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리의 칸&피플] 유태오 “칸의 주목, 문화대사 된 기분…서울 가면 다시 무명이죠”

입력 2018-05-15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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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유태오는 제71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러시아 영화 ‘레토’를 통해 세계 영화 관계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객관적으로 명예를 얻었고, 주관적으로 경험을 얻었다”고 했다. 사진제공|씨제스엔터테인먼트

■ 칸 경쟁부문 진출 러시아 영화 ‘레토’ 주연 유태오

2000 대 1 뚫고 러 록의 상징 ‘빅토르 최’ 연기 책임감
러시아어 대사 암기 위해 3주간 호텔에 갇혀 살았죠
15년 무명 끝 ‘레드카펫’…늘 조언해주는 아내 덕분


배우 유태오는 1981년 독일에서 태어났다. 파독 광부와 파독 간호사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스무 살 무렵 부모 곁을 떠났다. 미국 뉴욕으로 건너간 이유는 순전히 연기를 배우고 싶어서였다. 뉴욕에서 연기를 전공한 그는 다시 영국 런던으로 향해 셰익스피어 고전을 익혔고, 이후 독일에선 연극 무대도 경험했다. 세상과 연기를 향한 호기심으로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며 쌓은 정체성이 지금의 유태오를 만들었다.

유태오가 주연 영화 ‘레토’로 제71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과정은 결코 ‘행운’이 아니다. 독일에서 나고 자랐지만 한국인의 정체성, 여러 나라와 문화를 익히면서 쌓은 다양성이 뒤섞여 자신만의 독창적인 개성과 실력을 갖췄기에 맞이할 수 있는 기회였다. 물론 멈추지 않는 도전도 있다.

13일(한국시간) 프랑스 칸에서 만난 유태오는 여러 나라를 누비면서 경계 없이 활동해온 자신의 이력을 두고 “낭만적인 관점에서 말한다면 감수성과 이해심이 풍부해졌다”고 했다. 그가 내놓는 답변들에선 누구보다 배우라는 직업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살아온 듯한 진심이 뚝뚝 묻어났다. 비유와 묘사, 예시를 적절히 섞어가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땐 단단한 신념도 느껴졌다.

영화 ‘레토’. 사진제공|하이프필름


● “무거운 책임감으로 연기한 빅토르 최”

유태오는 국내선 인지도 낮은 배우다. 러시아 영화 ‘레토’가 칸 국제영화제에 초청되면서 유태오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영화제 초반 상영된 ‘레토’는 호평을 받았고, 유태오를 향한 외신들의 인터뷰 요청도 줄을 잇고 있다. 스스로를 “문화대사라고 생각한다”는 그는 “칸을 통해 객관적으로 명예를 얻었고, 주관적으론 경험을 얻었다”고 웃어보였다.

유태오가 칸에서 더 주목받는 이유는 러시아 대중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록의 아이콘’ 빅토르 최를 드라마틱하게 연기한 덕분이다. 고려인 출신으로 28살에 요절한 빅토르 최는 러시아에선 절대적 위치의 음악인이자 젊음의 상징이다. ‘레토’는 1980년대 소련의 체제에 음악으로 맞선 이들의 우정과 꿈, 사랑이 얽힌 청춘의 서사다.

‘레토’ 출연은 2000 대 1의 경쟁률을 이겨낸 결과다. 유태오는 자신의 여러 모습을 촬영한 영상을 제작진에 보내 오디션을 요청했고, 여러 테스트 끝에 주연을 따냈다. 그간 참여한 할리우드 영화 ‘이퀄스’, 태국 등 다른 나라에서 찍은 영화도 비슷한 방식으로 기회를 얻었다.

이번에는 익숙한 영어 대신 모든 대사를 러시아어로 소화해야 했다. 러시아를 상징하는 실존인물이란 사실 역시 그에겐 무거운 책임감으로 다가왔다. “마치 외국사람이 우리나라에 와서 판소리를 하고 김치찌개 가게를 열겠다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고 그는 빗댔다.

“연기자는 작품에서 단순노동자다. 아티스트인 감독이 내고 싶은 소리가 잘 전달되도록 하는 악기일 뿐이다. 시나리오를 찢어 호텔방 벽에 전부 붙이고 대사를 문장으로 쪼개고, 다시 단어로 쪼개면서 단순무식하게 3주간 외웠다. 감옥에 갇힌 기분으로 말이다.”

게다가 음악영화인 탓에 그는 빅토르 최의 노래 9곡을 직접 부르기도 했다.

“모든 러시아인이 가진 빅토르 최에 대한 주관적인 이미지가 있지 않겠나. 그걸 만족시켜야 한다는 책임감이 컸다. 칸으로 오는 길은 설렜지만, 다음 달 러시아에서 개봉할 생각을 하면 걱정이 크다.”

배우 유태오. 사진제공|씨제스엔터테인먼트


● “아내의 ‘매운’ 지적에 정신 바짝 차린다”

여러 나라에서 크고 작은 영화 작업을 하던 유태오는 2009년 ‘여배우들’에 출연하면서 한국영화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이후 부모의 나라에서 배우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커졌고, 10년간 연기할 기회를 찾는 시간을 보냈다. 영화 ‘국제시장’의 실제 모델이라고 해도 될 법한 그의 가족은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쏟았다고 했다.

“부모님이 옛날 어른들이라 여러 말보다는 묵묵히 지켜봐주신다. 15년째 무명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칸에 온 지금 상황이 얼마나 신기하겠나. 진정한 성취감은 거짓으로 오지 않는구나 싶다.”

유태오는 독일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뉴욕을 거쳐 서울에서 사는 지금까지 다양한 문화를 익히면서 정체성을 확립했다. 또 이는 그대로 연기자로 성장하게 해준 자양분이 됐다.

“현실적으로 보면 나는 남들보다 여러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동남아시아에선 한류를 좋아하지만 높은 개런티의 유명 배우 대신 영어도 할 줄 아는 나를 찾는다. 그러한 회색의 경계선에 내가 들어가 있는 거다.”

그러면서 “낭만적인 측면에선 다른 강점이 있다”고 했다. “미국 친구들한테 ‘삼계탕이 좀 싱겁다’고 말하면 그 의미를 모른다. ‘싱겁다’는 우리말은 맛이나 색깔, 사람한테도 적용할 수 있지 않나. 여러 문화를 접하면서 나는 그걸 이해하게 됐다.”

사진작가이자 영화감독인 그의 연상 아내는 이번 칸 국제영화제에도 함께 왔다. 둘은 유태오가 20대 때 뉴욕에서 만났고, 결혼생활 11년째를 맞고 있다. “20대 때 핫한 배우가 됐다면 나는 오만해졌을 거다.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누구든 옆에서 맵게 혼내는 사람이 필요하다. 나에겐 아내가 그런 존재다.”

9일 칸 국제영화제 공식 상영을 앞두고 프로듀서와 동료배우 등 영화 ‘레토’ 관계자들과 함께 레드카펫을 밟은 유태오(맨 왼쪽).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칸에서 받는 스포트라이트가 향후 한국 활동에서 동력이 될 수 있을까. 그는 단번에 “기대 같은 건 없다”고 잘랐다.

“다시 서울로 돌아가면 평소처럼 스피치 선생님께 연락해 수업 언제 하느냐고 묻는, 똑같은 생활이 시작될 거다. 작품 ‘콜’이 없다면 또 오디션을 보러 다닐 거다. 이런 관심이 빨리 없어진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빅토르 최가 꿈꾼 자유와 표현의 욕망은 지금 유태오에게도 존재한다.

“어느 시대든, 문화든, 압력밥솥에 가둔 것처럼 창작을 억압하는 일이 있었다. 어떤 나라나 똑같다. 하지만 그렇게 억누른다고 창작의 열정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마치 밥솥에서 증기가 새어 나오듯, 어떻게든 흘러나온다. 나는 그걸 믿는다.”

칸(프랑스)|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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