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스빠르뚜, 춘천 하늘을 열어줘

입력 2017-09-08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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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기구 성지‘의 영예는 앞으로 터키에서 대한민국 춘천으로 옮겨질지도 모르겠다. 지난 7월 춘춴에서 상업 열기구 비행을 시작한 스카이레저는 낭만과 안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일찌감치 포획하는 데 성공했다. 6인승 열기구가 비행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월간태백

춘천 스카이레저 열기구 타보니…


설렘과 긴장감에 안전 브리핑 귀 쫑긋
열기구가 부풀고 이윽고 하늘로 둥실
강과 산이 어우러진 춘천 경치 한눈에
발밑에 구름…눈부신 태양에 입이 쩍
비행시간 40분…금방 지나가 아쉬워


“춘천에 열기구가 뜬다고요?”

상상도 못했다. 열기구를 타본 경험이라곤 놀이공원 천장에 매달려 정해진 레일을 끊임없이 맴돌던 것뿐이었다. 그런데 진짜 하늘을 나는 열기구라니! 심지어 서울에서 기차로 1시간 남짓이면 갈 수 있는 춘천에서. 열기구의 성지라 불리는 터키까지는 갈 필요도 없었다. 당장이라도 춘천 행 기차에 몸을 싣고 싶었다.


● 기다림 그리고 설렘

오락가락하던 날씨 때문에 기다림이 길어졌지만, 마침내 비행 일정을 확정했다. 자유 비행 예정 시각은 오전 6시였다. 하루 전 춘천에 도착했고, 비행 당일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었다. 새벽 4시 40분에 일어나 반쯤은 감긴 눈으로 나갈 채비를 했다. 재빨리 단장을 마치고 숙소를 나서자 춘천의 상쾌한 아침 공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덕분에 머리도 한결 맑아졌다.

집결지는 서면 현암리였다. 이륙장에 도착하자마자 안전 동의서를 작성했다. 잠이 덜 깬 비몽사몽의 기운 속에 얼떨결에 사인을 해버렸다. 순간 ‘아차’ 싶었지만, 다행히 스카이레저 이상헌 과장이 승객들을 대상으로 안전 브리핑을 진행했다. 그는 “열기구는 정말 안전하다”고 재차 강조했지만, 왠지 모를 긴장감에 귀를 쫑긋 세웠다.


● 알록달록 열기구에 오르다

넓은 땅에 구피가 펼쳐졌다. 크기를 가늠하고 싶은 마음에 끝에서 끝까지 걸으니 총 33걸음이 나왔다. 다양한 색들로 꾸며져 화려함을 과시하던 열기구에겐 이름도 있었다. 빠스빠르뚜. ‘80일간의 세계일주’에 나오는 하인의 이름에서 따왔다. 작품 속에서 그는 조연이지만, 실제로는 긴 여정을 주도하는 인물이다. 더불어 프랑스어로는 ‘만능열쇠’라는 뜻도 있다.

갑자기 큰 소리가 들려왔다. 대형 송풍기를 돌려 구피 안에 바람을 넣기 시작한 것이다. 서서히 부풀어 가는 모습을 지켜보니 금세 25분이 흘렀다. 스카이레저 조종팀을 이끌고 있는 김문태 조종사의 “준비가 되었으니 위치해 달라”는 지시에 따라 사람들이 바스켓으로 모여들었다.

노란 풍선을 하늘에 띄워 마지막으로 풍향을 확인했다. 승객들은 4개의 작은 칸으로 나뉜 바스켓에 하나둘씩 올라탔고, 마침내 열기구가 둥실 떠올랐다.

비행에 앞서 열기구 구피 안의 공기를 가열하고 있다.(왼쪽 사진) 허허벌판에서 비행하는 해외의 열기구와 달리 춘천에서는 북한강, 삼악산의 아름다운 정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신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오른쪽 사진)




● 우리들의 고요한 시간

보통 열기구는 사막 같은 허허벌판에서 띄우는 것이 일반적이다. 때문에 눈으로 즐길 것이 그리 많지는 않다. 그러나 춘천에서의 비행은 달랐다. 강과 산의 경치를 한눈에 담을 수 있어 매력적이다. 이날은 아쉽게도 자욱이 드리운 안개 때문에 탁 트인 경관을 감상하지는 못했지만, 한편으론 나름의 운치가 있었다. 안개 위에 살포시 얼굴을 드러낸 산봉우리가 특히 그랬다.

조금 더 올라가니 어느새 발밑에 구름이 깔렸다. 정면에선 태양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누가 “조용히 하라”고 한 것도 아닌데,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고요 속에 잠겼다. 태양을 마주하곤 나지막이 “와…”하며 짧은 탄식만 내뱉을 뿐 아무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온통 새하얀 안개 속에 오직 우리뿐이었다. 꿈에서나 볼 법한 광경이었다. 몽환적인 분위기에 기분까지 묘해졌다.

조종사의 손길에 따라 열기구의 높낮이는 금세 달라졌다. 어느새 북한강 수면까지 내려와 있었다. 마치 물 위에 서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눈앞에서 유영하는 오리 한 쌍을 넋 놓고 바라보다가 시계를 보니 이륙한 시간으로부터 30분이 훌쩍 지나있었다. 착륙까지는 10분이 남았다.

열기구는 다시 고도를 높이더니 비행을 시작했던 곳으로 슬금슬금 움직였다. 이제 육지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이날 배우자와 함께 온 김연옥(39) 씨는 “시간이 금방 갔다. 올라가자마자 내려오는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같은 마음이었다.


● 한 장의 종이에 담긴 행운의 추억

열기구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김 조종사가 “착륙 시 돌풍 때문에 흔들릴 수도 있다”고 주의를 줬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열기구는 한겨울 눈송이처럼 살포시 지면에 내려앉았다. 착륙지는 이륙했던 곳과 정확히 같은 지점이었다.

비행 전 들었던 설명을 다시금 떠올려보니 “바람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기 때문에 열기구가 동일한 곳에서 이착륙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는 말이 떠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이민영 차장이 “그동안 이뤄진 20차례의 비행 중 이런 경우는 겨우 2번뿐 이었다”며 놀라워했다. 돈을 주고도 살수 없는 귀한 경험을 한 것이었다. 뜻밖의 행운을 선물 받은 것 같아 괜히 기분도 좋아졌다.

무사히 비행을 마친 기념으로 일행 모두가 무알콜 샴페인 잔을 기울이며 서로를 축하했다. 이어 김 조종사가 비행인증서에 승객들의 이름을 일일이 적어 나눠줬다. 박수갈채가 뒤따랐다. 영원히 추억하게 될 춘천에서의 기억이 한 장의 붉은 종이에 전부 담겼다.

춘천 | 서다영 기자 seody30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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