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대회 출발시간과 조편성에 담긴 비밀

입력 2020-06-11 11: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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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진, 김효주, 김세영(왼쪽부터). 스포츠동아DB

주말 골퍼들은 누구나 한 번쯤 이런 푸념을 해 본 경험이 있다. “티오프 타임이 뭐 새벽 6시? 그럼 도대체 몇 시에 일어나야 하는 거야?” 2개 조 이상 단체 라운딩이라면 이런 적도 있다. “우리 조보다 저쪽 멤버가 더 좋네. 하필 저 사람하고 같은 조가 될 게 뭐람.”

프로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출발시간(티오프 타임)과 조편성(페어링)은 굉장히 민감한 사안이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출신의 전직 프로선수는 “골프는 멘탈 스포츠다. 자기만의 루틴이 있기 때문에 몇 시에 출발하는지도, 누구와 함께 라운딩 하느냐도 무척 중요하다”고 했다. ‘필드의 과학자’로 불리는 브라이슨 디샘보(미국)는 ‘느림보 골프’로 악명이 높다. 자칫하면 페이스가 흔들릴 수 있어 동료 선수들에게 ‘기피대상 1순위’다. 2017년 국내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대회에선 모 선수가 2라운드를 앞두고 갑자기 기권하자 조편성 푸대접 때문이란 뒷말이 돌기도 했다.

그렇다면 정규투어에서 조편성과 출발시간은 어떻게 정해질까.

성적순으로 정해지는 3라운드 이후 본선과 달리 예선(1·2라운드)의 경우 큰 틀에서 보면 출발시간은 오전과 오후로, 출발장소는 1번 홀과 10번 홀로 나뉘고, 1·2라운드에서 서로 맞바꾸게 된다. 시간대에 따라 달라지는 그린 컨디션이나 기상 조건 등을 고려, 최대한 공정하게 조를 짜고 출발시간을 배정해야하지만 흥행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프로대회인 만큼 일정 범위 내에서 ‘탄력적인 조정’이 가능하다.

11일 오후(한국시간) 개막하는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찰스 슈와브 챌린지에서 세계랭킹 1위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 2위 욘 람(스페인), 3위 브룩스 켑카(미국) 등 ‘톱3’를 이례적으로 같은 조로 묶어 예선을 치르도록 한 것이 좋은 예다.

각 투어별, 대회별 담당 위원회에서 결정하는 예선 라운드 조편성은 ‘3인 1조’를 기본으로 하고 크게 3개 그룹으로 나뉜다. 국내 관계자들은 이를 ‘방송조’, ‘스토리텔링조’ 그리고 ‘랜덤조’라 부른다. 메인그룹은 생방송 TV 중계가 되는 시간대(대개 오전 11시~오후 5시)에 플레이하는 방송조다. ‘디펜딩 챔피언조’가 핵심인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의 경우 디펜딩 챔피언은 직전 대회 우승자, 상금랭킹 상위순위자 또는 세계랭킹 상위순위자와 함께 조를 꾸리도록 정해져 있다. 이 조를 중심으로 조편성이 시작된다.

3라운드로 대회냐, 4라운드까지 하느냐에 따라 ‘디펜딩 챔피언조’의 배치가 달라진다. 3라운드 대회의 경우, ‘디펜딩 챔피언조’는 2라운드 프라임 타임 때 배치되지만, 4라운드 대회의 경우 1라운드 프라임 타임 때 티오프를 하게 된다.

방송조 그룹에는 해당 시즌 우승자, 대회 주최사가 요청한 선수, 상금랭킹 앞 순위자 등등이 골고루 포함된다. 방송조보다 주목도가 조금 떨어지는 선수들을 모은 그룹이 스토리텔링조. 예를 들어 신인왕을 다투는 선수끼리 묶거나, 특별한 인연이 있는 선수를 따로 묶는다. 언론에 이슈가 될만한 선수들이 포함되기도 한다.

방송조는 대개 10개 조(30명) 이내로 구성한다. 요즘은 스토리텔링조도 이 범위 안에서 운영된다. 두 그룹은 티오프 타임 배정에서 좋은 시간대를 받는다. 오전조 후반부, 오후조 초반부를 차지한다. 2라운드 그룹별 출발시간과 장소는 1라운드와 동일 그룹끼리 ‘크로스 후 상하편성’된다.

랜덤조는 두 조에 포함되지 않는 선수들로, 이들은 무작위로 새벽조 또는 오후조 후반부에 배정된다. 불공정 시비를 피하기 위해 특수 프로그램이 활용된다. 티오프에 앞서 최소 2시간30분 전 쯤 도착해 연습을 하는 선수들은 오후조보다 새벽조를 부담스러워한다. 5월에 열린 제42회 KLPGA 챔피언십 1라운드 첫 조 티오프 시간은 오전 6시20분이었다. 당시 한 선수는 “중학교 때 이후 새벽 3시에 일어나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다. 랜덤조 내에서도 형평성을 위해 그룹끼리 ‘크로스 후 상하편성’이 적용된다. 1라운드 때 아웃코스 새벽 첫 조에서 플레이했다면 2라운드에서는 인코스 늦은 오후조 중 가장 앞서 티오프 하게 된다.

탄력적으로 구성 가능한 1·2라운드와 달리 공정성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본선라운드의 출발시간과 조편성은 무조건 성적순에 따른다. 성적이 가장 좋은 조(최종라운드의 경우 ‘챔피언조’)가 아웃코스에서 마지막으로 출발한다. 반대로 가장 성적이 좋지 않은 선수들이 같은 시간에 인코스에서 출발하게 된다.

여기서 퀴즈 하나. 만약 단독 1위가 있고, 공동 2위가 3명이라면 공동 2위 3명 중 1명은 챔피언조에서 빠져야 한다. 누가 빠질까. 이 경우 연장승부 없이 최종 순위를 가릴 때 활용하는 ‘백 카운트’ 방식이 적용된다. 총 타수가 같으면 후반 9홀~후반 6홀~후반 3홀 성적순으로 순서를 매긴다. 이것도 모두 일치한다면 마지막 홀부터 1번 홀까지 역산으로 각 홀별 타수를 따진다. 공동 2위 3명 중 백 카운트에 따라 가장 성적이 좋은 사람이 단독 1위에 이어 챔피언조에서 두 번째로 티샷을 하고, 가장 성적이 나쁜 사람이 챔피언조에 앞서 출발하는 조에서 첫 티샷을 하게 된다.

●S-OIL 챔피언십을 통해 본 조편성과 출발시간 배정

12일 엘리시안 제주CC에서 개막하는 ‘제14회 S-OIL 챔피언십’의 1·2라운드 조편성과 출발시간이 어떤 과정을 통해 결정됐는지 한번 살펴보자.

이번 대회에는 총 120명이 참가해 3인 1조, 40조로 나눠 1·2라운드 예선을 치른다. 첫 티오프 타임은 오전 7시, 오전조 마지막 출발은 오전 8시30분이다. 오후조 첫 출발은 오전 11시30분, 마지막 조는 오후 1시다. 오전조 초반부, 오후조 후반부에 시작하는 선수들은 특수 프로그램에 의해 무작위로 배정된 ‘랜덤조’다. 1라운드에서 오전 7시에 티오프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선수들은 2라운드에서 낮 12시20분에 시작한다. 반대로 1라운드 낮 12시20분에 티오프 했던 선수가 2라운드 오전 7시 티오프를 하게 된다.

그렇다면 디펜딩 챔피언조에는 누가 포함됐고, 언제 티오프를 할까.

지난해 이 대회 우승자 최혜진은 직전 대회(롯데 칸타타 여자오픈) 우승자인 김효주, 그리고 나머지 참가자 중 세계랭킹이 가장 높은 김세영(6위)과 한 조를 이뤘다. 만약 세계랭킹 1위 고진영이 이번 대회에 나섰다면 김세영 대신 고진영이 함께 라운드를 했을 것이다. 최혜진이 포함된 조는 1라운드 때 인코스에서 출발하고 티오프 타임은 오전 8시30분이다. 아웃코스가 아닌 인코스에서 출발하고, ‘황금 시간대’에 배정되지 않은 이유는 이번 대회가 3라운드로 최종 결과를 산출하기 때문이다. 최혜진이 포함된 조는 2라운드 인코스에서 낮 12시10분에 시작한다. 3라운드 대회의 경우 티오프 타임 배정의 방점은 1라운드가 아닌 2라운드에 있고, 4라운드 대회는 1라운드에 초점을 둔다.

5월 열린 KLPGA 챔피언십 우승자 박현경과 E1 채리티 오픈 우승자 이소영은 신인상 포인트 1위를 달리고 있는 유해란과 1라운드 인코스에서 낮 12시10분 출발한다. 2라운드에서 최혜진이 포함된 조와 자리를 맞바꾼다. ‘넘버 2조’인 셈이다.

김도헌 기자 dohone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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