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영화 ‘버닝’이 17일(한국시간) 공식 상영 후 찬사가 이어지면서 수상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버닝’의 감독과 제작자, 배우들이 공식 상영에 앞서 레드카펫에 선 모습이다. 왼쪽부터 이준동 파인하우스필름 대표, 배우 스티븐 연, 전종서, 유아인, 이창동 감독. 사진제공|CGV아트하우스
프레모 위원장 “원더풀 앤드 스트롱”
8년 만에 돌아온 거장의 작품에 환호
감정 감춘 유아인 연기도 깊은 인상
역시 스티븐 연…전종서의 발견까지
이창동 감독이 그려낸 청춘의 얼굴, 그 특별하면서도 매혹적인 세계가 칸을 사로잡았다. 2시간28분간의 공식상영이 끝난 뒤 뤼미에르 대극장을 빼곡히 채운 관객들은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했고, 8년 만에 칸으로 돌아온 거장과 그가 택한 세 명의 배우를 향해 오랜 시간 박수를 선사했다. 이창동 감독의 새로운 세계를 알리는 현장은 그 자체로 뭉클했다.
제71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오른 ‘버닝’이 17일 오전1시30분(한국시간) 2300석 극장을 가득 채운 관객의 기대 속에 베일을 벗었다. 때마침 내리는 폭우에도 경쟁부문 심사위원인 중국 배우 장첸, 아프리카 브룬디 가수 카쟈 닌 등 주요 인사들도 자리를 채웠다.

영화 ‘버닝’의 유아인-전종서-스티븐 연(왼쪽부터). 사진제공|CGV아트하우스
● 수수께끼 같은 은유와 사유의 총합
이창동 감독은 ‘버닝’을 통해 새로운 세계로의 진입을 알린다. 그가 바라보는 이 시대의 청춘, 더 나아가 인간과 세상을 향한 자신의 세계를 단단히 구축한다. 어느 것 하나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고, 어느 것도 분명하지 않은 영화이지만 바로 이런 수수께끼 같은 ‘은유와 사유의 총합’이 관객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팽팽한 공기가 상영 내내 뤼미에르 대극장을 채웠다.
‘버닝’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는 세 명의 청춘이 주인공이다. 겉으론 달라 보이는 이들은 사실 ‘한국사회’라는 울타리에 묶인, 서로 다른 층위의 청춘이다. 소설가 지망생 종수(유아인), “죽는 건 무섭고 그냥 없던 것처럼 사라지고 싶다”는 친구 해미(전종서), 그리고 “재미있는 일은 뭐든 한다”고 말하는 미스터리한 남자 벤(스티븐 연)까지. 전부 모호하고 비현실적인 인물들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이창동 감독은 이런 미스터리를 현실로 느끼게끔 하면서 진짜 힘을 발휘한다. 유아인이 앞서 “‘버닝’은 현실보다 더 현실 같았다”고 했던 말은 바로 이런 의미이지 않았을까.

이창동 감독. 스포츠동아DB
이야기나 배우 선택은 물론 촬영과 음악에서도 이창동 감독은 앞서 걸어온 길을 지나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연다. 홍경표 촬영감독, 모그 음악감독과 어우러진 최상의 시너지 속에 한국적인 색채까지 창조했다.
영화가 먼저 공개된 국내 시사회에선 반응이 엇갈렸지만 칸 현지에서는 찬사가 쏟아졌다.
칸 국제영화제 티에리 프레모 집행위원장은 “그레이트! 원더풀 앤드 스트롱!”이란 외침과 함께 “관객의 지적 능력까지 기대케 하는 시적이고 미스터리한 영화”라고 평했다. 토론토 국제영화제 지오바나 풀비 프로그래머는 “장면 하나하나가 완벽한, 숨이 막힐 정도의 연출”이라고 호평했다.
국내 평단의 반응은 더 극적이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이창동만이 형상화 가능했을, 보편적이면서도 동시에 너무나도 특별한 세 청춘에 관한 독창적 초상화이다. 죽음과는 그 함의가 다를 ‘사라짐’의 의미를 곱씹게 한다”며 “이창동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나 한국영화 계보에서나 이창동이 아니면 빚어낼 수 없을, 흉내 불가의 괴작”이라고 평했다. 윤성은 평론가는 “그간의 이창동 감독 영화 같으면서도 다른, 오랜 시간 발전해온 힘이 느껴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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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버닝’에서의 유아인. 사진제공|CGV아트하우스
● 최적의 배우 선택, 기대 그 이상의 전율
‘버닝’을 통해 이창동 감독은 배우와 인물을 바라보는 ‘눈’을 다시금 증명한다. 극의 화자인 유아인은 쉬이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인물, 종수를 통해 지금껏 배우로서 구축한 저력을 과시한다. 해외 평단에서는 아직 주목도가 낮은 그이지만 ‘버닝’ 공식상영 뒤 가장 큰 관심을 얻은 주인공도 다름 아닌 유아인이다. 상영 직후 프랑스의 한 영화감독은 “감정을 감춘 유아인의 연기가 가장 인상 깊었다”고 평가했다.
스티븐 연 역시 최적인 동시에 최고의 캐스팅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완벽히 해낸다. 그의 참여가 ‘버닝’ 탄생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려울 정도다. 신예 전종서도 ‘발견’ 그 이상의 에너지를 내뿜는다. 연기 경험이 없는 신인 연기자가 온몸으로 이처럼 다채로운 표정과 분위기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움을 안기기에 충분하다. 웃옷을 전부 벗은 채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춤을 추는 전종서의 모습은 ‘버닝’의 상징이자, 한국영화에서 오래 두고 기억될 명장면이다. 그렇게 이들 세 배우는 칸에 깊은 ‘인장’을 새겼다.
칸(프랑스)|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