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잘하는 운동이 없다” 김보름, 노력파의 질주가 더 무섭다

입력 2019-01-02 0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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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름은 2018평창올림픽에서 겪은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고 있다. 지난해 11월 국제빙상경기연맹 월드컵 2차대회 매스스타트 금메달로 여전한 기량을 뽐냈다. 새해를 맞아 스포츠동아와 만난 김보름이 수줍은 미소를 짓고 있다. 강산 기자 posterboy@donga.com

김보름은 2018평창올림픽에서 겪은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고 있다. 지난해 11월 국제빙상경기연맹 월드컵 2차대회 매스스타트 금메달로 여전한 기량을 뽐냈다. 새해를 맞아 스포츠동아와 만난 김보름이 수줍은 미소를 짓고 있다. 강산 기자 posterboy@donga.com

김보름(26·강원도청)은 한국 여자 스피드스케이팅의 간판스타다. 이상화(31)가 폭발적인 스피드를 자랑하는 스프린터라면, 김보름은 몸싸움을 곁들인 매스스타트와 팀추월, 1500m 이상의 중장거리에 특화된 스케이터다. 2018평창올림픽 매스스타트에선 숱한 악재를 이겨내고 은메달을 목에 걸며 기량을 입증했다. 당시 팀추월 예선 도중 벌어진 불미스러운 사건 탓에 사흘간 햄버거 한 조각만을 섭취하고 매스스타트에 나선 악조건도 극복했다.

평창올림픽이 끝난 뒤에도 아픔은 계속됐다. 전후사정을 모른 채 무조건적으로 비난을 퍼붓는 네티즌들에게 큰 상처를 받았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감사를 통해 결백이 입증되면서 그나마 숨을 쉴 수 있었다. 이후 심리치료를 통해 아픔을 이겨내고 2018~2019시즌 태극마크를 단 것을 넘어 지난해 11월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 월드컵시리즈 2차대회(일본 도마코마이) 매스스타트에선 금메달을 거머쥐며 기량을 입증했다. 새해를 맞아 스포츠동아와 만난 김보름의 표정은 밝았다. 과거의 트라우마는 떨쳐내고 도약을 준비하고 있었다. 극한의 상황을 딛고 다시 일어선 스토리가 궁금했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나.

“정신없이 준비했다. 1~4차 월드컵이 연달아 진행됐다.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시즌 중에는 운동과 휴식을 병행하는 일정이다.”


-인고의 시간을 버텼기에 이번 시즌에 임하는 의미가 남다를 듯한데.

“사실 선수들이 올림픽 직후 시즌에는 의욕과 동기부여가 떨어진다고들 한다. 나도 올림픽 때 메달을 땄으니 이번 시즌을 쉬어갈까 생각했지만, 마음을 고쳐먹었다. 급하게 선발전을 준비했는데 생각보다 월드컵에서 성적이 잘 나왔다. 편안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재기할 수 있을까’라는 시선도 있었다. 그 시련을 이겨낸 과정이 궁금하다.

“매스스타트 레이스를 하기 전부터 운동을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했다. 올림픽이 끝나고 몇 개월간 ‘이제 그만 해야겠다’고 단정하고, 부모님과 선생님께도 말씀드렸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삶이 의미가 사라지는 느낌이 들더라. 내가 오래 살진 않았지만, 인생의 절반 이상을 스케이트와 함께했다. 배운 것도 스케이트고, 내가 가진 능력 중에 제일 잘하는 것도 스케이트다. 그 스케이트를 안 타니까 삶의 의미와 목표가 사라지고 남는 게 없더라. 그래서 다시 해보자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한국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김보름. 스포츠동아DB

한국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김보름. 스포츠동아DB


-실전감각이 돌아오는 데는 얼마나 걸렸나.

“오랫동안 스케이트를 탔고 큰 경기 경험이 쌓인 덕분에 빨리 실전감각을 회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 기준에서 100%를 만들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

-점점 심해지는 견제를 뚫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과거에는 일본보다 네덜란드와 캐나다 등 다른 나라 선수들이 더 강했다. 네덜란드와 캐나다의 경우 대표선수 한 명씩이 나서는데, 일본은 상위 랭커 두 명이 함께 뛴다. 그 선수들을 이겨야 한다. 팀플레이와도 연결되는 부분이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도 힘들다고 느끼겠지만, 고비를 이겨내는 게 스포츠다. 더 연구해야 한다.”


-월드컵 2차대회 우승으로 어떤 상황에도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가치를 얻었다.

“운동선수가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은 기본이다. 나는 정말 열심히 했다. 올림픽도 누구보다 열심히 준비했다. 그렇게 준비한 게 몸에 배어있는 것 아닐까.”

-본인은 타고난 선수인가, 노력파인가.

“나는 사실 잘하는 운동이 없다. 다른 선수들에 비해 뛰어난 운동능력을 지닌 게 아니다. 달리기도 잘 못하고, 점프력도 좋지 않다. 기본적인 운동신경이 타고난 것은 아니다.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 같다.”


-월드컵 5~6차와 세계선수권이 남았다. 남은 시즌 목표는.

“월드컵시리즈에서는 파이널(6차대회)에 매스스타트가 열린다. 4차대회에선 넘어지는 바람에 랭킹이 한 단계 떨어졌다. 파이널에서 마무리 잘하고 세계선수권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고 싶다.”

한국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대표 김보름. 스포츠동아DB

한국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대표 김보름. 스포츠동아DB


-쇼트트랙 선수 출신이 매스스타트에서 지니는 강점은 무엇인가.

“쇼트트랙을 했던 선수들은 매스스타트 트랙에서 원심력을 이겨내는 데 장점이 있고, 오픈레이스에도 익숙하다. 스피드스케이팅 개인종목 선수들은 오픈레이스를 경험할 일이 많지 않다. 어린 시절부터 쇼트트랙을 했던 선수들이 상대적으로 적응이 빠르고 유리한 이유다.”


-개인종목에 대한 욕심은 없는가.

“주종목인 매스스타트 출전을 위해 기본적으로 1500m와 3000m 기록이 있어야 한다. 매스스타트는 상대 선수를 활용하는 능력도 필요하지만, 개인전은 체력적인 준비도 많이 해야 한다. 혼자 타는 경기는 컨디션을 맞추는 것부터 다르다. 일단 1500m와 3000m는 매스스타트를 타기 위한 종목으로 생각하고 있다.”


-팬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기쁠 때 자기 일처럼 기뻐해주시고,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는 나보다 더 속상해하시는 것 같다. 그래서 나도 항상 좋은 모습 보여드리고 싶고, 더 노력하게 된다. 응원해주시는 만큼 보답할 수 있도록 항상 최선을 다하겠다.”

● 김보름은?


▲ 생년월일=1993년 2월 26일(대구광역시 달성군 출생) ▲ 키=165㎝ ▲ 소속=강원도청 ▲ 수상 내역=2016 월드컵 2·4차대회 매스스타트 금메달, 2017 삿포로동계아시안게임 5000m 금메달, 2017 세계선수권 매스스타트 금메달, 2018평창동계올림픽 매스스타트 은메달, 2018~2019시즌 월드컵 2차대회 매스스타트 금메달

강산 기자 posterb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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