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베이스볼] 한화 이용규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을까

입력 2020-05-10 14: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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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벌어졌던 2020시즌 한화 이글스-SK 와이번스의 시즌 3차전 뒤 한화 이용규가 방송에서 했던 발언의 파장이 크다. 수훈선수로 선정된 그가 중계방송사의 인터뷰 마지막에 폭탄발언을 했다. 요약하면 “3경기 밖에 안 지났는데 선수들 대부분이 심판의 볼 판정과 일관성에 불만이 많다. 헷갈려한다. 안타 하나를 치기 위해, 잠 못 자고 새벽 3시까지 스윙하고 피나는 노력을 하는 선수들을 헤아려 심판들이 신중하게 더 잘 봐주었으면 한다”는 내용이었다.

표현은 정중했지만 담고 있는 의미는 심각했다.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지금 KBO리그 대부분 선수들이 심판의 스트라이크 볼 판정에 불만이 클 정도로 존이 흔들리고, 신중하게 판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즌개막 3경기 만에 이런 발언이 나왔다. 앞으로 남은 긴 시즌을 감안한다면 단순한 해프닝으로 넘길 일도 아니었다.

결국 KBO는 한화-SK 3연전의 심판 5명 모두를 2군으로 강등했다. KBO 역사상 전례를 보기 드문 결정이었다. KBO는 “해당 경기 심판들의 시즌 준비가 부족하다고 판단해 퓨처스리그로 강등해 재교육을 진행한다. 향후 심판판정 모니터링을 더욱 강화해 판정과 관련한 리그의 신뢰를 훼손하지 않도록 철저히 노력할 방침이다”고 했다. 이용규의 지적이 맞았다고 인정했다. 다만 “심판의 스트라이크, 볼 판정 등에 대한 선수의 공개적인 의견 개진은 리그 구성원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자제와 함께 재발방지를 당부한다”고 함께 발표했다.

KBO리그 심판판정에 색안경을 끼고 보던 사람들에게는 이용규가 소신발언을 한 것으로 확신한다. 신이 아닌 이상 심판도 판정을 하다보면 잘못을 하겠지만 지금의 판정불신은 상상외로 심각하다. 야구규칙 제8조02장 “타구가 페어냐 파울이냐 투구가 스트라이크냐 볼이냐, 또는 주자가 아웃이냐 세이프냐 하는 심판원의 판단에 따른 재정은 최종의 것이다. 선수 감독 코치 또는 교체선수는 그 재정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는 조항은 의미가 퇴색됐다.

이 조항이 필요한 이유는 야구의 기본이 되는 판정을 믿지 않으면 경기가 진행되지 않기 때문에 믿고 따르자는 약속이 깔려 있다. 방송장비가 발달하면서 그동안은 믿고 넘어갔던 것들이 새롭게 눈에 들어오면서 그 재정에 의심이 생겼다. KBO는 새로운 환경에 발맞춰 실수를 줄이기 위해 비디오판독도 도입했지만 상황은 점점 악화되고 있다. 판정에 불만인 이들은 툭하면 문제 심판을 퇴출시키고 AI컴퓨터 심판을 도입하라고 한다.

과연 AI심판은 실현 가능할까. 전자오락 게임에서는 모르겠지만 말처럼 되기는 쉽지 않다.
우선 현재 대한민국 야구계가 보유한 인재풀을 총가동하더라도 지금보다 잘 보는 심판을 구할 수 없다. 문제 심판을 퇴출시키고 새 사람을 교육시키는 데는 많은 시간도 필요하다.

외국인 심판을 쓸 수도 없다. 비용문제는 나중으로 치고 그들이 지금의 심판보다 잘 본다는 확신도 없다. NC-삼성의 시즌 개막전이 미국에 중계됐을 때 현지의 어느 팬이 했다는 발언(한국 심판도 미국 심판만큼 눈이 먼 것을 잘 봤다)을 기억해보면 된다. 미국의 팬들도 수준이 최고라는 메이저리그 심판의 판정에 불만을 똑 같이 가지고 있다.

누가 심판을 봐도 이런 문제가 생기기에 기계와 과학의 힘을 빌리자고 하지만 결국은 인간의 손을 거쳐야 하는 기계마저 믿지 못한다면 또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먼저 믿으려는 자세가 아니면 결국 기계심판이건 인간심판이건 불만은 나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심판의 판정을 존중하고 최소한 겉으로는 믿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야구계의 불문율이었지만 이용규는 다른 길을 택했다. 소속팀과 코칭스태프, 동료들도 같은 마음일지 궁금하다.

궁지에 내몰린 심판들이 지금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누구도 모른다. 8일 KBO의 결정으로 리그 생태계를 지탱하는 균형과 견제가 무너졌다. 선수단과 심판, 구단과 KBO가 서로 견제하면서 균형을 맞춰가야 하지만 그 것이 깨진 모양새다. 내부의 균형과 자정작용에 의해 그런대로 굴러왔던 KBO리그에서 심판이 위축되고 흔들리면 더 큰 위험이 올 수도 있는데 자꾸만 심판을 몰아붙인다. 열린 판도라 상자의 결말이 궁금하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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