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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영 ‘라이프’가 남긴 것들, #병원문제 조명 #뜬금포 엔딩
JTBC 월화드라마 ‘라이프’(극본 이수연, 연출 홍종찬 임현욱)가 11일 16회 방송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의료진은 가까스로 영리화를 막아냈지만 해고된 총괄사장 구승효(조승우 분)의 후임으로 화정그룹 회장 조남형(정문성 분)의 동생이자 의사인 조남정(이준혁 분)이 부임하며 자본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강력한 항원 구승효와 여전히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마다의 결론으로 움직이는 예진우(이동욱 분), 이노을(원진아 분), 주경문(유재명 분) 등 의료진의 모습이 깊은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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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의학드라마의 새로운 장을 열었던 ‘라이프’는 마지막까지 씁쓸한 현실을 비추었다는 평가다. 또 그 과정에는 아쉬움도 분명 존재한다. 그렇다면 ‘라이프’가 남긴 것들은 무엇을까.
생과 사의 경계에 놓인 사람이 아닌 병원을 조명한 ‘라이프’는 의학드라마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일상과 맞닿아 있지만 전문지식이 없으면 잘 알 수 없는 폐쇄적 공간인 병원에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댄 ‘라이프’는 의료계가 직면한 현실과 잠재된 문제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투약 사고, 무자격자의 대리수술 등 현실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병원의 문제점과 자본에 잠식당하는 병원의 현실, 영리화가 초래할 문제점까지 깊이 있게 들여다봤다. 가장 현실적인 문제를 전개로 풀어내며 결이 다른 드라마라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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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욱, 조승우를 중심으로 원진아, 이규형, 유재명, 문소리, 태인호, 염혜란, 문성근, 천호진 등 연기 고수들의 열연이 빚어낸 시너지는 공기부터 다른 빈틈없는 흡인력을 발휘했다.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인 잣대로 규정할 수 없는 입체적인 인물이 신념과 이익, 현실적인 선택에 따라 대립하고 규합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긴장감은 배우들의 사실적인 연기로 설득력을 더했다. 이런 조합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배우들의 존재감은 강렬했다.
● 병원을 둘러싼 신념과 가치가 전한 묵직한 화두, 꼭 필요했던 드라마 ‘라이프’
상국대학병원이 현실 사회의 축소판이었던 이유는 절대 선도 절대 악도 없었기 때문이다. 각자의 신념에 따라 움직이며 갈등하고 이를 통해 병원을 위기에 내몰기도, 지키기도 하며 무엇을 위해, 어디로 나아가야 할 것인지 끊임없이 화두를 던졌다. 가까스로 위기를 극복했지만 여전히 화정그룹의 힘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국대학병원과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뒤 각기 다른 선택을 하는 의료진의 모습은 어떤 가치를 선택의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지를 물었다. ‘라이프’가 던진 질문은 상국대학병원과 다르지 않은 현실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유효했다. ‘라이프’가 드라마 이상의 여운과 울림을 남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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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묘한 관계 속 러브라인, 20분이 만든 이상한 엔딩
분명 아쉬움도 존재한다. 시작은 창대했지만, 끝은 미약했던 결말은 ‘라이프’가 보여주고자 했던 메시지에서 벗어난다. 병원 안팎의 현실을 보다 현실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던 맥락에서 갑자기 인물들의 마이웨이, ‘소확행’(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하게 실현 가능한 행복)만 담기고 말았다. 15회 아니 16회 분량 동안 그리고자 했던 이야기가 마지막 20분에서 파괴되는 순간이다. 그렇기에 결말을 두고 시청자들의 평가는 분분하다. ‘무엇을 이야기하냐’고 반문하는 이들이 많다. 여기에 극 과정에서 그려진 남녀 간의 미묘한 러브라인을 꼭 완성하고자 했던 제작진의 판단 실수가 결국 ‘기승전멜로’라는 ‘참사’(?)로 남았다. 분명한 메시지가 있었을 거라 여긴 병원 드라마의 구조가 문제의 병원 떠난 남녀의 러브 엔딩이라니 아이러니하다.
그런데도 ‘라이프’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새롭게 진행되고 있다. 아쉬움은 있었고, 다루고자 했던 이야기도 있었다. 그 평가는 시청자의 몫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영상으로 보여주는 극적 사실감이 조금 더 극대화 되고 현실에 머물러 여운을 남겼다면 좋지 않았을까. 많은 이가 ‘라이프’를 기대했던 만큼 실망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동아닷컴 홍세영 기자 projecthong@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