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이강인 차출을 고민하는 벤투가 새겨야 할 것들

입력 2019-03-08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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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인.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1983년 8월 한국축구는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미국으로 전지훈련을 떠난 국가대표팀이 중남미 클럽들과 평가전에서 잇따라 패하면서 여론이 들끓었다. 경기력뿐 아니라 선수선발과정의 잡음과 코칭스태프와 선수 간 갈등설이 불거지면서 대한축구협회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그때 등장한 카드가 박종환 감독이다. 2개월 전 멕시코청소년대회 4강 신화의 주역으로 주가를 높인 박 감독이 전격적으로 대표팀 감독에 선임됐다. LA올림픽 1차 예선(11월)을 앞두고 그가 가장 먼저 한 건 세대교체였는데, 청소년대표 출신들이 대거 발탁됐다.

그때 승선한 선수 중 한 명이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김판근이다. 그는 17세 184일로 최연소 국가대표가 됐는데, 지금도 그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 그 해 11월 1일 LA올림픽 1차 예선 태국전을 통해 A매치에 데뷔한 최연소 출전기록(17세 241일)도 지금까지 살아 있다.

18세 때 그라운드를 누비며 A매치에 데뷔한 총 11명의 태극전사 중에는 고종수(18세 80일)와 손흥민(18세 175일), 최순호(18세 228일), 김종부(18세 292일), 차범근(18세 351일) 등이 도드라진다.

금호고 시절부터 천재 소리를 듣던 고종수는 국가대표 발탁 이전에도 이미 연령별 수준을 뛰어넘는 기량으로 주목을 받았다. 2010년 12월 30일 시리아와 평가전을 통해 A매치에 데뷔한 손흥민도 청소년대표 시절부터 크게 두각을 드러냈다. 최순호와 김종부, 차범근도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초특급 유망주였다. 알다시피 그들은 한국축구의 스트라이커 계보를 이었다.

돌이켜보면 한국축구의 위기를 말할 때면 어김없이 세대교체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젊은 피의 수혈로 분위기 전환은 물론이고 희망의 싹을 틔웠다.

한국축구는 올 초 아시안컵 8강에서 탈락해 충격에 빠졌다. 그 와중에 기성용과 구자철이 대표팀에서 은퇴하며 커다란 공백도 생겼다. 그 허전함을 채워줄 젊은 피가 간절해졌다. 18세의 이강인(발렌시아)에게 시선이 급격하게 쏠리게 된 이유다.

이강인의 A대표 발탁은 자연스러운 흐름일지 모른다. 스페인 무대에서 1군 출전을 경험한 그는 이미 검증된 카드다. 박지성이나 손흥민에 견줄 만한, 아니 더 큰 기대감을 갖게 하는 유망주라는 얘기도 나온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3월 2차례 평가전을 앞두고 A대표팀에 발탁해야 하는 목소리가 높다. 가능성 있는 선수라면 나이와 상관없이 기회를 줘야하는 건 당연하다. 물론 반대의 의견도 있다. 2020년 도쿄올림픽까지는 연령별 대회를 통해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주장도 맞선다.

한국 남자 축구대표팀 벤투 감독. 스포츠동아DB


칼자루는 국가대표팀 사령탑인 파울루 벤투 감독이 쥐고 있다. 선수선발에 관한 한 A대표팀이 우선이다. 감독이 이강인을 보기 위해 스페인 현장을 찾고, 예비 멤버이지만 차출 명단을 소속 구단에 보낸 걸 보면 뽑을 가능성이 높지만 최종 명단은 11일 발표된다. 어떤 결정이든 한국축구에 도움이 되고, 선수에게 기회가 되어야 한다.

당부하고 싶은 건 발탁할 경우 확실한 역할이 주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단순히 경험 쌓기를 위해 태극마크를 달아줘서는 곤란하다. 예전엔 가능성 있는 선수를 데려다가 경험도 쌓고, 테스트도 해보곤 했다. 이는 소집기간에 여유가 있고, 선수 체크가 잘 되지 않던 시절의 얘기다. 시대는 변했다. 이강인의 능력은 이미 나와 있다. 감독의 판단이 필요할 뿐, 테스트할 단계는 아니다. 중요한 건 이강인을 어떻게 활용할 것이냐다. 대표팀에서의 쓰임새를 먼저 생각하고 거기에 적당한 능력을 가졌다고 판단하면 뽑으면 그만이다.

그런 확실한 구상이 없다면 연령별 대표팀에 양보해야 한다. 우리에게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의 20세 이하 대회나 올림픽의 비중도 만만치 않다. 이강인에게 연령별 대회 출전도 결코 손해 보는 경험이 아닐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번 대표팀 명단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바로 이 점 때문이다. 벤투의 눈에 비친 이강인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그를 뽑는다면 그 활용성이 무엇인지가 궁금하다.

이강인처럼 능력 있는 재목이 나왔다는 건 한국축구로선 축복이다. 그가 차범근이나 박지성, 손흥민에 비교될 만한 큰 그릇이 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하는 건 우리의 몫이다.

최현길 전문기자·체육학 박사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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