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베이스볼] ‘2119일의 기다림’ KT 안승한의 애끓는 사부곡

입력 2019-06-19 12: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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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안승한. 사진제공|KT 위즈

소년의 아버지는 소문난 야구광이었다. 해태 타이거즈(KIA 타이거즈의 전신)를 열렬히 응원했던 아버지는 선수들의 기록 하나하나를 샅샅이 외울 정도로 야구를 사랑했다. 텔레비전 채널은 자연히 야구 중계에 고정됐다. 소년은 자연히 야구와 함께 자랐다. 그리고 문득 아버지에게 이야기를 꺼낸다. “아빠, 나도 야구할래.”

● 꿈과 현실의 괴리와 무게감

소년의 이름은 안승한(27·KT 위즈). 야구 명문인 선린중~충암고부터 동아대까지 거치며 안방마님으로 성장했다. 아마추어 시절 ‘대학리그 최고의 포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안정된 수비가 최대 장점이었다. 그는 2014시즌 신인드래프트에서 신생팀 KT의 특별지명을 받았다. 그해 2차지명은 10개 구단이 선수 한 명씩 뽑은 뒤, 신생팀인 KT가 다섯 명을 연이어 뽑는 방식이었다. 안승한의 이름은 전체 12번째로 불렸다. 가능성을 높게 산 것이다.

KT가 퓨처스리그(2군)에 머문 2014년, 그는 37경기에서 타율 0.340, OPS(출루율+장타율) 1.002를 기록했다. 경쟁 구도에 뛰어들 것으로 보였지만 현실은 달랐다. KT는 용덕한을 신생팀 특별지명으로 영입했고, 트레이드로 장성우를 데려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안승한은 부상까지 당했다. 결국 2015시즌 종료 후 사회복무요원으로 입대했다.

복귀 시즌인 2018년을 승부처로 삼았다. 1군 스프링캠프에 참가하는 등 전망도 좋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왼 무릎 부상이 찾아왔다. 그 사이 아버지가 별세했다. 안승한은 “아버지는 내가 야구를 시작한 계기였다. 꼭 멋진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한 번도 1군에 올라가지 못해 너무 죄송했다”고 자책했다.

● 2119일의 기다림 끝에 나온 첫 안타

안승한은 슬픔을 딛고 다시 스파이크 끈을 동여맸다. 성실히 재활에 매진한 끝에 2018시즌 말미 생애 첫 1군 콜업의 기쁨까지 맛봤다. 비록 경기에 출장하진 못했지만 그 자체로 한 발 나아간 셈이다. 시즌 종료 후 일본 미야자키 마무리캠프와 미국 애리조나 스프링캠프까지 차례로 소화했다. KT에 새로 합류한 박철영 배터리코치는 그를 보고 “왜 1군에서 뛴 경험이 없나”라고 물었다. 박 코치의 시선에는 안승한의 블로킹과 프레이밍 모두 수준급이었기 때문이다. 부상이 이유였다고 답하자 박 코치는 “아프지 않으면 올해 기회가 있을 테니까 열심히 준비하자”고 독려했다.

박 코치의 말처럼 기회가 왔다. 안승한은 13일 수원 SK 와이번스전을 앞두고 1군 콜업됐다. 그리고 이튿날인 14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전 8회말 2사에 교체투입되며 꿈에 그리던 1군 무대를 밟았다. 당시 삼성 김호재가 초구를 쳐 병살타 아웃되며 공 한 번 잡지 못한 채 이닝이 끝났고, 9회초 마지막 공격에서도 안승한의 타석은 없었다.

하루 뒤인 15일, 진짜 기회가 왔다. 그는 6-7로 뒤진 9회 1사 1루에서 데뷔 첫 타석을 맞이했다. 삼성 장필준의 초구는 볼. 안승한은 “초구는 무슨 공이 오든 스윙하려고 했는데 몸이 얼어서 손이 안 나왔다. ‘큰일이다’ 싶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2구째는 놓치지 않고 결대로 밀었다. 결과는 우전안타. 프로 입단 후 한 타석도 들어서지 못했던 타자가 흐름을 잇자 KT는 9회 대거 4득점, 10-7 역전승을 거뒀다. “박철영 코치는 “1군 경험이 적은 포수답지 않게 여유가 느껴졌다”고 칭찬했다.

KT 안승한. 사진제공|KT 위즈


● 평생 못 잊을 ‘고작 안타 하나’

KT 코치들은 그가 1군 콜업된 뒤 매번 “(첫 안타 기념)공을 챙겨줄 준비만 하고 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실제로 그 공을 받은 안승한은 방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전시해뒀다. 룸메이트인 김민, 동기 송민섭 등 모두가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절실히 야구를 해왔던 그를 알기에 나온 반응이었다.

첫 안타를 친 뒤 가장 먼저 떠오른 이는 야구의 길을 밝혀 준 아버지였다. 안승한은 “첫 안타를 친 뒤 아버지가 가장 먼저 생각났다. 프로 유니폼을 입고 활약하는 모습을 꼭 보여드리고 싶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아버지가 하늘에서 보고 누구보다 기뻐하셨을 것’이라고 하자 “꼭 그러셨으면 좋겠다”며 지그시 웃었다. 이어 그는 “야구가 많이 간절했다. 누군가에게는 ‘고작 안타 하나’일지 몰라도 난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며 “앞으로도 이 마음을 잊지 않고 누구보다 절실하게 준비하고, 뛰겠다”고 다짐했다.

2014 신인드래프트가 열린 2013년 8월 26일. 그리고 안승한이 첫 안타를 친 2019년 6월 15일까지 꼬박 2119일이 걸렸다. 멀리 돌아왔지만 그 사이 포기하지 않았고, 마침내 첫발을 내딛었다. 아직은 백업 포수이지만 그의 야구 인생 종착점이 어디일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고척|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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