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스포츠의 길을 믇다] ③ 문형철 리우올림픽 총감독, “한국 양궁이 강하고 끈끈한 이유는….”

입력 2018-04-20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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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 화살’은 국제대회를 치를 때마다 항상 양궁 대표팀을 따라다니는 말이다. 매번 최고의 자리를 든든히 지키는 대표팀의 비결은 대체 무엇일까. 문형철 현 예천군청 감독(전 리우올림픽 양궁대표팀 총감독)은 “피나는 노력”을 첫 번째로 꼽았다. 17일 경북 예천 진호양궁장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는 문 감독. 예천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금빛 화살’은 국제대회를 치를 때마다 항상 양궁 대표팀을 따라다니는 말이다. 매번 최고의 자리를 든든히 지키는 대표팀의 비결은 대체 무엇일까. 문형철 현 예천군청 감독(전 리우올림픽 양궁대표팀 총감독)은 “피나는 노력”을 첫 번째로 꼽았다. 17일 경북 예천 진호양궁장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는 문 감독. 예천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최고의 자리를 지켜내는 것이 최고의 반열에 오르는 것보다 어렵다는 이야기가 있다. 한국양궁이 그렇다. 2016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대회 싹쓸이까지 역대 하계올림픽에서 무려 23개의 금메달을 획득했다. 1972년 독일 뮌헨 대회에서 양궁이 시작된 이래 금빛 시상대가 40차례 마련됐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절대 강자의 위상을 떨친 셈이다.

그렇다고 실력만 좋은 것이 아니다. 항상 집안싸움과 논란을 거듭해 망신을 당하곤 하는 일부 아마추어 종목과 달리 양궁인들은 유난히 끈끈하고 화합해 귀감을 산다. 세상사에 갈등이 전혀 없을 수는 없어도 금세 봉합하고 한길을 걷는다.

“우리 양궁은 어째서 우수할까? 왜 타 종목들과 다를까?”, “향후 미래는 어떨까?”, 뚜렷한 답을 찾기 어려운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경북 예천을 찾았다. 2008베이징올림픽 여자대표팀 감독을 거쳐 2년 전 리우올림픽 양궁대표팀 총감독으로 활약한 문형철(60) 예천군청 감독을 만났다. 오직 활을 사랑해 어렵게 현역 생활을 한 한국양궁 1세대 중 한 명이다.

새하얀 벚꽃이 장관을 이룬 예천진호국제양궁장 내 사무실에서 마주한 문 감독은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남겼다. “남이 아닌, 스스로와의 싸움이 양궁이다. 가장 공평한 게 가장 유리한 것이니까.”

문형철 예천군청 감독. 예천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문형철 예천군청 감독. 예천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엉뚱한 질문부터 하겠다. 우리 양궁은 왜 이렇게 잘하나?

“열심히 하니까(웃음). 열정이다. 양궁이 국내에 도입된 것이 1959년이다. 이전에는 일본과 미국 등 주변국들에게 배우는 입장이었다. 난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활을 접했다. 체계도 없었고 전문 지도자도 부족했다. 태권도를 전공하신 학교 체육선생님이 외국 스포츠잡지 사진과 그림을 보고 맛만 살짝 보여주셨다.”


-한국인들의 감각이 남달라서일까?

“외신들이 ‘젓가락 문화’를 이유로 들곤 하는데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오직 피나는 훈련의 결과다. 양궁도 체격의 영향을 받는다. 바람의 변수를 조금이나마 줄이려면 무거운 활을 들면 유리하다. 그런데 우리가 똑같은 장비를 활용할 수 없다. 조준과 슈팅까지 승리 감각을 익히기까지 혹독한 반복훈련이 수반됐다.”

문형철 예천군청 감독. 예천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문형철 예천군청 감독. 예천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활과 화살 등 대단히 우수한 장비가 쏟아지는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문 감독은 국궁으로 연습하기도 했다. 실제로 대한궁도협회에서 국궁과 양궁을 동시에 운영했다. 1983년 대한양궁협회가 창립됐지만 한동안 국궁인들로부터 활에 대한 이해와 정신을 배웠다.


-상당히 삶이 어려웠을 듯 하다.

“몇몇 팀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기업이나 지자체 이름만 빌려 쓰는 정도였으니까. 선수들이 직접 스폰서를 구해 훈련을 이어갔다. 급여는 여기저기서 조금씩 받아썼다. 운동에 미쳐서, 활이 너무 좋아 방을 얻어 자취를 했다. 그런데도 서럽지 않았다. 좀 더 윤택했으면 한다는 아쉬운 정도?”


-지도자의 길도 일찍 입문했다.

“늦게 선수를 시작했지만 은퇴도 빨랐다. 요즘은 30대 후반까지도 넉넉히 현역을 이어가는 후배가 꽤 많은데, 나와 또래들은 그러지 못했다. 그런데 양궁에 제대로 눈을 뜬 것이 지도자를 하면서였다. 특히 일본과 꾸준한 교류가 도움이 됐다. 많이 배웠고, 자료도 최대한 얻었다.”

선진 양궁에 목마른 국내 지도자들은 자체적인 협의체를 만들었다. 태극회에서 궁우회로, 지금은 한국양궁지도자협의회로 이름이 바뀐 모임을 70년대부터 주기적으로 가졌다. 자체 세미나에 스폰서를 직접 구해 실내양궁대회를 열기도 했다. 훈련과 체력, 부상방지, 심리 등 다양한 주제로 분임토의를 했고 기술 관련 정보를 서로 공유했다. 2005년 정의선(48)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양궁협회장에 취임하면서 또 달라졌다. 2006년부터 협회 주도로 지도자 세미나를 운영하게 됐다. 문 감독은 “각자의 노하우를 오픈하고 공유했다. 숨기지 않았다. 홀로 욕심을 부리지 않고 전체가 고루 성장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문형철 예천군청 감독. 예천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문형철 예천군청 감독. 예천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양궁에 파벌이 없는 배경인 것 같은데.

“종목 특성도 솔직히 크다고 본다. 양궁은 내 실력이 최우선이다. 남을 속이는 전략을 짜야 아무런 득이 없다. 내가 잘 쏘면 이기고, 못 쏘면 지는 종목이다. 결국 누군가에 잘 보여도 딱히 돌아오는 것이 없다. 공정하고 공평한 것이 핵심이다.”


-대표팀 내부 경쟁도 대단하지 않나.

“얼마 전 8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나설 궁사들이 선발됐다. 이를 위해 지난해 9월부터 국가대표 재야선발전을 진행했다. 리우올림픽 출전 6명 중 4명이 탈락했다. 지금? 내년 국가대표에 앞서 커트라인을 통과하기 위한 경쟁이 이미 시작됐다. 2진에 머물다가도 언제든 치고 오를 수 있는 구조다. 기존 선수들은 늘 긴장해야 하고, 외부의 선수들은 항상 희망을 품을 수 있다. 잔인하기는 해도 상당히 공정한 시스템이다.”

그렇다고 양궁계가 대표팀에만 관심을 쏟는 것은 아니다. 협회는 지도자 교육과 시스템 정비는 물론이고 상비군도 상시 운영하며 풀뿌리 양궁을 위해 많은 애를 쓴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정성을 쏟는 분야는 유소년 육성이다. 한 예로 16개 시도의 약 250여명이 참여하는 소년체전에 협회는 활을 전부 지원하는데, 그 금액만 수억원에 달한다. 그러한 면에서 양궁에 대한 정 회장의 무한애정과 사랑을 빼놓을 수 없다.


-협회장의 관심이 대단하다.

“꾸준한 국제대회 출전과 올림픽을 앞두고 현지 환경과 최대한 비슷한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지원도 우리 양궁만의 대단한 자랑거리이지만 진심을 담은 스킨십과 소통을 모두가 감사해하고 있다.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개인 휴대폰 번호를 선수들과 공유하고 스스럼없이 메시지를 주고받는 종목이 어디 있나 싶다. 틈날 때마다 동네 삼촌 복장으로 양궁인들과 어울려 소주잔을 기울이고, 담배를 함께 피우면서 아주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리우올림픽이 끝난 뒤 선수들이 회장을 헹가래친 것도 진심 어린 행동이다. 마음을 주고받는 것처럼 훌륭한 무기가 또 있을까.”

문형철 예천군청 감독. 예천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문형철 예천군청 감독. 예천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사실 걱정도 있다. 한 때 국내체육계의 핵심 화두로 떠오른 생활·엘리트체육 통합으로 인한 여파다. 체육 활성화와 국민체력증진의 목적이 나쁘다고 볼 수 없으나 엘리트 체육이 오히려 소외되고 있다는 우려도 상당하다. 비단 양궁만의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특정 엘리트 선수들에게 들이는 돈을 생활체육인 100명에게 쓰는 것이 낫다고 보는 정치권 등 일각의 시선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결국 절름발이 시스템으로 향할 수 있다.


-엘리트 체육 인구가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서 국민 자긍심을 고취하는 사람들도 인정했으면 한다. 어느 한쪽을 배제하라는 것이 아니다. 엘리트를 생활체육과 함께 성장시키자는 의미다. 이미 좋은 선수들이 탄생할 수 없는 구조로 향하고 있다. 학교 체육수업이 줄어든 여파도 크다. 지난해 전국체육대회에서 몇몇 지자체가 단체전을 구성하지 못했다. 선수 3명을 확보하지 못한 탓이다. 이대로라면 상위학교 진학 대신 해외 클럽으로 유학을 떠나 양궁을 해야 할 형편이다.”


-저변확대를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수도권에서 먼 지방으로 향할수록 심각하다. 어렵게 지도자를 데려왔는데 선수들이 없고, 선수는 있는데 정작 교사가 없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 정책과 현실이 동떨어진 경우가 꽤 많다. 일단 단기적인 노력으로는 다문화가정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현재 다문화가정 자녀들을 배제하고 지역 체육을 성장시킬 수 없다. 정말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기다.”


● 문형철 감독은?


▲생년월일=1958년 9월 19일

▲학력=전북 부안농고~경운대

▲지도자 경력=예천군청 코치·감독(1984년~현재)

▲대표팀 지도자 경력=대표팀 코치(1989년·2001년), 대표팀 감독(2005년·2007~2008년) 국가대표 총감독(2015~2016년)

▲수상내역=대한민국체육상(2009년), 체육훈장 청룡장(2011년)

예천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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