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기획] “가족에게 미안한 시간” 이승엽이 전하는 야구선수의 설

입력 2019-02-01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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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로, KBO홍보대사로, 기술위원으로…. 이승엽은 최근 3년간 매년 다른 입장에서 설 연휴를 맞이했다. 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가족과 함께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점이다. 일본프로야구시절, 우연히 설 연휴를 한국에서 보냈던 기억은 그래서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스포츠동아DB

민족대명절인 ‘설’이 눈앞에 다가왔다. 2월 5일은 기해년(己亥年) 음력 정월 초하루가 되는 날로 새 해의 진정한 출발을 알리는 날이다.

설날의 분위기는 추석과는 사뭇 다르다. 한 해의 시작을 가족들과 함께 나눈다는 의미에서 귀성 길에 오르는 이들은 유독 더 바쁘게 몸을 움직인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부모의 손을 잡고, 곱게 한복까지 차려 입은 아이들의 ‘설빔’은 명절 분위기를 더욱 더 따뜻하게 만든다. 해마다 다가오는 2월 이 맘 때 추위가 명절에만 유독 덜 느껴지는 이유다.

그러나 2월 이 시기의 따뜻함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민족대명절에도 어김없이 작은 공 하나를 가지고 씨름하는 이들이다. 바로 프로야구 선수들이다.

프로야구선수들에게 2월은 생존의 경쟁이 시작되는 계절이다. 시즌을 앞두고 진행되는 스프링캠프가 월 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1월부터 캠프 합류를 걱정해야 하고, 캠프 명단에 들은 후에는 다가오는 새 시즌을 위해 구슬땀을 흘려야 한다. 이들에게 ‘설’은 그저 달력 속에 빨간 색으로 표시된 날일뿐이다.

‘국민타자’ 이승엽(43·KBO 홍보대사)은 현역 시절 프로야구 선수들 중 그 누구보다도 치열한 설을 보냈다. 국내에서 뛸 때는 홈런왕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일본에서 활약할 때는 한국타자의 자존심을 위해 명절도 잊고 배트를 부여잡았다. 이제는 현역을 떠난 그에게 프로야구선수의 ‘잊혀진 명절’이란 어떤 것인지 물었다. 가장 먼저 돌아온 말은 “가족에 대한 미안함이 커지는 날”이란 것이었다.

이승엽. 스포츠동아DB


● 가족에게 전한 ‘23번의 미안함’

1995년에 데뷔한 이승엽은 은퇴시즌인 2017년까지 단 한 해도 빠짐없이 그라운드를 밟았다. 큰 부상도 없이 한국과 일본 무대를 누비며 최고의 자리에서 늘 제 몫을 해냈다.

23년. 그가 현역 유니폼을 입고 뛴 세월이다. 그런데 이 빛나는 세월은 결코 혼자만의 활약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다. 묵묵히 뒤에서 그를 지원하는 가족의 헌신이 큰 역할을 했다.

이승엽은 “가족의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라는 말을 은퇴식에서 가장 먼저 했다. 이 말은 지난 설의 이야기를 전하는 과정에서도 다시 한 번 반복됐다.

그는 “모든 프로선수들이 그렇겠지만, 야구선수는 특히 명절을 챙기기 어렵다. 나도 사실 설을 가족과 보낸 기억이 거의 없다. 23년을 뛰면서 매 번 미안한 마음만 전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늘 스프링캠프에 있었기 때문에 명절 인사는 주로 집사람이 아이들을 데리고 다녔다. 아이들을 홀로 챙기면서 명절 일까지 도와야 했으니 여러모로 고생이 많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승엽. 스포츠동아DB


● 국민타자에게도 예외 없는 티켓 전쟁

귀성 길 기차표를 구하기 위한 ‘클릭 전쟁’은 설과 추석이 다가오면 늘상 이야기되는 화제 거리다. ‘전 국민 수강신청’이라 할 만큼 치열한 다툼, 국민타자도 예외는 없었다.

이승엽은 “일본에서 선수생활을 할 때는 그나마 이전에 조금 하던 만큼도 설을 챙기지 못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대구(본가)에 내려가는 기차표를 일찍 구해다주는 것뿐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도 표를 구하는 게 정말 어려웠다. 빨리 예매를 해서 가족에게 전해주고 일본으로 급히 떠났던 기억들이 난다”고 말했다.

지금의 ‘클릭 전쟁’과는 인연이 없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그는 “2012년 삼성 라이온즈로 복귀한 뒤에는 줄곧 대구에 살았다. 다행히(?) 더는 귀성 길 표를 구할 일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 기억에 남는 단 한 번의 1월 ‘설’

매번 미안한 기억만 남긴 설이지만 이승엽에게도 딱 한 번의 명절 기억은 있다. 바로 일본프로야구에서 활약하던 시절, 우연히 마주하게 된 1월의 설날이었다.

이승엽은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뛸 때로 기억한다. 우연히 그 해에는 설날이 1월에 있었다. 캠프에 합류하기 전 시간도 있고 해서 가족들과 함께 대구에 내려가 본가에 인사를 했다”고 말했다.

이어 “다들 아시겠지만 일본, 그 중에서도 요미우리는 야구를 준비하는 자세, 태도에 굉장히 엄격한 구단이다. 외국인선수라 해서 개인행동은 허락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더욱 더 열심히 캠프에 정진해야 했다. 그래서 그 때 딱 한 번 보낸 가족과의 1월 설이 유독 기억에 더 강하게 남아 있다”고 전했다.

이승엽. 스포츠동아DB


● 은퇴 그 이후에 맞이한 설은?

2017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이승엽은 2018년부터는 스프링캠프로부터 자유의 몸이 됐다. 긴 세월 끝에 드디어 맞이하게 된 국내에서의 2월이었지만, 또다시 가족과 시간을 보내진 못했다.

이승엽은 “은퇴를 한 뒤 얼마 되지 않은 시기라 여러가지 일로 많이 바빴다. 장학재단 운영에도 신경을 쓰다 보니 또 한 번 가족에게 미안함을 전해야만 했다”고 밝혔다. 이후 맞이할 설에 대해서는 “현대로 오면서 친척들이 모두 모여 북적거리는 명절의 모습은 많이 줄었다고 하더라. 그러나 여전히 내게는 가족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그동안 함께 못 한 시간을 더 자주, 그리고 또 많이 보내려고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이승엽이 스포츠동아 독자들에게 전하는 설 인사.


“안녕하십니까. 이승엽입니다. 기해년 출발을 알리는 민족대명절 설이 어느새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가족, 친척 여러분과 함께 따뜻한 시간 속에서 행복한 연휴 보내시길 바랍니다. 한국야구를 사랑해 주시는 팬 여러분께 항상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올 한 해도 많은 응원과 사랑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장은상 기자 award@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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