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수의 라스트 씬] IMF 그때 그 시절, 우리와 함께 울어줬던 감동들

입력 2018-12-14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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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편지’(위쪽)와 ‘풀 몬티’는 1997년 11월 IMF 외환위기로 힘들어하던 이들의 마음을 서로 다른 색깔로 달랬다. ‘편지’는 슬픈 이야기로 관객의 눈물을 자극했고, ‘풀 몬티’는 ‘웃픈’(웃기지만 슬픈) 감성으로 다가갔다. 사진제공|아트시네마

■ 영화 ‘편지’ & ‘풀 몬티’

나라가 파탄난 날 다음 날 개봉한 ‘편지’
컴컴한 극장…울고 싶은데 뺨 때려줘
발가벗은 실업자들 ‘풀 몬티’에 눈물도


20년 전 한여름의 늦은 밤, 무리들은 서울 정동공원의 너른 정자를 터 삼았다. 거의 매일 긴장감과 비장함의 언사들이 쉼 없이 오가는 긴 회의를 마치고 이른 저녁식사를 빙자해 폭탄주를 몇 순배씩 돌리던 나날이었다. 참치 김치찌개와 열무비빔밥, 구운 노가리의 맛이 일품이던 식당 겸 술집이 문을 닫을 때쯤이면 자리를 마감한 뒤 맥주와 소주, 약간의 안줏거리를 사들고 서로 낄낄거리며 정자로 향했다. 그리고는 다음 날 새벽까지 술을 마셔댔다.

누군가는 술과 피곤함에 절어 아예 정자 마루바닥에 몸을 뉘였다. 무리들 가운데 또 다른 누군가가 부르기 시작해 고래고래 함성 같은 합창으로 이어지는 노래 소리에 이내 잠에서 깨어나곤 했다.

어느 날엔가는 술을 마시다 또 누군가의 충동적, 돌발적 제안에 택시를 잡아탔다. 강원도 속초로 내달렸다. “바다 보러 가자”는 데 의기투합했다.

아관파천의 아픔을 간직한 옛 러시아 공사관의 르네상스식 건물이 매일 밤 이들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그 주변을 순찰하던 전경들의 얼굴도 조금씩 낯익어갔다.


● 호기로운 실업(失業)

회사가 내쫓지 않았지만 이들은 이미 3∼4개월째 일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상의 실업자들이었다.

이들이 다니던 회사는 돌아온 어음을 막지 못하고 화사한 봄꽃 완연한 계절에 부도를 냈다. 꽤 영향력 있던 잡지사는 시사주간지 하나만을 남겨두고 다른 잡지를 모두 무기한 휴간한다고 발표했다. 회사가 부도에 앞서 시사주간지의 발행권한을 일찌감치 계열사로 넘겼다는 것을 이들은 뒤늦게 알았다.

무리들은 회사의 ‘위장부도’를 의심했다. 회사에 맞서 싸우기로 했다. 싸움을 위한 회의는 매일 이어졌다. 회사의 허점을 겨냥한 전략과 전술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러는 사이 회사는 얼마간 밀렸던 임금과 퇴직금의 일부를 조금씩 내주었다. 매일 밤 술값은 거기서 십시일반 하거나 먼저 재취업한 이들이 내놓은 것으로 충당했다.

술자리에선 늘 웃음이 넘쳐났다. 무리들은 호기롭게 모여 술잔을 나누고 또 호기롭게 내일의 싸움을 준비했다. 농담에 낄낄거리고, 유머에 박장대소했다.

최고 20여 년부터 내려 이어지는 다양한 연차의 선배들 사이에서 이제 갓 3년차였던 막내는 때로 후배의 예도 무시한 채 아슬아슬한 농담을 내던지곤 했다. 선배들은 그마저도 호쾌한 웃음으로 받아쳤다. 심지어 분노를 이기지 못한 채 사옥 정문에 내려진 셔터의 창살을 부여잡고 회사를 향해 갖은 욕설을 해대는 후배를 팔짱 낀 채 바라보면서 낄낄거렸다.

영화 ‘풀 몬티’.


● 기어이 흐른 눈물

마셔도, 마셔도 쉽게 취하지 않았다. 취할 수 없었다. 숙취를 안고 그 다음 날, 또 그 다음 날 퍼붓는 술은 세월을 정신 말짱한 채로 견디게 해주었다.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더 중요한 건 무리들 중 그 누구도 단 한 번 울지 않았다는 거다.

“The end!(디 엔드) 끝났어! 다 끝났어!”

부도가 나던 날, 영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편집디자이너로 일한 선배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이들에게 던진 한마디에도 낄낄거렸던 무리들이었다.

하지만 눈물은 엉뚱한 곳에서 터져 나왔다. 영국 남부 요크셔 산업타운의 제철소가 문을 닫으면서 거리로 내몰린 가즈와 그 친구들은 기어이 옷을 벗어 던졌다. 직장과 일을 잃고 하릴없이 거리를 배회하며 실업급여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갈 수밖에 없는 이들은 직업알선센터를 드나들지만 새로운 일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단지 몇 푼의 돈을 벌기 위해 경찰 단속의 위험 앞에서 인생 단 한 번의 스트립쇼를 벌이기로 했다.

가즈와 친구들은 자신들을 내버린 세상의 불합리한 구조를 비웃듯 옷을 벗어 던졌다. 이들이 내던진 옷가지의 거추장스러움이 통쾌했다. 그러면서도 눈물이 흐르고 말았다. 컴컴한 극장 안에서 옆 사람이 눈치 챌까 훌쩍일 수 없었지만, 눈물은 주체할 수 없었다.

어쩌면 눈물은 이미 그 전해 늦가을부터 예비된 것이었는지 모른다. 세상 더없이 순정한 사랑을 나눈 두 남녀의 이야기부터였다. 먼저 떠나간 남자가 보낸 뒤늦은 편지를 받아들어 영원한 사랑을 확인하며 여자는 끝없이 눈물을 흘렸다. 생전 녹화를 해둔 영상 속에서 남자 역시 눈물을 거두지 못했다.

다만 그때의 눈물은 이미 살아갈 이유를 어디에서도 찾지 못하는 여자를 다시 새로운 세상으로 향하게 해주었다. 공유하는 눈물만이 이들을 지탱해주었다. 그리고 눈물은 여자를 조금씩 일으켜 세워주었다.

영화 ‘편지’. 사진제공|아트시네마


● 웃음은 왜 짠가!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는 나라 경제가 파탄 났음이 알려진 다음 날 세상에 나왔다. 월급이 기한 없이 밀리고, 직장에서 쫓겨나고, 갚을 길 없이 빚더미에 올라야 했던 많은 이들은 이들의 이야기에 울고 또 울었다.

어떤 이들은 ‘신파’라고 비웃기도 했지만 눈물을 흘리는 수많은 이들의 귀에 그건 그저 현학적 수사일 뿐이었다. 설령 신파라면 또 어떤가. 울고 싶은데,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데, 마침 컴컴한 극장 안이었으니 그 얼마나 다행인가. 남자가 보낸 편지로써 살아갈 이유를 다시 찾아가는 여자처럼, 사람들은 그러고서 힘겹지만 또다시 세상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아갈 줄 알았다.

어느 시인은 설렁탕 한 그릇에 담긴 어머니의 사랑과 이를 바라보는 자식으로서 죄스러움과 설움을 떠올리며 ‘눈물은 왜 짠가’(함민복)라고 자문했다. 시인은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대며 땀을 흘렸다. 그리고는 이를 뒤섞어 애써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다.

눈물은 그렇게 설움 속에서도 흐른다. 하지만 한 방울의 눈물보다 다시 한번 어깨 크게 펴고 호탕하게 웃는 웃음이 더욱 절실할 때도 있다. 직장을 잃고 삭풍처럼 몰아칠 앞날에 대한 불안감 대신 차라리 크게 웃는 것으로 아픔을 이겨내며 세상과 맞서려 했던 선배들의 모습도 매한가지였을 것이다.

그래서 눈물은 쉽게 흘려서는 안 되는 것이리라. 자신을 찾아갈 것을 다짐하며 훔쳐내는 눈물이야말로 세상 가장 뜨거운 액체일 수 있겠지만, 또 다시 세상 속으로 나아가려는 이들에게 웃음은 눈물보다 더 짠 것이 되고 말 것이다.


■ 영화 ‘편지’·‘풀 몬티’

두 영화는 1997년 11월21일 정부가 IMF(국제통화기금)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는 사실을 발표한 이후 개봉했다. ‘편지’는 그 다음 날, ‘풀 몬티’는 이듬해 4월 선보였다. 최진실·박신양이 주연하고 이정국 감독이 연출한 ‘편지’는 두 남녀의 순애보와 불치병의 아픔 등 설정과 진하게 관객의 감성을 건드리는 이야기로 경제 위기에 시달리던 이들의 눈물샘을 크게 자극했다. ‘풀 몬티’는 가즈 등 영국 제철노동자들이 직장을 잃은 뒤 스트립쇼에 나서기까지 과정을 코믹하게 그린 작품. 구제금융의 대가였던 구조조정의 이름 아래 수많은 이들이 직장을 잃고 실업자가 되어 가는 현실에서 관객의 공감을 얻었다. 가즈 역의 로버트 칼라일이 주연하고 피터 카타네오 감독이 연출한 1997년 작품이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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