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오찬 초대 받은 ‘기생충팀’ 봉준호 감독(오른쪽에서 여섯 번째)과 배우 송강호(오른쪽에서 네 번째) 등 ‘기생충’의 주역들이
20일 청와대 오찬에 초청돼 문재인 대통령 내외와 사전환담을 나눴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기생충’이 한국영화계에 남긴 성과들
① 타란티노, 조여정 찜…인지도↑
② 해외영화제 한국영화 관심 증가
③ 철저한 보안·52시간 준수 각인
② 해외영화제 한국영화 관심 증가
③ 철저한 보안·52시간 준수 각인
‘모험’과 ‘도전’ 그리고 ‘리스크’.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20일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 기자회견에서 한국영화의 미래를 언급하며 꺼낸 키워드다. 봉 감독은 한국영화의 확장이 계속되려면 “영화산업이 모험과 리스크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적인 영화를 더 껴안아야 한다”고 밝혔다. 한 편의 영화가 거둔 단일 성과에 그치지 않고 한국영화가 더욱 긍정적인 영향력을 넓혀야 한다는 목소리다. 풀어야 할 과제가 남았지만, ‘기생충’을 통한 새로운 기대감도 형성된다. 한국영화의 새로운 페이지가 시작됐다.
● 배우·감독의 해외 진출·협업 ‘기대’
‘기생충’의 효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부분은 배우 캐스팅이다.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올해 미국 아카데미 작품상 석권은 물론 미국배우조합상 최고상인 캐스팅앙상블까지, 출연 배우들의 인지도가 급상승하고 있다.
최우식이 첫 낭보를 알렸다. 할리우드 제작사인 A24로부터 영화 ‘전생’(Past Lives) 출연을 제안 받았다. A24는 ‘문라이트’, ‘유전’ 등을 만든 제작사다. 박소담도 러브콜을 받고 있다. 영화에서 부른 ‘제시카 징글’이 미국에서 크게 인기를 끌면서 인지도가 쌓였다.
할리우드 감독들이 먼저 관심을 적극 표출하기도 한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최근 LA에서 봉 감독을 만나 조여정을 언급하며 ‘영화를 보고 하루 종일 생각났다’면서 큰 호기심을 드러냈다. 관건은 영어 구사 능력이다. 최우식은 학창시절을 캐나다에서 보내 영어에 능통하고, 박소담도 꾸준한 훈련으로 실력을 쌓았다.
영화계에서는 이런 관심이 ‘기생충’ 배우들에게만 한정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이미 할리우드에 안착한 이병헌과 배두나를 비롯해 마블스튜디오의 새 영화 ‘이터널스’로 데뷔하는 마동석 등이 ‘기생충 효과’에 힘입어 영역을 확장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할리우드와 협업을 경험했고 또 다른 기획도 구상 중인 박찬욱 감독을 비롯해 김지운 감독 등 활약도 기대감을 키운다.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에 오른 후 기념사진 촬영하는 ‘기생충팀’.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칸·베를린 등 해외 영화제 ‘시선집중’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의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은 ‘잃어버린 주말’(1946년)과 ‘마티’(1956년)에 이어 세 번째다. 무려 65년 만의 새 역사이다. ‘기생충’의 아카데미 작품상이 곧 칸 국제영화제의 성과라는 뜻이다.
이에 힘입어 영화계 안팎에서는 해외 영화제에서 한국영화를 향한 관심이 한층 더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효과는 시작됐다. 21일 개막한 제70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홍상수 감독의 ‘도망친 여자’가 경쟁부문에, 이제훈 주연의 ‘사냥의 시간’이 베를리날레 스페셜 부문에 각각 초청됐다. 세계 최대 독립영화 축제인 미국 선댄스영화제는 이달 2일 폐막식에서 최고상인 심사위원대상을 윤여정·한예리·스티븐연이 주연한, 한국 이민가정 이야기 ‘미나리’에 선사했다.
‘기생충’ 역사의 출발점인 칸 국제영화제에는 올해 어느 때보다 다양한 작품이 출품을 준비하고 있다. 작품성을 내세워 경쟁부문을 공략하는 영화는 물론 매년 한국영화가 빠지지 않고 선정되는 미드나잇스크리닝을 노리는 블록버스터 등 상업영화도 여러 편이다.
● ‘NO 스포일러’ ‘52시간 준수’
‘기생충’은 한국영화 제작 현장에도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졌다. 영화가 처음 공개될 때 작품과 더불어 주목받은 두 가지는 ‘스포일러 차단’과 주 52시간 근로시간 준수였다.
봉 감독은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에서 취재진에게 구체적인 이야기나 반전에 대해 함구해 달라고 요청했다. 실제로 ‘기생충’은 제작과정에서도 이야기나 등장인물의 설정까지 철저히 베일에 가려졌다. 내용 유출을 우려해 관계자들마저도 시나리오를 프린트한 종이 상태로 읽게 하고 바로 회수했다. 스포일러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는 결과적으로 관객이 작품을 보고 크게 놀라는 효과로 극대화했다. 최근 몇몇 제작진도 비슷한 방식을 취한다. 간단한 설정조차 공개하지 않은 채 비밀리에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경우가 부쩍 늘고 있다.
주 52시간 근로시간 상한제는 이미 영화 제작현장에 건강하게 뿌리내렸지만, ‘기생충’을 통해 새삼 각인됐다. 준비가 철저하다면 제작현장에서 불필요하게 시간을 버리거나 제작비를 초과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점도 보여줬다.
한편으로 ‘기생충’은 영화계 숙원 과제인 스크린 독과점 해결의 실마리도 제공하고 있다. 20일 문재인 대통령은 봉준호 감독 등 ‘기생충’ 주역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영화 유통구조에서 독과점을 막을 스크린 상한제가 빨리 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하겠다”며 “확실히 지원하고, 간섭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