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기획] 이호근-이동엽-이민지 ‘농구가족’ 사랑의 3점슛

입력 2017-10-02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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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남매가 농구에 몸담고 있다. ‘삼성’으로 엮여있다. 아빠 이호근(가운데)은 2008년부터 2015년까지 여자프로농구 삼성생명을 이끌었고, 아들 동엽(뒷줄 오른쪽)은 2015년부터 남자농구 삼성 유니폼을 입고 있다. 딸 민지는 신한은행을 거쳐 아빠가 지휘했던 삼성생명에서 활약 중이다. 경기도 용인 삼성트레이닝센터(STC)에서 만난 삼성 가족의 표정이 밝다. 용인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삼성경기 보는데, 오빠가 못하면 민망, 가족이라서 그런가봐요

이동엽

아쉬울때만 ‘오빠∼’하는 내 동생
경기 못할땐 속상해서 TV 끄고 싶죠

■ 이민지

‘오빠∼’ 전훈 갈때 차 내가 써도 되지?
소통 잘하시는 우리 아빠, 큰 힘 돼요

■ 이호근

잘하는 것보다 다치지 않는 게 중요
같은 길 함께 가는 애들 보면 뿌듯해


국내 농구계에는 부모의 영향을 받아 농구선수의 길을 걷고 있는 농구인 2세들이 유독 많다. 남자프로농구 삼성의 이동엽(23)과 여자프로농구 삼성생명의 이민지(22)도 같은 사례다. 둘의 부친은 전자랜드(남자프로농구), 삼성생명(여자프로농구)에서 지도자생활을 한 이호근(52) 숭의여고 감독이다.

이 감독은 현역시절 현대전자(현 KCC)에서 센터로 활약했다.

인터뷰를 위해 모처럼 삼성트레이닝센터(STC)를 찾은 이 감독은 “오랜만에 STC에 왔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는 체육관에 마련된 자리에 앉아 남매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이, 인터뷰하기로 한 시간인데 안 오고 뭐 하냐” 잠시 후 이동엽이 나타났다. “아빠, 아직 (이)민지 안 왔어요?”

이 감독은 “그래도 우리 아들은 인터뷰 한다고 깔끔하게 옷 입고 왔네. 딸은 보나마나 운동복 대충 입고 나올텐데…”라며 걱정을 했다. 1분이 채 되지 않아 이민지가 청바지에 흰 티셔츠를 차려입고 왔다. “아이고, 우리 딸 꽃단장 하고 나왔네∼” 이 감독의 입가에 금방 미소가 번졌다.

경기도 용인 삼성생명휴먼센터에서 이호근, 이동엽, 이민지 인터뷰. 용인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각자 일정이 있을텐데 이렇게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족들끼리 이렇게 모일 기회가 있나요?


이동엽(아들)=비 시즌에는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보죠. 시즌 때는 잘 못 봐요.


이호근(아버지)=곧 시즌이 되니까 아무래도 볼 시간이 줄어들겠죠.


-남매가 다 농구를 하는 경우가 드문데, 아무래도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것이겠죠?

동엽=안 받았다고는 할 수 없죠. 아버지의 선수시절은 영상으로도 보질 못했지만 동국대, 전자랜드에서 지도자 하실 때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농구를 하게 됐어요.

호근=동엽이는 엄마가 마음을 먹고 (농구를)시켰어요. 원래 흑석동에 살았는데, 농구부가 있는 학교(연가 초등학교)로 전학을 시켰을 정도니까요. 민지는 내가 권유를 해서 농구를 시작했는데, 중간에 하기 싫다고 그만뒀다가 결국에는 다시 농구를 하더라고요.


이민지(딸)=나는 하기 싫다고 했지.

호근=5학년 때 하기 싫다고 6개월 쉬다가 ‘네가 판단해라’라고 했더니 그 때 농구 하겠다고 했었지.

동엽=농구가 하기 싫었는데, 공부가 더 하기 싫었던 거지.

민지=아냐. 나 공부는 잘했어.

동엽=맞아요. 민지는 민사고(민족사관고등학교) 준비를 했었으니까요.


-하하. 농구선수 하게 된 걸 후회는 안 해요?

민지=아플 때는 하죠. 대학생활 하는 친구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요.

호근=팀에서 자리 잡고 서른 넘어서라도 공부 하면 되지.

민지=아빠는 참…


-아버지한테 연락은 자주하는 편인가요?

동엽=자주하죠. 팀 동료들하고 비교 했을 때는 자주하는 편이에요. 맞지?

민지=그건 맞아요.

호근=인마, 내가 너한테 하는 거지. 네가 나한테 하냐. 딸은 그래도 매일 하는데, 아들놈은 연락 안 해요.

동엽=일주일에 한 두 번이면 많이 하는 편 아닌가요?

호근=아버지한테는 매일 해야지.

경기도 용인 삼성생명휴먼센터에서 이호근, 이동엽, 이민지 인터뷰. 용인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이동엽 선수랑 이민지 선수는 같은 숙소를 쓰니까 얼굴은 자주 볼텐데, 어떤 남매인가요?

동엽=다정한 남매죠.

민지=오빠가 많이 챙겨줘요.

호근=동엽이가 다정한 오빠고 장난은 민지가 자주 걸지. “야. 동엽아” 이러고. 하하.

동엽=오빠라고 들어본지가 언젠지…자기가 뭐 필요하거나 빌려야 할 때 오빠라고 하죠.


-주로 뭘 빌려가나요?

민지=오빠 자동차 키요(웃음). 팀 동료들하고 숙소 주변의 카페에 나갈 때 차를 타고 나가면 편하거든요. 원래 처음 살 때 같이 쓰기로 하고 산 거에요.

동엽=야, 넌 차 살 때 돈 안 냈잖아.

민지=카페거리(숙소에서 1km거리) 잠깐 다녀오는 건데 기름 채워 넣으라고 한다니까요. 치사해. 오빠가 없는 동안에는 제가 좀 쓰려고 벼르고 있어요.

동엽=으∼. 차 키를 꽁꽁 숨겨놔야겠다.

호근=동엽아, 아버지 추석 때 네 차 좀 쓰자. 고향(광주) 좀 다녀오게(웃음). 애들은 이제 시즌이 임박해서 추석 때 같이 갈 수가 없어요. 와이프랑 저만 다녀와야죠.

동엽=아버지는 운전을 막 하셔서 안 돼요.

삼성생명 이민지. 사진제공|삼성생명



-이동엽 선수는 동생이 삼성생명으로 트레이드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땠나요?

동엽=민지가 삼성생명으로 온다는 기사가 나기 하루 전이었어요. 임근배(삼성생명 감독) 감독님과 마주쳤는데, 저에게 ‘동엽아, 네 동생 운동 잘하고 있대?’라고 물어서 그런 것 같다고 대답하니까 ‘계속 잘하라고 해’하고 지나가셨어요. 그러고 다음날 민지가 트레이드로 오더라고요. 지나고 나니까 그게 일종의 암시였던 것이죠.

민지=그날 외박이어서 집에 있었는데, 삼성생명 구단에서 연락이 오고 트레이드가 된 걸 알았어요. 아빠는 몰랐지?

호근=아빠가 왜 몰라 이 녀석아. 느낌이 있어. 프로에서 트레이드가 자연스러운 것이고 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으니 잘 받아들이라고 했어요.


-남매가 서로의 경기도 보는 편인가요?

동엽=민지의 경기를 일부러 찾아보는 것은 아닌데 시즌 때 치료실이나 숙소 휴게실에 항상 농구 중계가 나오니까 그 때는 봐요. ‘좀 잘해라’하는 심정이랄까. 못하면 TV를 끄고 싶고 그래요. 그치?

민지=맞아요. 우리 팀 경기가 없을 때는 삼성의 경기를 보는 편인데 오빠가 못하면 괜히 민망해지고 그래요. 가족이어서 그런지 속으로 ‘좀 잘해봐’라고 하죠.


-감독님은 아이들의 경기를 자주 보시나요?

호근=시간나면 보려고 하죠. 삼성 홈구장이 잠실이니까 멀지 않아서 시즌에 10번 정도는 경기장에 찾아가죠. 삼성생명 경기장도 집(판교)에서 멀지는 않은데, 아무래도 제가 있었던 팀이다 보니 자주는 못가겠더라고. 그래도 10번 정도는 직접 보는 것 같네요. 아이들을 보면서 항상 다치지 말라고 하죠. 아무리 농구를 잘해도 다치면 경기에 뛸 수 가 없어요. 몸이 건강해야 기회가 오지. 기술적인 부분은 별로 얘기 안 해요. 그냥 아빠로서 부상 걱정인거죠.

삼성 이동엽. 사진제공|KBL



-아들, 딸이 감독님께 용돈도 드리고 여행도 보내주고 그러나요?

호근=아이고, 한달에 한 번씩 용돈 많이 줍니다. 허허. 서로 자기가 주겠다고 하는걸요. 내일은 누가 줄 거냐?(웃음)

동엽=(옆에 있는 구단 직원에게)아버지 용돈 좀 드리게 저 연봉 좀 올려주세요.

민지=가족여행은 재작년에 괌으로 한 번 갔었어요.

동엽=아니지. 작년이야. 내가 돈 많이 내서 알아.


-이동엽 선수는 비 시즌 휴가기간 때도 혼자 체육관 나와서 운동을 열심히 하던데, 그래서인지 최근 연습경기 때 많이 성장했다는 평가가 들려요.

동엽=진짜요? 누가 그래요?

호근=본인이 프로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아요. 시즌 끝나고 딱 일주일 정도 쉬더니 한 달 동안 웨이트 트레이닝 열심히 하더라고요. 놀 때 놀면서 운동도 알아서 잘해요.

동엽=(주)희정 형이랑 2년을 함께하면서 많이 배웠어요. 프로선수로서 몸 관리나 마인드를 함께 생활하면서 많이 느꼈죠. ‘저렇게 해야 프로선수로 성공을 하는구나’라고 생각을 하는데도 희정 형의 훈련을 그대로 따라하지는 못하겠더라고요. 그만큼 희정 형은 대단했어요.


-반면에 이민지 선수는 무릎이 아파서 고생하고 있다고…

민지=네. 연골 연화증이 있어요. 하루아침에 나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걱정이에요. 지금은 통증 자체에 익숙해져버렸죠.

동엽=이거요 논문을 써봐야 해요. 무릎도 유전인지. 아버지도 선수 때 무릎이 안 좋으셨거든요(웃음).

호근=인마. 자꾸 까불래.

농구인 가족이 한자리에 모였다. 남자농구 삼성에서 활약 중인 이동엽(맨 왼쪽)이 풀어내는 이야기를 아빠(이호근 전 삼성생명 감독)와 여자농구 삼성생명 소속 여동생(이민지)이 흐뭇한 표정으로 듣고 있다. 용인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지금 아버지가 고교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는데, 고교농구 경험자로서 후배들을 지도하고 있는 아버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동엽=농구에 관해서는 저보다 훨씬 많이 아시니까 훈련은 할말이 없어요. 다만 학생들이 졸업한 뒤에도 찾아뵙는 좋은 농구 선생님이 되셨으면 좋겠어요. 저도 지금 찾아뵙는 분이 있고 그렇지 않은 분이 있거든요.

민지=아버지가 선수들과 소통하는 지도자였으면 해요.

동엽=소통은 뭐 우리 아버지가 1등이지. 소통만 놓고 보면 국가대표 감독님인거 몰라?(웃음)

민지=선수에게는 그게 진짜 중요해요. 선수 입장에서는 감독에게 어려운 일 말 하기가 진짜 어렵거든요.

호근=내가 숭의여고 감독으로 부임한지 4개월 밖에 안됐는데, 애들이 다들 지도받는 태도가 좋고 잘 받아들어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나아지려고 아등바등 노력하는 모습만으로도 보람을 느끼죠.

정지욱 기자 stop@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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