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인터뷰] ‘바바바’ 이성민 “당해봐야, 없어봐야 소중함 아는 인간”

입력 2018-04-27 1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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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을 나이 불혹(不惑), 하늘의 명을 깨닫는 나이 지천명(知天命). 흔히 우리는 중년층을 이렇게 일컫는다. ‘바람 바람 바람’ (감독 이병헌)에서 배우 이성민이 맡은 ‘석근’은 중년이다. 겉으로 보기엔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사는 모범택시운전사이지만 세상의 모든 유혹에 흔들리는 중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말이다.

사랑을 해도, 결혼을 해도 외로운 어른들의 이야기를 그린 ‘바람 바람 바람’에서 석근 역을 맡은 이성민은 능청스러운 아재미(美)를 선보인다. 또한 롤러코스터와도 같은 시간을 보내면서 감정 연기를 세심하게 조절하며 연기해 눈길을 끌었다.

Q. 영화를 보면서 마음속에 드는 생각은 ‘정말 저런가?’였다.

A. 다 바람피우진 않겠지. 하하. 개인적으로 나는 “난 와이프랑 아직도 키스해”라는 대사가 그랬다. 결혼을 안 한 신하균은 더 이해를 못했고. 이 영화가 결혼 유무에 따라 받아들이는 것이 다르고 차이가 있더라. 결혼하신 분들은 그들만이 아는 세상이 있으니 영화를 이해하는 폭이 다른 건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Q. ‘바람 바람 바람’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A. 처음에 시나리오를 봤을 때 ‘아~ 이거 골 때리네’라고 생각이 들었다. 이후에 이병헌 감독을 만났고 ‘스물’도 찾아봤다. 재밌더라. 이병헌 감독 특유의 엉뚱함에서 나오는 단어들이 짜릿했고 그런 지점이 이병헌 감독을 신뢰하게 만들었다. 이병헌 감독이 연기를 해도 잘 할 것 같았다.


Q. ‘바람’이라는 소재에 신경 쓰이진 않았나.

A. 우리 영화가 소재가 그렇다곤 해도 자극적인 장면은 없지 않나. 그런 장면이 없는 것은 좋은 선택인 것 같다. 아마 적나라하고 노출도 있었다면 진짜 막장이 되는 거지. 아마 사실적으로 갔다면 영화가 불쾌했겠지만 우리 영화는 웃으라고 만든 영화가 아닌가. 우리 영화는 엉뚱하고 기발한 것 같다.

Q. 이병헌 감독은 이성민이 잘생겨서 캐스팅했다고 하던데.

A. 하하. 내 외모나 성향 때문은 아니고 석근이 관객들에게 신뢰를 회복해야 하는 지점 때문에 나를 캐스팅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아내(장영남 분)가 교통사고가 나는 장면 이후가 아닐까. 그 장면에서 좀 울컥했다.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되더라.

Q. 석근은 아내가 죽은 후로 달라졌다. 오히려 그 전보다 모범적인 모습을 다소 보인다.

A. 사람이 어리석다는 게 그거다. 그 사람이 없어봐야 그 빈자리를 아는 거다. 그래서 “있을 때 잘하라”는 말도 있지 않나. 나도 집사람이 아이와 멀리 여행을 갈 때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첫 날에는 정말 신이 난다. 그러다가 다음 날이 되면 보고 싶다. 마음이 허하고 빈자리가 느껴진다. 잠깐의 부재도 그러한데 석근의 경우는 아내가 세상을 떠났고 살아생전에 못할 짓을 했으니 죄책감을 많이 시달렸겠지. 당해봐야 안다.

Q. 제주도에서 촬영을 했다.

A. 한 달 정도 있었다. 공기가 좋고 조용해서 좋더라. 그런데 아무래도 바람도 많이 불고 비도 와서 촬영이 조금 힘들긴 했다. 3월~4월이면 제주도가 따뜻할 것 같았는데 그렇진 않았다. 그래도 배우들과 스태프들과 섬에서 오순도순 잘 지냈다.

Q. ‘보안관’을 촬영할 때는 부산에서 촬영을 했다.

A. 부산은 워낙 편한 곳이다. 언제든 부산 가라고 하면 갈 수 있다. ‘보안관’때 경남 관객 분들이 얼마나 극진하게 반응해주시던지. 아무래도 부산을 배경으로 한 촬영이다 보니 더 그랬던 것 같다. 부산은 너무 익숙한 곳이다. 그 곳에 가면 해운대 기점으로 기장에서 울산 간절곶까지 간다. 요즘에 그 라인이 많이 좋아졌다고 하더라. 예전에는 해변만 있었는데 지금은 카페도 생기고 사람이 북적하다고 하더라. 참, 임시완은 부산에 가면 도착하자마자 돼지국밥부터 먹는다.


Q. 첫 장면에 나오는 롤러코스터 장면은 대구에서 촬영을 했다고?

A. 사람들이 ‘롤러코스터’ 질문을 참 많이 하더라. 아무런 표정 없이 탄 게 신기했나보다. 대구 ‘우방랜드’에서 가장 작은 롤러코스터를 탔다. 사실 급락할 때 미묘한 표정 변화가 있는데 눈치를 못 챘나보다.

Q. 송지효와 남매 연기가 정말 현실적이었다.

A. 영화 보면서 정말 만족스러운 남매연기를 펼쳤다고 생각한다. 미영(송지효 분)이 그림을 그려줄 때 속옷 들고 와서 “이거 어때?”라고 물었을 때 석근이 “껴져”라고 하지 않나. 그런 것들이 진짜 남매 말투 같아서 좋았다.

Q. 짧은 연기 호흡이지만 장인 안마사도 생각이 난다.

A. 아, 그 친구랑 ‘공작’도 같이 찍었다. 그 배우가 이병헌 감독의 ‘페르소나’라고 하더라고요. 전작에도 나왔고. ‘공작’에서는 카리스마 있게 나온다. 저는 아내의 다이어리를 살펴보는 석근의 모습이 기억 남는다. 다이어리에서 아내와 그 친구가 굉장히 다정하게 찍은 사진을 석근이 발견하지 않나. 그 장면을 리허설 할 때 그 사진을 도저히 못 보겠더라. 석근의 마음으로 연기하자니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Q. 이성민이라고 하면 여전히 ‘미생’이나 ‘골든타임’이 생각난다.

A. 반응이 뜨거웠다. 아직도 넥타이만 매고 나가면 “부장님”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한 꼬마는 메모지에 ‘미생 잘 봤어요’라고 글을 써서 주기도 했다. 건강검진을 받으러 병원에 가면 의사들이 “보시면 잘 아시겠지만”이라고 하더라.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고개가 갸우뚱거려지기도 한다. ‘날 배우로 알고 있는 거겠지?’라는 생각도 든다. 그 만큼 제 연기에 흡족했다는 말이기도 할 테니 감사하다.

Q. 팬들도 꽤 있을 것 같다.

A. 팬 관리를 잘 못한다. 하하. ‘골든타임’ 끝나고 연극 ‘거기’를 했었는데 그 때 ‘퇴근길’이라는 걸 처음 경험했다. 너무 깜짝 놀라 다른 길로 퇴근을 했었다. 그런데 팬들을 또 무시하고 갈 수는 없어서 “인사는 하고 싶은데 선물 같은 건 안 갖고 왔으면 좋겠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지금도 영화 시사 때마다 오는 친구들이 있다. 팬들 중에 ‘골든타임’보고 진짜 의대를 가거나 간호사가 된 친구들도 있다.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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