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타운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삼수이포의 거리 전경. 골목으로 들어서면 홍콩 서민들의 활기찬 일상과 마주할 수 있다. 홍콩|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 올여름 홍콩, 딥(deep)하게 다녀볼까 - (1) 삼수이포60년대 홍콩인의 삶·문화 간직한 공간
메이호 하우스·뢰춘생 등 근현대 유적
팀호완 선흥유엔 등 서민적 맛집 다양 해마다 조금 차이는 있어도 홍콩은 한국사람이 즐겨찾는 해외여행지 톱5에 들어가는 도시다. 길지 않은 이동시간, 외국인 여행객에게 편리한 도시 인프라, 해외여행의 핵심 테마인 쇼핑과 식도락에 최적화된 관광콘텐츠. 여기에 빅토리아 피크나 침사추이 스타로드에서 바라보는 마천루 빌딩들의 화려한 야경까지.
그런데 홍콩을 1~2회 갔다 오면 더 이상 갈 이유가 없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센트럴과 코즈웨이베이의 쇼핑가도 돌아다녔고, 빅토리아 피크 야경도 보고 딤섬 맛집도 갔는데 더 볼 게 있나.”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 정도면 홍콩관광 핵심은 어느 정도 맛 본 것이다. 하지만 맞는 말도 아니다. 센트럴과 빅토리아 피크에서 본 세련되고 번화한 도심만이 홍콩 매력의 모든 것은 아니다. 정보검색에 약간의 시간만 투자하고 다리품을 조금 팔 각오를 하면 고향에서 어린 시절 함께 보낸 이웃집 친구같은 정겨운 느낌을 주는 홍콩인의 삶을 마주할 수 있다.
여름휴가철을 맞아 홍콩 매력을 조금 더 깊게(deep) 알아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이번은 첫 회로 서민적이면 뉴트로(newtro)한 분위기가 매력인 삼수이포(Sham Shui Po)를 소개한다.
삼수이포의 도로 가운데에는 이렇게 시민들이 쉴 수 있는 작은 휴게공원이 있어 한결 한가로운 느낌을 준다. 홍콩|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 60년대 모습 간직한 ‘홍콩의 힙지로’
삼수이포는 구룡반도에 있다. 이곳은 한 마디로 설명하면 ‘홍콩의 힙지로’라고 할 수 있다. 서울의 대표적인 올드타운인 을지로의 젊은 감성이 더해지면서 뉴트로한 공간으로 거듭난 것과 무척 닮았기 때문이다.
삼수이포는 1960년대 홍콩의 모습이 남아 있는 대표적인 지역이다. 일단 접근성이 좋다. 센트럴에서 침사추이, 조단, 야우마테이, 몽콕 등을 거치는 전철(MTR) 추엔완선(Tsuen Wan Line)의 삼수이포역에서 내리면 된다. 몽콕역에서 두 정거장밖에 안 된다.
이제는 홍콩에서도 보기 힘들다는 대나무로 만든 전통 빨래건조대. 삼수이포에서는 오래된 주거시설에서 종종 볼 수 있다. 홍콩|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삼수이포에 처음 가면 침사추이나 센트럴, 코즈웨이베이에서 본 세련된 도시 정경과는 사뭇 다른 모습에 놀라게 된다. 역사적 유물에 가까운 대나무 빨래건조대가 남아있는 오래된 아파트를 쉽게 발견할 수 있고, 고색창연한 분위기의 재래상점들이 즐비하다. 사람으로 북적거리고 흥정하는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리는 활기찬 페이호 재래시장도 있다.
처음에는 북적거리는 분위기에 정신이 없지만, 조금 지나면 마치 동네 마실 나온 것처럼 느긋한 마음으로 돌아다니게 되는 곳이 바로 삼수이포다.
1930년대 지어진 홍콩 근대건축양식을 대표하는 건물 뢰춘생. 지금은 한방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홍콩|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 ‘닥터 스트레인지’에 나온 그 건물, 뢰생춘
지역 분위기에 걸맞게 삼수이포에는 홍콩 근현대사의 자취를 지닌 유적들이 제법 있다.
뢰생춘(雷生春)은 영국 출신 건축가 W. H. Bourne이 설계해 1931년 완공한 4층 건물이다. 둥근 건물 외양에 베란다가 달린 통라우(唐樓, Tong Lau)라 불리는 주상복합건물로 동서양 건축양식이 어우러진 옛 홍콩의 특징을 지닌 건물이다. 지금은 홍콩 침례교회 한의대학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1층에서 한방차를 체험할 수 있다. 베네딕 컴버베치가 주연한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에 뢰생춘을 그대로 본뜬 건물이 등장한다.
홍콩 최초의 공공주택으로 6만여 명에 달하는 화재 이주민을 수용했던 메이호 하우스의 현재 모습. 지금은 유스호스텔로 변신했지만, 내부에 당시 시대상을 소개하는 자료관이 있다. 홍콩|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메이호 하우스(Mei Ho House)는 홍콩의 첫 공공주택이다. 1953년 화재로 집을 잃은 5만 8000명의 노숙자들을 위해 건설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건물로 리모델링을 거쳐 지금은 유스호스텔로 운영하고 있다. 건물 내부에 공공주택 시절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자료, 실내 주거모형 등이 있는 자료관이 있다. 또한 유스호스텔로 변신하긴 했지만 아직도 건물 곳곳에 50~60년대의 느낌이 남아 있다. 벽화로 실내를 장식한 바와 예전 군것질거리를 파는 매점도 자료관과 함께 돌아볼 만하다.
리틀투숍에서는 장난감부터 재봉틀, 70년대 스타 브로마이드와 레코드판까지 다양한 빈티지 소품을 판매한다. 홍콩|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 빈티지 마니아라면 필수 방문
빈티지한 가게가 눈에 자주 띠는 삼수이포에서도 리틀투숍(Little Two Shop)의 존재는 특별하다. 대로변에 위치한 이곳은 무엇을 파는 가게라고 쉽게 특정하기 어렵다. 그냥 오래된 물건을 파는 곳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레트로한 분위기 물씬 풍기는 양철 장난감(tin toy)부터 타자기, 70년대 스타의 브로마이드, 레코드판 등 각종 잡동사니들이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곳이다.
음악, 특히 레코드(LP)의 아날로그 사운드를 좋아한다면 비닐 히어로(Vinyl Hero)를 찾아가자. 청샤완 거리(Cheung Sha Wan Road)에 있는 가게로 엄청난 양의 레코드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다. 단, 원하는 음반을 구하려면 무질서하게 쌓여 있는 레코드를 뒤지는 수고가 필요하다.
사람으로 북적거리는 페이호 재래시장 풍경. 떠들썩한 분위기가 우리네 재래시장과 다를바가 없다. 홍콩|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 백종원 극찬 오이만상도 있다
워낙 동네 분위기가 소박하고 서민적이다 보니 이곳에서 미슐랭 스타 맛집을 찾는게 생뚱맞을 것 같지만, 아니다. 삼수이포에도 당당히 미슐랭 1스타를 받은 명소가 있다. 바로 딤섬 맛집으로 홍콩 여행객에게 인기 높은 팀호완의 본점이 있다.
팀호완 본점에 들어서면 화려한 장식은 없지만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내부 모습이 맛집의 내공을 풍긴다. 제법 역사가 있는 딤섬집이지만, 웨곤에 딤섬 바구니를 싣고 다니는 방식이 아닌 먹고 싶은 요리를 주문서에 표시하는 방식이다. 여행자에게는 오히려 이 방식이 편할 수 있다. 주문서는 한자와 영어 두 가지다.
삼수이포의 맛집 중 하나인 차찬텡 선흥유엔. 삼수이포역 C2 출구에서 가깝다. 홍콩|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삼수이포역 C2출구로 나와 앞에 펼쳐진 시장거리를 한 블록 건너가면 왼쪽으로 아담한 차찬텡(홍콩식 종합분식점)이 보인다. 바로 선흥유엔(新香園 Sun Heung Yuen)이다. 족발국수와 소고기 계란 토스트로 유명한 삼수이포의 인기 맛집이다. 처음 주문하면 조금 평범해 보이는(?) 모양에 실망하지만, 한입 베어 물면 꽤 중독성 있는 맛을 느끼게 된다. 두 메뉴 외에 프렌치 토스트나 밀크티 같은 홍콩 차찬탱 인기 메뉴들도 평균 이상은 한다.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홍콩편’에 등장해 한국관광객에게도 인기 높은 다이파이동 오이만상. 가게 앞에 붙인 백종원이 나오는 방송장면을 캡처한 포스터가 인상적이다. 홍콩|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백종원의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에서 홍콩편을 본 사람이라면, 그리고 거기 등장한 다이파이동(홍콩식 포장마차)을 체험하고 싶다면 삼수이포에 와야 한다. 단 가게가 문을 여는 시간은 저녁부터이니 낮에는 가봤자 소용없다.
일단 삼수이포에서 홍콩상하이은행(HSBC) 지점이 있는 사거리를 찾은 뒤, 홍콩상하이은행 지점을 오른쪽에 두고 30m쯤 걸어가다 우회전하면 다이파이동 블록이 나온다. 이곳에 있는 오이만상(愛文生 Oi Man Sang)이 바로 백종원이 해물요리를 즐기며 극찬을 했던 곳이다. 방송 이후 한국사람들이 많이 찾는지 매장 앞에 백종원이 등장하는 방송장면을 캡처한 커다란 사진이 여러 장 있다.
홍콩|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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