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FC 설기현 감독. 사진제공 | 한국프로축구연맹
현역 은퇴 이후 성균관대에서 4년여 간 지휘봉을 잡은 그는 올 초 경남 사령탑에 올랐다. 마침내 오랜 꿈을 이뤘다. K리그 최연소 감독이라는 타이틀까지 달았으니 생각보다 빠른 데뷔였다. 설 감독은 “자신 있다”면서 “승격이 목표”라고 또렷이 밝혔다.
하지만 ‘근사한 감독’이 된다는 건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관심이 집중된 시즌 초반 경남은 잠시 잘나가는 듯 했지만 그 달콤함은 오래가지 못했다. 선수들이 자신의 전술을 따라올 줄 알았지만, 그건 오판이었다. 설 감독은 “나름대로 열심히 했는데 결과가 안 나와 힘들었다. 내가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혼란스러웠다”고 회상했다.
‘설기현 축구’의 핵심은 조직력으로 상대를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빌드업과 측면 돌파에 이은 크로스, 그리고 강한 압박의 패턴을 잘 다듬으면 상대가 어떻게 나오든 제압할 수 있다는 게 설 감독의 지론이다. 그게 축구를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번 시즌 그의 전술을 완벽하지 못했다. 설 감독 스스로도 “전술적인 특징이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다소 늦게 부임하면서 선수 구성이 늦어졌다. 포지션마다 특징 있는 선수들이 필요한데, 그걸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시즌 중반 7위까지 밀리며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 때 포기했다면 설 감독은 큰 좌절을 겪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쓰러지지 않았다. 생존을 위해 변화를 택했다. 선수 역량에 맞춘 전술의 단순화를 통해 위기를 극복했다. 경남은 막판에 힘을 냈다. 리그 최종전 승리로 6위에서 3위로 껑충 뛰었고, 준플레이오프(준PO)를 이기고 승격 PO까지 올랐다. 2위 수원FC와 원정경기에서 1-1로 비겼지만 리그 순위 어드밴티지로 승격은 좌절됐다.
목표를 이루지 못한 채 시즌은 마무리됐다. 하지만 설 감독은 의외로 담담했다. 승격한 수원FC와 김도균 감독에게 축하도 빼놓지 않았다.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크게 미련은 없다고 했다. “이번에 프로의 맛을 제대로 봤다. 시행착오도 겪었다. 하지만 좋은 방향으로 극복했다. 처음부터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지만 우리는 발전해갔다.”
그는 내년을 기약했다. 무엇보다 선수 구성을 일찍 끝내겠다고 했다. 시즌 막판 보여준 선수들의 전술 이해도에 만족감을 표시한 설 감독은 “이제 큰 틀은 어느 정도 꾸려진 것 같다. 여기에다 조직력으로 디테일을 더하면 좋은 팀이 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이어 “올해 1년은 대학 감독 4년보다 더 많이 배운 한해였다. 내년엔 확실히 달라질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승격하지 못했지만 그는 결코 실패하지 않았다. 자신만의 색깔을 보여주겠다고 약속한 설 감독의 2021시즌을 기대해도 좋을 듯싶다.
최현길 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