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토크③] 유동근 “이하늬 다시 봤다…반드시 통할 재목”

입력 2017-04-26 10: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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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유동근은 최근 기자들이 많이 사용하는 소위 ‘연기 神’들을 모아 신전을 하나 만든다면 분명히 매우 높은 위치에 있을 정도의 연기자다. 그는 한 번도 힘든 조선의 왕 연기만 무려 7번을 해냈으며 특히 ‘용의 눈물’ 속 태종 이방원 연기는 무려 20년이 지난 지금도 사람들의 입에 회자될 정도다.

“그 때는 저의 태종 이방원 연기가 이렇게 오래토록 기억될 줄 몰랐죠. 지금 생각해 보면 사극 연출의 거장이었던 김재형 감독, 상당한 필력의 소유자였던 이환경 작가 이 두 분의 공이 정말 컸구나 라는 생각을 해요. 또 지금은 고인이 되신 故 김흥기 선배, 김무생 선배 같은 분들이 있었기에 이방원도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동안 인터뷰를 통해 만난 배우들은 가끔 “사극은 정말 힘들다. 추울 때 춥고 더울 때는 정말 더운데다가 대사도 어렵다. 그래서 다시는 안하겠다고 이를 갈면서도 또 섭외가 오면 하게 된다. 묘한 매력이 있다”고 말해주곤 했다. 그러나 정작 이들도 그 ‘사극의 매력’이란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설명하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유동근은 이 질문에 답을 해줄 수 있을까.

“사극의 매력이란 배우들이 연극 무대에서 느끼는 매력과 비슷하죠. 본인이 끌어낼 수 있는 모든 에너지를 뿜어도 된다는 것. 그러려면 젊은 배우들이 사극에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이 충분히 조성되어야 해요. 주인공이라는 건 결코 한 두 번 연기를 한다고 해서 만들어 지는 게 아니거든요.”

그는 사극 뿐만 아니라 다른 장르의 드라마 주인공들에게도 훈련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동근의 표현을 빌리면 “턱이 열릴 때까지 연기를 해봐야 한다”고.

“배우의 발성이라는 것은 결국 턱이 열려야 하는 겁니다. 턱이 열리지 않는 발성은 그냥 소리를 지르는 것에 불과한 거예요. 그리고 사극 같은 경우는 한복도 입잖아요? 익숙하지 않으니까 더 자주 입어서 내 걸로 만들어야 해요. 그런데 요즘은 젊은 배우와 그 배우를 데리고 있는 소속사들이 많이 웅크리는 것 같아요. 시청자들이 그 배우의 연기를 딱 한 번 보고 좋다 나쁘다 판단을 내려버리니까 그들도 상처를 입는거죠. 훈련을 통해 젊은 배우들이 커질 수 있도록 시청자들도 좀 봐주고 기다려주셨으면 좋겠어요.”

이어 유동근은 그 사례로 MBC 월화드라마 ‘역적’에 출연 중인 이하늬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이번에 ‘역적’을 보면서 이하늬라는 친구를 다시 봤어요. 정통 사극에서 더 큰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배우더라고요, 저도 연산군을 해봤지만 이하늬의 장녹수는 그저 왕이나 홀리는 여자가 아니었어요. 상당히 좋은 재목이라고 봐요, 또 그 배우의 한복 자태나 음색도 이하늬의 큰 자산이에요. 그런 배우는 언젠가 정통 사극에서 제대로 된 한 방을 보여줄 수 있을 거예요.”

그는 앞선 인터뷰에서 밝힌 대로 정통 사극의 부재를 참으로 안타까워했다. 또한 해외 판매를 목적으로 돌아가는 드라마 제작 시스템에도 일침을 가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유동근은 “현대극에도 정통 드라마가 있다”며 “연출자가 인정하는 후배 연출자가, 필력 있는 작가가 인정하는 후배 작가가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국내 드라마의 하향평준화는 유동근을 비롯한 중견 배우들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만 봐도 답이 나온다. 아무리 연기를 잘하는 배우여도 나이가 들면 젊은 배우들에게 주연 자리를 내주고 아버지, 어머니에 머무르는 지금 우리 드라마를 정말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나이가 들면서 배역 선택의 폭이 좁아지는 건 안타까운 일이죠, 그리고 지금은 중견 배우들이 설 시장 자체가 매우 협소해요. 그러다 보니 실력 있는 배우들이 언제 올지고 모르는 버스를 정류장에서 무한정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거죠.”

하지만 유동근은 시장이 좁아져도 상황이 열악해 져도 자신의 일인 연기를 사랑한다. 그는 40년 연기 인생의 원동력을 묻는 질문에 “신인 때나 지금이나 그 질문의 답은 같다. 내가 이 일이 좋아서 그렇다”고 답했다.

“예전에 사극을 찍을 때는 정말 힘들었어요. 얼굴에 니스를 발라 수염을 붙이고 기름으로 떼고, 또 진짜 검을 휘둘렀죠. 그 당시에는 어린 나이에 도망가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어요. 하지만 이제 와서 보니 그런 일들이 저를 배우로 만들어 줬구나 싶어요. 수양대군도 하고 정조도 해봤기 때문에 ‘용의 눈물’ 이방원을 할 수 있었듯이 연기는 개별적으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결국 하나로 이어져 있어요. 그런 것들이 저를 철들게 하고 반성하게 만들었습니다.”

동아닷컴 곽현수 기자 abroad@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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