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익래의 피에스타] 반지 도둑? 2020년 이승진은 당당한 반지 원정대 일원

입력 2020-11-06 10: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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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이승진. 스포츠동아DB

2018년 SK 와이번스의 가을 레이스는 험난함 그 자체였다. 정규시즌 2위 SK는 플레이오프(PO)에서 넥센 히어로즈(현 키움)와 혈전을 치른 끝에 3승2패로 승리했고, 한국시리즈(KS)에서도 두산 베어스를 4승2패로 따돌렸다. PO와 KS를 같은 엔트리로 치렀고, 11경기에서 투수 13명 중 12명이 마운드를 밟았다. 이승진(25)에게는 유독 기회가 오지 않았다. 그렇게 이승진은 벤치에서 팀의 우승을 함께 했다. 동료들은 짓궂게 ‘반지 도둑’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2년 뒤인 2020년 11월. 이승진이 입은 유니폼도, 그리고 팀 내 위상도 달라졌다. 이승진은 5월 29일 SK와 두산의 2대2 트레이드로 이적했다. 당시만 해도 백업포수 이흥련을 내준 두산의 손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지만, 이승진은 정규시즌 33경기에서 2승4패5홀드, 평균자책점(ERA) 5.61을 기록하며 평가를 바꿨다. 본인도 “두산 오길 잘했다”며 기뻐했다.

상황을 가리지 않고 등판해 상대 타자를 제압했기 때문에 5점대 ERA로는 이승진의 퍼포먼스를 온전히 담을 수 없다. 140㎞대 초반도 힘들었던 구속은 두산 2군이 있는 이천에서 권명철, 김상진, 배영수, 백차승 등 코칭스태프가 모두 달려들어 8㎞ 가까이 올렸다. 최고 150㎞ 속구의 위력은 단기전에서 배가될 수밖에 없다. 김태형 감독은 LG 트윈스와 준PO를 앞두고 “이승진의 컨디션이 가장 좋다”며 키플레이어로 꼽았다. 2년 만에 상전벽해다.

두산이 한창 포스트시즌(PS) 진출 경쟁을 벌이던 9월, 이승진은 “꼭 가을에 던져보고 싶다”고 강조했다. 2018년을 회상하며 “관중이 정말 많았다. 그땐 덕아웃 앞에서 애국가를 부르는데도 긴장했다. 많은 관중 앞에서 마운드에 올라 무실점하면 기분이 정말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꿈은 현실이 됐다. 이승진은 4일 LG와 준PO 1차전에 구원등판해 0.2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2018년 같은 만원관중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로 언감생심이지만, 올해 프로스포츠에서 가장 많은 1만1600명의 관중이 있었다. 팬들은 이닝을 깔끔히 끝낸 이승진의 이름을 연호할 수 없었지만, 그 진심은 온전히 전해졌을 것이다.

2018년 이승진에게 반지 도둑이라는 표현은 적합하지 않다. 정규시즌 34경기에서 ERA 4.57을 기록했던 이승진의 PS 엔트리 합류는 당연했다. 비록 가을무대에서 활약할 기회 자체가 주어지진 않았지만, 명단에 포함됐다는 자체가 이승진의 2018년이 값졌다는 의미다.

2018년 반지를 훔쳤다는 오명을 얻었던 이승진은 올해 두산 팬들의 마음을 훔쳤다. 2년 전 ‘13번째 선수’였던 그가 이제 두산 필승조의 1순위 ‘믿을 맨’이다. 낯선 가을무대, 첫 단추가 중요했는데 2년 전 자신을 외면했던 가을의 신 앞에서 PS 데뷔전 깔끔투로 가치를 증명했다. KS 꼭대기까지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이승진은 두산 반지 원정대의 든든한 척추다.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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