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달라진 환경이 V리그의 합숙제도 폐지를 유도하다

입력 2021-03-09 11: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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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V리그에 새로운 영향을 주려고 한다.

그동안 많은 구단들이 문제점을 알면서도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했던 합숙제도의 폐지가 점차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최근 몇몇 구단의 실무진과 지도자들은 합숙소 폐지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모 구단 단장은 “당장 다음 시즌부터 합숙소를 없앨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선수들을 관리하기 편하고 짧은 시간에 많은 훈련 성과를 안기는 방법으로 합숙소를 운영해왔지만, 이제는 세상이 달라졌다. 사람들이 인권과 자율성을 중시하면서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합숙제도의 문제점들이 드러났다. 무엇보다 다 큰 성인들을 강제로 가둬놓고 훈련하는 것이 인간적인 방법이냐는 지적이 꾸준하게 제기돼왔다. 개인 의사와 관계없이 하다보니 억압적 환경에 견디지 못하고 도태되거나 반발하면서 빠져나간 선수도 많았다.



선수들이 모여 지내면서 사소한 갈등이 큰 문제로 커지는 경우도 자주 생겼다. 최근 몇몇 여자구단에선 선수들 사이의 갈등으로 큰 홍역을 치렀다. 서로 떨어져 지냈더라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 일들이다. 모여 있으니 사사건건 부딪치고,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

학창시절부터 합숙소 생활에 길들여진 선수들은 가정과 사회로부터 접촉이 제한된다. 올바른 사회인으로 성장할 기회를 빼앗긴 선수들은 개인감정과 직업윤리 사이에서 개인감정을 많이 앞세웠다. 그러다보니 ‘불화’와 ‘왕따’라는 단어가 합숙소에서 자주 흘러나왔다.

큰 돈을 투자해가며 좋은 성적을 내려고 애쓰는 구단 입장에선 난감한 일이다. 특히 합숙소는 지도자들조차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공간이다. 이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파악할 방법도 제한적이다. 구단과 지도자의 통제를 벗어난 곳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면 책임은 고스란히 구단이 진다.

지금 V리그에 큰 충격을 몰고 온 학교폭력도 결국은 어린 학생선수들이 모여 있던 합숙소에서 벌어진 일이다. 학원스포츠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지도자의 체벌과 선후배 사이의 폭력 대물림인데, 모든 사람이 지켜보고 있다면 줄어들었을 것이다. 학교폭력을 근절하고 싶다면 가장 먼저 그런 환경을 만드는 합숙소의 폐지를 생각해야 하지만, 교육당국과 스포츠정책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엉뚱한 소리만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V리그가 합숙소의 폐지를 고려한다는 것은 고무적이다. 구단들이 생각을 바꾸려는 데는 여러 현실적 이유도 작용했다. 먼저 합숙소 운영비용이다. 갈수록 감당하기 힘들 정도가 됐다. 모 여자구단의 경우 팀 전체 예산의 25%가 합숙소 유지비용에 들어간다. 선수들의 숙식비용으로만 10억~15억 원을 쓴다. 그보다 많은 돈을 쓰는 구단도 있다. 여기에 코로나19가 구단에 새로운 훈련환경을 요구했다. 좁은 곳에 사람들이 몰려 있으면 감염 위험도는 커진다. 구단은 그 위험을 분산시키고 싶어 한다.

대한항공은 박기원 감독 시절 기혼선수들의 출퇴근을 장려했다. 선수들의 반응도 좋았다. 그렇게 한다고 경기력이 떨어지지도 않았다. 대한항공의 성적이 이를 증명한다. 몇몇 여자구단에서도 베테랑 선수들이 출퇴근을 선택했다. 계약조건에 이를 넣는 선수도 있다. 이미 프로야구와 프로축구, 남자프로농구는 합숙제도를 폐지했다. 합숙제도 폐지는 시대의 흐름처럼 보인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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