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가 유족은 28일 12조 원 이상의 상속세를 분할 납부할 계획이라며 이 같은 사회 환원 계획도 함께 발표했다. 유족은 “생전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상생 노력’을 강조한 이 회장의 뜻에 따라 다양한 사회환원 사업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 관계자는 “이번 상속세 납부와 사회환원 계획은 갑자기 결정된 게 아니라 그동안 면면히 이어져 온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2만3000여 점, 역대급 미술품 기증
유족은 이 회장 소유의 미술품 2만 3000여 점을 국립기관 등에 기증하기로 했다. 고미술품은 물론 세계적인 서양화, 국내 유명작가 근대미술 작품 등을 아우른다. 감정가만 2~3조 원이며, 시가로는 10조 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급 미술품이 이처럼 대규모로 국가에 기증되는 것은 전례가 없는 것으로, 한국 미술계는 국내 문화자산 보존은 물론 국민의 문화 향유권 제고 및 미술사 연구 등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와 단원 김홍도의 ‘추성부도’, 고려 불화 ‘천수관음 보살도’ 등 지정문화재 60건을 비롯한 개인 소장 고미술품 2만1600여 점은 국립박물관에 기증한다. 국립현대미술관에는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 호안 미로의 ‘구성’, 살바도르 달리의 ‘켄타우로스 가족’과 샤갈, 피카소, 르누아르, 고갱, 피사로 등의 작품을 기증하기로 했다.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 이중섭의 ‘황소’, 장욱진의 ‘소녀/나룻배’ 등 한국 근대 미술 대표작가들의 작품도 국립현대미술관으로 간다.
의료사업에도 1조 원 기부
삼성가는 의료사업에도 1조 원을 기부하기로 했다. 먼저 감염병 대응 인프라 구축을 위해 7000억 원을 기부한다. 그중 5000억 원은 한국 최초 감염병 전문병원인 중앙감염병 전문병원 건립에, 나머지 2000억 원은 질병관리청 산하 국립감염병연구소 지원에 사용할 예정이다. 기부금은 국립중앙의료원에 출연된 뒤 관련 기관들이 협의해 활용하게 된다. 또 소아암·희귀질환으로 고통을 겪는 어린이 환자들을 위해 3000억 원을 지원한다. 이번 기부는 이 회장이 2008년 약속한 사재출연으로부터 시작됐다. 특검 수사 당시 차명 재산을 모두 실명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힌 이 회장은 “실명 전환한 차명 재산 가운데 벌금과 누락된 세금을 납부하고 남은 것을 유익한 일에 쓰겠다”고 했다.
유족이 재단 설립 등의 방식으로 사재출연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중요성이 커진 감염병 대응을 위해 의료공헌으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유족은 이 회장이 남긴 지분과 부동산 등 전체 유산의 절반이 넘는 12조 원 이상을 상속세로 납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연부연납 제도를 통해 4월부터 5년 동안 6차례에 걸쳐 분납하기로 했다. 12조 원은 지난해 우리 정부 상속세 세입 규모의 3~4배 수준에 달한다. 유족은 “세금 납부는 국민의 당연한 의무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고 밝혔다. 다만 이날 관심을 모은 상속 주식의 배분 방안은 공개하지 않았다.
김명근 기자 dionys@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