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준의 여기는 도쿄] 한국축구, ‘숙적의 심장’을 ‘약속의 땅’으로

입력 2017-12-16 21: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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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대표팀 신태용 감독과 코칭스태프, 선수들이 2017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 우승 트로피를 들고 환호하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그야말로 통쾌한 승리다. 적의 심장부를 또다시 약속의 땅으로 만들었기에 더욱 짜릿하다.

한국축구가 적지에서 값진 1승을 챙겼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축구국가대표팀은 16일 일본 도쿄 아지노모토스타디움에서 열린 ‘2017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 일본과 3차전에서 4-1 역전승을 거뒀다. 최종성적 2승1무로 7년만의 라이벌전 승리와 함께 대회 2연패 그리고 통산 4회(2003, 2008, 2015, 2017년) 우승이라는 선물을 함께 품었다.


●‘신의 묘수’가 된 공격 위주 전환


초반 실점 장면만을 빼면 군더더기가 없었다. 한국은 경기 시작과 함께 선제골을 내줬다. 장현수가 페널티박스 안에서 이토 준야의 돌파를 막다가 옐로카드를 받았다. 이어 고바야시 유가 침착하게 페널티킥을 성공시켜 1-0으로 앞서갔다. 한국으로선 전열이 흐트러질 수 있는 상황. 그러나 경기는 이때부터였다.

곧바로 반격이 시작됐다. 공격적으로 방향을 튼 부분이 주효했다. 전반 13분 이근호가 왼쪽에서 올린 크로스가 김신욱의 머리로 정확하게 향했다. 197㎝ 장신의 골잡이가 이를 놓칠 리 없었다. 침착하게 머리로 받아내 상대 골키퍼 나카무라 코스케를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승부는 1-1 동점.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기세가 오른 한국은 더욱 고삐를 쥐었다. 전반 21분 환상적인 프리킥 골이 터졌다. 주세종이 얻은 프리킥 찬스에서 정우영이 완벽한 무회전 킥으로 다시 골망을 갈랐다. 자로 잰 듯 골대 오른쪽 상단을 타고 들어갔다. 순식간에 리드가 한국 쪽으로 넘어왔다.

전반 35분에는 이재성의 원맨쇼가 빛났다. 이재성이 중앙부터 날렵한 움직임을 앞세워 상대 수비수 2명을 제쳐 기회를 엿봤다. 이내 김신욱을 발견하고 공을 전달했고, 물오른 감각의 김신욱이 왼발로 가볍게 차 넣었다. 한국의 3-1 리드. 후반에는 교체투입된 염기훈이 후반 24분 프리킥 골을 추가해 4-1로 격차를 벌리고 사실상 승부를 굳혔다.


●40년 가까이 ‘약속의 땅’이 된 도쿄

이날 승리는 라이벌의 심장부에서 거둬 더욱 의미가 깊다. 공교롭게도 한국은 일본의 수도인 도쿄에서 40년 가까이 무패행진을 달리고 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경기장은 각기 달랐지만, ‘도쿄는 필승’이라는 공식을 이번에도 이어나갔다.

이날 경기를 포함해 78번 맞대결을 벌인 한국과 일본은 도쿄에서는 총 24번 맞붙었다. 전적은 한국이 압도적으로 앞서고 있다. 13승7무4패. 사실상 3번 싸우면 2번은 이긴 셈이다. 도쿄에서의 마지막 패배는 기억마저 희미하다. 1979년 3월 4일 정기전으로 치른 경기에서 1-2로 졌다. 그러나 그 이후로는 패배가 없다. 이날까지 정확히 10번의 도쿄 원정에서 7승3무를 거뒀다. 그 가운데는 1997년 도쿄대첩(이민성의 역전골 앞세워 2-1 승리)이 있었는데 이날 역시 0-1 열세를 4-1 대승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20년만의 도쿄대첩이라 칭해도 손색이 없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한일전의 운명이 그러하듯 결과에 따라 두 나라의 희비가 갈렸다. 이날 아지노모토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약 3만명의 일본 홈팬들은 초반 득점 직후 응원의 목소리를 높였지만, 곧바로 역전을 허용하며 분위기가 가라앉고 말았다. 반면 소수에 지나지 않던 한국 원정팬들은 한 골, 한 골이 터질 때마다 함성을 키웠다.

경기가 4-1로 끝난 뒤 일본 팬들은 야유를 보냈고, 한국 팬들은 ‘대한민국’을 외쳤다. 그렇게 78번째 한일전이 막을 내렸다.

도쿄 | 고봉준 기자 shuto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한국축구 최근 10차례 ‘도쿄 원정’ 일지

▲2017년 12월 16일 | 4-1 승 | E-1 챔피언십 | 김신욱 정우영 김신욱 염기훈
▲2010년 02월 14일 | 3-1 승 | 동아시아선수권 | 이동국 이승렬 김재성
▲2003년 05월 31일 | 1-0 승 | 친선경기 | 안정환
▲2000년 12월 20일 | 1-1 무 | 친선경기 | 안정환
▲1997년 09월 28일 | 2-1 승 | 프랑스월드컵 최종예선 | 서정원 이민성
▲1997년 05월 21일 | 1-1 무 | 친선경기 | 유상철
▲1988년 10월 26일 | 1-0 승 | 정기전 | 최순호
▲1985년 10월 26일 | 2-1 승 | 멕시코월드컵 최종예선 | 정용환 이태호
▲1983년 03월 06일 | 1-1 무 | 정기전 | 김경호
▲1981년 03월 08일 | 1-0 승 | 정기전 | 정해원
※일시 | 결과 | 성격 | 득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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