고,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도 1승(2010년 기아클래식)을 거뒀다. 2011년 US여자오픈에선 유소연(27)과 연장 접전을 치른 끝에 아쉽게 준우승했다. 2015년 결혼과 함께 필드를 떠났고, 두 아들을 출산해 육아에만 전념해왔다.
골프와 멀리 떨어져있던 서희경이 필드로 돌아온 이유는 아쉬움과 도전 때문이었다. 그는 “결혼 후 두 아이를 출산하고 육아를 하면서 찾아온 행복감도 좋았다. 그러나 그렇게 정체된 내 자신이 조금은 어색했다. 무언가 새로운 일을 하고 싶어 찾고 있던 차에 해설자로의 제안을 받았다. 약간의 망설임은 있었지만, 내가 가장 잘했던 골프와 연관된 일이었기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서희경. 사진제공|SBS
골프웨어가 아닌 말끔한 정장이 아직은 어색하다. 몇 년 전만 해도 선수들과 그린에서 함께 땀을 흘리며 우승경쟁을 펼쳤는데, 이제는 선수들을 취재하는 입장이 됐다. 그래도 금세 낯설음을 털고 적응했다. 2년 만에 필드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천생 골퍼였다. 서희경은 “잘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도 됐고, 스튜디오에서 리허설을 할 때는 떨기도 했다. 그런데 필드로 나오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며 웃었다.
가족의 응원도 큰 힘이 됐다. 특히 남편과 시어머니는 새 출발을 반겼다. 서희경은 “남편은 열심히 해보라며 적극적으로 권했다. ‘잘할 수 있을 것’이라며 격려도 해줬다. 오늘(6일)도 데뷔를 보기 위해 큰 아들을 데리고 제주도로 내려오고 있다”고 자랑했다.
해설가로의 첫 무대인 만큼 준비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렇게 공부한 게 처음인 것 같다”며 멋쩍어 했지만, 이틀 전에는 깊이 있는 해설을 위해 직접 코스에 나갔다. 서희경은 “엊그제 7개월 만에 처음 골프채를 잡아봤다. 예전에 코스에서 직접 경기를 할 때는 느끼지 못했는데, 그린이 정말 어려웠다. 3퍼트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이런 코스에서 어떻게 시합을 했는지, 선수들이 대단해 보인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필드로 돌아오니 옛 추억도 새록새록 떠올랐다. 이번 대회가 열리는 롯데스카이힐골프장에는 명물이 하나 있다. 14번홀(파3·오션코스 5번홀) 그린 뒤쪽에 있는 ‘서희경 돌’이라는 표석이다. 제주에 많고 많은 게 돌인데, 유독 이 돌이 유명해진 데는 이유가 있다.
2009년 서희경은 같은 장소에서 열린 롯데마트여자오픈에서 우승했다. 당시 14번홀에서 티샷한 공이 그린 뒤로 굴러가 워터해저드로 빠질 뻔한 위기를 맞았다. 그런데 갑자기 공이 돌을 맞고 튕기면서 그린 근처에 멈췄다. 그 덕에 타수를 잃지 않은 서희경은 행운을 우승으로까지 연결했다. 그 뒤로 돌 앞에는 ‘서희경 돌’이라는 표석이 세워졌다. 서희경은 “다시 와보니 돌이 아직도 그대로 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사진도 찍었다”며 잠시 옛 추억에 잠겼다.
2009년 롯데마트여자오픈 우승 당시 서희경. 사진제공|KLPGA
해설가 서희경은 “이왕 시작했으니 잘해보고 싶다”며 “20년 동안 골프채를 잡았다. 비록 선수로선 필드를 떠났지만, 또 다른 모습으로 골프팬들을 만날 수 있어 좋다. 선수로 데뷔할 때보다 긴장되지는 않지만, 준비하는 과정에서 실수도 많았고 생각보다 챙겨야 할 것도 많았다. 오랜 시간 현장에서 뛴 경험을 바탕으로 선수의 마음을 읽어주고, 세심한 부분까지 짚어주는 해설을 하고 싶다”고 의욕을 보였다.
아쉽게 서희경의 해설가 데뷔는 단 10분에 그쳤다. 6일 예정됐던 대회 1라운드 경기가 강우로 인해 취소되는 바람에 중계도 일찍 끝났다. 아침 일찍 일어나 평소 하지 않던 화장까지 곱게 하고 데뷔를 준비한 서희경은 “준비를 많이 했는데 아쉽다”며 내일을 기약했다.
서귀포 | 주영로 기자 na187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